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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Jan 20. 2024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기분들로 채운, 홀로 떠난 여행

러시아/소치ㅣ계획했던 것들, 우연히 마주했던 것들이 모두 완벽했던 여행길

늘 충동적으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주변에서 나를 보며 당황해하는 부분이다. 감정적으로 지쳤을 때 여행만큼 나를 환기시켜 주는 방법이 없었기에, “떠난다”는 건 나에겐 그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다.


남자친구에게 같이 가지 않겠냐 제안했지만, 모든 걸 계획하고 오랫동안 준비해야 하는 남자친구에게 나의 이런 모습은 매우 당황스러웠나 보다. 그가 여전히 놀라고 있는 와중에 혼자 훌렁 소치로 떠나왔다.


같이 하는 여행도 좋지만, 차분하게 오직 내가 하고 싶은대로, 나에게만 집중해 꾸려가는 여행. 남자친구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ㅎㅎ 혼자 떠나는 여행이 주는 묘한 설렘도 참 좋은 기분이다.




첫째 날 소치 시내를 둘러보고 저녁을 먹는 걸로 간단히 일정을 끝내고,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공항으로 가면서 본 블로그들을 토대로 꼭 가고 싶은 곳을 2-3군데 정했다. 그리고 나름 체계적으로 날씨가 중요할 것 같은 곳, 동선을 체크해 대략적인 코스를 머릿속에서 짜보았다. 충동적으로 떠나도 J의 면모는 잃지 않는다..(?)


1,2일차 = 목,금 / 3,4일차 = 토,일. 이렇게 날씨를 확인하고 짠 코스. 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택시 아저씨 말이, 소치의 1월은 우기라고 봐도 된단다.

기상 예보를 보니 1,2일 차는 비가 미친 듯이 많이 오길래, 우산 쓰고 돌아다녀볼 만한 소치 시내로 숙소를 잡았고 근처를 보기로 한다. 날씨가 좋은 3,4일 차는 설산이 장관인 크라스나야 폴라냐로 가기로 한다!



그렇게 대망의 소치 관광지 투어가 메인 코스인

이틀차 여행 시작!


스탈린의 다차 -> 덴드라리 식물원 -> ‘해안기차 타고’ 다음 숙소로 이동하기


스탈린의 다차(별장)
Дача И.В. Сталина
주소 : Курортный просп., 120, корп. 2, Сочи​
https://yandex.ru/maps/org/166991449820 ​

스탈린은 1919년부터 1953년, 죽기 전까지 다차(별장)를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무려 20여 개의 다차가 곳곳에 있었다 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다차는 저명한 정치인이 사용하게 되는 등 출입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소치에 있는 스탈린 다차는 관광객이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

초록색으로 풀커버(?) 돼 있는 스탈린의 집. 초록초록한 소치와 깔맞춤했나보다.


여러 독재자가 그러하듯, 그 역시 성장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누군가로부터는 호평을 받기도 하고, 압박적이고 잔혹한 통치 방식으로 악평을 받기도 한다.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 괴롭히는 사람은 글러먹었다며(?) 독재자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나지만.. 그래도 미국과 세계를 호령했던 소련의 통치자는 어떤 데서 지냈는지는 또 궁금해졌다.



내부로 들어가니, 마치 우리네 60년대 좀 부잣집 주택 느낌도 들었다. 뭐랄까, 분명히 돈은 많이 들인 것처럼 고급지고 웅장하지만.. 궁전처럼 럭셔리하고 화려하단 느낌은 아니었다. 확실히 러시아 황실의 화려함은 온데간데없고, 소련의 공산주의만이 남았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햇빛과 사치를 싫어하던 지도자 스탈린의 취향이 다차에서도 느껴졌다. 일반적인 휴양 저택 분위기는 확실히 아니었다.


암살을 두려워하던 그는, 문에 있는 열쇠 구멍에도 조청이나 엿보는 걸 방지할 수 있는 특수걸쇠를 만들어두었다고 한다. 함께 구경하는 아이들과 신기해하면서 관찰도 해보았다.



이렇게 스탈린의 모습도 모형화해 놓았다. 이곳은 스탈린이 집무를 보고 잠을 자던 곳이다. 이런 곳에서 그 넓은 소련을 다스릴 전략 회의를 했구나, 미국을 이길 계략들을 짜냈구나 싶어 괜히 신기했다.


옛 소련의 멋진 과거를 동경하며 소련 노스탤지어를 갖고 있는 러시아인들에겐 뭔가 뜨거운 게 느껴질 것 같았다.


스탈린이 썼다는 침대. 유치원생이 쓸법한 사이즈다..!


시간을 맞추어 가면 가이드와 함께 투어를 할 수도 있는데, 나는 20분 기다리기가 싫어 혼자 관람했다. 하지만 가이드가 워낙 많아 (엿들으려 한건 아니지만) 엿듣기가 쉬웠다.


