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과 초겨울이 겹치는 11월은 유난히 춥다고 느끼다가도 12월이 오면 따뜻하다고 생각이 바뀐다.
그것은 아마도 마음이 11월보다 관대해져서 그런 건 아닐까?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일 년을 되돌아보면서
‘벌써?’ 하는 생각에 뚜렷하지도 않은 지난 시간에 대해 자책도 하면서 거기에 초조함까지 더해져
더 춥다고 느끼는 것이겠지.
기억할 만한 행사나 추억이 없었으니 더 그럴 테고.
해마다 그렇게 느껴왔던 것 같다.
미리 당겨서 12월의 분위기를 만들어 보겠다고 부산스럽게 집안을 바꿔보아도 역시 12월은 12월이 되야 제대로 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마지막 달이니만큼 올해도 바쁘게 살아온 자신들에게 선물해야 한다며 복수하듯 쇼핑한다고 들었다.
표현이 다소 과해서 그렇지, 감사하다는 뜻인 것이다.
무탈하게 잘 보내서, 건강하게 잘 지내서, 아직 직장이 있어서 등등...
크리스마스가 주는 기쁨과 설레임은 단연 최고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그리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갖가지 케롤 송이 더욱 설레게 만든다. 거리마다 반짝이는 불빛은 황홀하게까지 하니 그런 기분 좋음이 추위를 이기는 것은 아닐까 싶다.
조금 있으면 자선냄비가 걸어지고 땡그렁땡그렁 하는 종소리에 끌려 지폐 한 장 슬그머니 밀어 넣고 나면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뿌듯함에 12월을 따뜻하다고 느끼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도 모르게 겸손해지고 순한 양이 되는 때는 건강검진 받고 결과 들으러 가는 날과 12월에 접어들 때이다.
성적표 받는 수험생처럼 긴장하며 검진 결과를 듣기 위해 가는 동안 전철안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이름이 불러지고 의사 선생님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의 내 모습은 아마도 순한 양이 었을 것이다. 결과가 생각보다 좋고 특이사항이 없다고 했을 때 그땐 순한 양이 아니라 기뻐서 껑충껑충 뛰는 망아지가 되기도 했었다. 그리도 며칠이 지나면 처음부터 망아지였던 것처럼 활기차게 살다가 12월에 와서야 다시 씩씩한 망아지에서 순한 양으로 돌아오게 된다.
12월에 다시 한 번 순한 양이 되고 싶은 것은 누렸던 복에 감사하고 이어서 시작되는 새해엔 겸손한 마음으로 순하게 출발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일 년을 잘 살아왔는지 스스로 평가하게 만드는 달, 12월.
12월은 그런 달이다.
올 해부터는 특히 감사한 일들만 기억해 두려고 한다.
부정확한 기억을 더듬어 굳이 나 자신을 책망하고 자책한다면 영민함이 예전같지 않은 것에대해 서글퍼질테고 나이탓으로 마무리 짓기엔 너무 초라해질 것 이다.
반면에 감사한 일들을 생각해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고 마음이 행복해진다.
그 중에서, 내 의지의 문제였겠지만 꾸준히 걷기를 실천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감사하고 특별히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가족들에게 감사한다.
올해의 마지막 달이니 만큼 조금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겨울에 어울리는 예쁜 테이블보를 깔고 냅킨과 크고 작은 접시들 그리고 빨간 양초에 겨울 꽃꽂이까지 준비해서 가장 귀한 손님인 아들, 딸을 위해 최고의 대접을 해 주고 싶어졌다. 작은 손 편지도 곁들여서.
장담하건대 딸내미는 그러겠지,
“엄마, 이거 디피용 아니야?ㅋ ㅋ”
“It’s all for you, rea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