그러다 듣게 된 것은, 일만 할 것 같은 스탈린도 노래를 좋아해 LP를 즐겨 듣기도 했고, 체스, 당구 등을 즐겼다고 한다. 그런데 당구 실력은 형편없었다는 가이드 말에 모두가 빵 터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당구를 너무 사랑했던 그는 꾸준히 당구를 쳤다는데 소치에서 가장 즐겨 플레이하던 라이벌은 전기 기술자였다고 한다. 동료들과도 자주치곤 했는데, 지면 “이제 너랑 안 놀아. 우리 일만 하자!” 하고 삐지기도 했단다. ㅎㅎ


스탈린의 취미 활동

스탈린은 관절이 안 좋아서 요양 차 소치에 내려온 거라고 한다. Matsesta라는 지역에 있는 유황온천이 매우 유명해 치료를 하려 했단다. 관절이 안 좋은 그를 위해 스탈린 보폭 맞춤형으로 계단도 12cm로 만들었다 한다. Very Important Person이 되면 계단으로도 호사를 누리는구나..(?)


지금은 물을 뺀 실내 수영장.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제법 깊다. 수영을 잘했던걸까..!
2층으로 올라가면 있는 연회장. 여기서 파티같은걸 했겠지?


그리고 2층에 가면 연회장과 다도 공간이 있다. 날씨가 추운 러시아에선 차를 재배하기 어렵다는데, 소치에선 그게 가능하다. 차를 소치에서 만들게 된 건 스탈린의 명령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치 마쩨스타 차밭. (사진 출처 : 얀덱스 젠)

https://www.matsestatea.ru/excursions/?ysclid=lrlpg9616k739600814 


위 링크에서 차밭 견학을 예약해 볼 수 있다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가볼 만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보성 차밭이랑 비슷한 느낌 아닐까(?) 싶어서 스킵..! 하고 스탈린 다차 2층 작은 다도 공간에서 소치의 차를 경험해 보기로 했다.


어떻게 소치에서 차밭이 시작됐는지, 녹차에 대한 설명도 해준다. 중국에 자주 가서 차 탐방 출장(?)도 다녀오신다고 한다. 저기 위 동그라미가 차인데, 열어보고 향을 맡아본 뒤 맘에 드는 걸 살 수 있다. 내 맘에 쏙 든 건 우롱차. 향이 정말 좋았다.


하지만 뚜껑이 기념품 느낌이 안 나서 고민했더니, 원하면 스탈린 모양 뚜껑으로 바꿔 끼워줄 수 있단다. 대부분 러시아 사람들은 스탈린 얼굴 있는 차가 마음에 들어도 스탈린 얼굴 가져가기 싫다고 노멀 한 걸로 바꿔달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오히려 고맙다며 웃어 보였다.


스탈린 뚜껑으로 바꿔 끼워온 나의 소치 우롱차 ㅎㅎ


스탈린 가족과 생애에 대한 이야기, 사진들, 스탈린이 죽던 날 신문 등등도 전시되어 있어 스탈린에 대해 알기 좋았다. 소련을 꽉 잡고 있던 통치자는 어떤 데서 살았는지 보는 것도 재밌었다. 나쁘다 잘했다를 떠나 비범한 사람인 것은 맞으니..


이제 스탈린 다차의 주인은 이 고양이인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지나다녀도 신경도 안 쓰고 쿨쿨 잘 자던, 스탈린 침대 방 마스코트 고양이


스탈린 다차는 소치 완전 시내 중심에서 차로 한 15분 떨어져 있고 약간 산?으로 들어가야 해서 택시 잡는 게 어려울까 봐 걱정했는데, 다차 가는 택시도, 다음 목적지로 가는 택시도 잡기 수월했다.



덴드라리 식물원


덴드라리 식물원 앞에 있는 피자 집으로 가서 점심을 때운다. 동네 식당 같아 보였는데 맛있었다. 피자집에서 초밥롤도 팔길래 피자 대신 초밥을 먹었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이 보양식으로 많이 먹는 치킨 수프를 시켰다. 이번 여행의 모토는 1식 1 알코올이니만큼 와인도 거나하게 곁들였다.



비가 억수같이 오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차들이 물을 튀기며 지나갔고 신발에도 물이 들어와, 얼른 보고 가야겠다 싶었다.


парк Дендрарий
주소 : Сочи, Краснодарский край
https://yandex.ru/maps/?ol=geo&text=%D0%BF%D0%B0%D1%80%D0%BA%20%D0%94%D0%B5%D0%BD%D0%B4%D1%80%D0%B0%D1%80%D0%B8%D0%B9&sll=39.742429,43.572013&sspn=0.010712,0.008345 ​


덴드라리 식물원은 한마디로 부자 아저씨가 가꿔둔 대규모 정원인데, 겨울에도 이렇게 초록초록한 러시아를 만날 수 있어 이색적인 곳이었다.



대로변을 중심으로 위쪽 정원과 아래쪽 정원으로 구분되는데, 티켓은 320 루블로 둘 다 볼 수 있게 했다. 아래쪽 정원도 보면 좋은데, 메인인 위쪽만 간단히 보고 가기로 했다. 케이블카도 있었다는데 운영을 이젠 안 한다 한다.


동양스러운 부분들
왼쪽이 덴드라리 식물원 만든 분

참 아름다웠다. 비가 와서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발만 젖지 않았다면) 비 덕분에 오히려 감성이 촉촉해지는 식물원이었다. 정성이 느껴졌고,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이곳을 꾸몄는지가 느껴졌다. 동남아처럼 열대 식물도 많은데 건물이나 분수는 또 유럽식이고, 중간중간 일본식 정자와 대나무가 있어 이곳만의 짬뽕스러운데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었다!



해안기차

카페에서 잠시 몸을 말린 뒤, 숙소에서 짐을 찾아서 소치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바다와 석양을 보기 위해 4시 반 출발 기차를 탈 계획이었다. 기차는 자주 있는 편이고, Russian Railway 어플로 미리 예매를 하고 갔다.


나는 소치역에서 Adler (아들레르) 역까지만 갔는데, 다음 행선지가 크라스나야 폴랴나라면 Roza Khutor (로자 후토르)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게 낫다. 그걸 몰라서 난 아들레르까지 기차 타고, 거기서 택시 타고 크라스나야 폴랴나로 들어갔는데 택시 값이 한 3만 원 나왔다..


소치 기차역 플랫폼

아무튼! 이건 소치 기차역 플랫폼 사진이다. 기차역 건물이 있는 쪽이 위 사진의 왼편인데, 기차가 들어오면 타서, 기차역사 쪽으로 앉아야 한다. 그래야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바다를 볼 수 있다.



약 30-40분의 시간 동안 이런 황홀한 뷰를 볼 수 있다. 사진에 차마 담지 못했지만 여러 생각에 잠기게 하는 아름다움이었다.


소치의 겨울 바다는 다소 거칠었다. 바람에 파도가 착-착 일어나고, 그 위로는 황홀한 석양이 장엄하고도 화려하게 펼쳐졌다. 마음이 왠지 모르게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석양이었다.


아들레르 역사에서 찍은 야경. 비가 와서 위엔 먹구름이 꼈는데 아랫부분렌 석양으로 하늘이 붉다.



크라스나야 폴랴냐

아들레르 역에서 택시 아저씨와 실랑이가 있었다. 내가 있는 곳으로 날 픽업하러 가긴 힘드니 나보고 10분 걸어 자기가 있는 데로 오란다. 여행하면 꼭 한번쯤은 있는 황당한 시츄에션.


하지만, 취소하고 다른 택시를 다시 잡았는데, 운 좋게도 택시가 업그레이드 돼서 편안하고 친절한 아저씨와 크라스나야 폴랴냐 지역까지 왔다. 오히려 잘 됐지 뭐!




이번 여행에서 제일 기대하던 크라스나 폴랴나.

하이라이트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정말 멋졌다. (이건 다음 편에서 쓰겠다.)


우선은 도착해서 만난, 크라스나 폴랴나의 숙소!

Вальс цветов Редэнс
주소 : ул. Мичурина, 10, п. г. т. Красная Поляна
https://yandex.ru/maps/org/150371277457​​
Walts of flowers

어디 강원도 별장 같아 보이는 외관과 방 디자인. 그럼에도 리뷰가 5점 만점에 5점이라 예약해 봤는데, 막상 가보니 인테리어는 할머니스러워도 너무 깔끔하고 쾌적했다. 기분이 편안하고 상쾌한, 자연 속에 있는 느낌이랄까? 리셉션 언니(동생일 수도 있지만) 도 너무 친절했다.


수영장은 무료, 사우나는 유료(1시간에 4만 원 돈)인데 기왕 쉬는 거 사우나도 하자! 싶어서 사우나도 그날 21시로 예약했다. 나이가 드는지 지지는 게 최고다. 기분이 더 좋아졌다.


간단히 짐을 풀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식당으로 갔는데 웬걸.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크라스나 폴랴나 지역 1위 식당이었다.

Трикони
주소 : ул. Мичурина, 1, п. г. т. Красная Поляна
https://yandex.ru/maps/org/1194238424 ​

소치 바다 봤으니 생선 먹자 했는데, 레알 그냥 생선 구이가 나왔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이모 공깃밥 추가요 “ 를 외치고 싶었지만.. 감자튀김으로 탄수화물 보충하며 맥주와 와인을 마셨다. 술도 음식도, 분위기도 매우 훌륭했다. 자리가 없어 바테이블에 앉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웨이터가 너무 바빠서 감자튀김을 2개나 갖다 줬다. 하나만 시켰다 하니 미안하다며 그냥 서비스라 생각하고 두 개 다 드셔도 된단다. 배가 불러 손도 못 대고 계산하고 일어서는데, 맞은편에 앉아있던 부자가 감튀를 탐냈다.

 

아버지가 “안 드시면 저희가 먹어도 될까요..”하더니 아들에게 ”어머나 하늘에서 감자튀김이 떨어졌어 “ 했다. 행복하게 먹는 둘의 귀여운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났다. :)


숙소로 복귀하여 사우나에서 몸도 지지고, 노천 수영장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자니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었다.


완벽했던 소치에서의 2일 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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