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26. 21:44
어렸을 적부터 나는 코피가 참 자주 났다. 초등학교 때쯤인가 노래방에서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를 부르다가 갑자기 코피가 흘러서 마저 노래를 부르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어쩐지 그때 노래방의 광경이 아직도 선명하다. 같이 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애석하게도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친구였을 그 사람은 너무 놀라 달려가서 화장실 휴지를 뜯으러 뛰어나갔고 나는 그 사이에 부르는 이 없이 흘러가는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 반주를 듣고 있었다. 똥땅 따다다당 땅 따다…. 이름도 얼굴도 이제와선 모를 그 친구는 코피에는 너무 과한 양의 휴지를 집어다주었고 미러볼은 번쩍번쩍거려서 그 희미한 얼굴 위를 초록 빨강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그 휴지를 받아들고 코를 감싸쥐었는데 코피가 흘렀던 순간보다 저렇게 반주가 뚱땅뚱땅 나오고 있는 와중에 내가 켜진 마이크 앞에서 "괜찮아, 진짜 괜찮아" 를 반복했던 그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려퍼지던 것이 더 선명하게 기억 난다. 왠지 매우 창피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고음이 너무 높아서 코피가 난 것 같지 않은가 무슨 코믹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그 당시 나는 내 노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스스로 용서가 안 됐다. 나는 무려 합창단 메인 소프라노였다고. 얼마 전에 구대회에서 은상도 받았다고! 어쨌든 한 번 흐르기 시작한 코피는 친구가 극구 괜찮다고 말한 나를 두고 낭만고양이를 취소한 뒤 다음 곡을 예약하고 부를 때까지 났다. (코인 노래방이 아니어서 노래가 안 끊기는 게 중요했다.) 휴지는 점점이 피로 물들었고 코는 하나도 아프지 않고 그저 조금 근질거렸다. 분홍 노랑 파란빛의 노래방 조명 색깔로 자꾸만 물들어가던 피 젖은 휴지. 괴이하다.
코 혈관이 유독 약했던 건지 코가 자라는 와중에 으레 겪는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로 그때는 코피가 참 자주 났다. 자다가 콧물인 줄 알고 손등으로 슥 닦아냈는데 피여서 자다 말고 일어나 새벽에 화장실에서 불을 켜놓고 코피가 멎을 때까지 물로 코를 닦곤 했다. 하얀 세면대를 적셔가던 코피와 물에 닿으면 피와 함께 우글우글한 모양으로 변하면서 번들거리던 내 인중과 그 쇠비린내. 코피가 나는 중이고 또 이렇게 혼자 깨어 화장실 거울 앞에 서있는데도 졸음에 겨워 도저히 눈이 떠지지 않던 그 광경. 겨우 닦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면 여전히 고이 주무시고 계시던 할머니와 또 코피가 날까봐 물렁물렁한 코를 여러 번 만져보며 천장을 올려다보다 잠이 들었던 나. 어느 날은 자느라 코피가 나는 줄도 모르는 바람에 베개에 피가 점철이 됐다. 깨자마자 흑갈색으로 얼룩진 베개를 보며 가장 먼저 아 할머니한테 혼나겠다 싶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는데. 침대보나 이불이라면 몰래 가지고 가서 어설프게나마 빨면 되었지만(왜 이래. 다들 이불에 오줌 한 번씩 싸봤잖아.) 그 나이의 나는 베개 같은 건 영영 빠는지도 모르고 그냥 베개는 원래 그렇게 생긴 물건이며 좀처럼 더러워지지 않는 무언가라고 생각했었다. 모르는 척 베개를 이불로 덮어놓고 화장실에 가면 콧구멍에도 볼에도 입가에도 말라붙어 있던 피. 아 나는 역시 뱀파이어의 혈족 뭐 그런 것인가…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코피를 질질 흘리고 다닐 수는 없다…(야 웃기지 마라 뱀파이어가 왜 피를 흘리냐) 생각하면서 역시 모르는 척 세수를 하고 학교에 다녀오면 베개가 다른 베개로 바뀌어 있었다.
그때는 코피가 나면 고개를 쳐들라고 하는 지금의 의학상식으로는 사실 말도 안 되는 게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었는데 때문에 나는 내 코피를 (강제로) 많이 마셨다. 수업시간에도 툭하면 코피가 났고 엎드려 자다가 코피가 또 나서 교과서가 젖은 적도 있었다. 아무튼 그때마다 친구들이나 어른들은 호들갑을 떨며 어서 빨리 고개를 들고 콧등을 손으로 짚으라고 야단이었고 나는 그 뜨겁고 점성이 하나도 없고 꼭 입천장과 코 사이에 있는 어떤 공간 쯤으로 흘러오는 것 같은 그 피를 고개를 든 채 꼴딱꼴딱 삼키는 게 일이었다. 그러고 천장을 보고 있으면 꼭 눈물이 났다. 누군가는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든다지만 실은 고개를 들면 없던 눈물도 차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고.
코피로 난 야단은 비교적 5분 안에 수그러들었다. 휴지를 가져다 주고 고개 쳐들고 있어 그칠 때까지! 얼른 얼른! 이라고 호들갑을 다 떨고 난 후에는, 내가 둘둘 만 휴지로 한쪽 코를 우스꽝스럽게 틀어막고 있든 죽어도 그렇게 휴지를 코 안에 말아 끼우긴 싫어서 휴지로 닦아내고 닦아내고 닦아내길 반복하든 고개를 쳐들고 있으라는 권고를 어기고 고개를 숙인 채 코에서 흐르는 피가 책상이나 바닥에 꼭 동그랗게 떨어지는 모양을 관찰하고 있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5분 동안 세간의 주목을 다 받고 그 다음은 방치라니 이것이 바로 돌고 도는 인생의 가장 작은 톱니바퀴라 비한들 누가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을까.
그 당시 코피-생애주기에 있던 나는 특히 여행을 가기 전날이나 여행을 가는 길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코피를 흘렸다. 과한 설렘과 기대감 때문에 코피가 난다는 것은 지극히 만화적 표현이지만 꽤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나름의 신빙성을 갖게 된 계기가 여기에 있다. 수련회 가기 전날에 짐을 싸다가 갑자기 코피를 흘려서 한 시간 동안 멎지 않은 적도 있었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코피를 흘리기도 했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코피가 주르륵 흐른 적도 있었다. 그쯤 되니 나도 엄마도 할머니도 능숙해져서 나는 항상 휴대용 티슈(보드라운 것)를 가지고 다녔고 코피가 나면 잽싸게 코를 틀어막거나 휴지에 코를 쿡 묻고 있곤 했다. 능숙해진 나는 코피가 날 때 고개를 쳐드는 게 전혀 효과가 없고 그저 밥맛만 떨어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코피가 나면 잽싸게 몸을 쭈그려 고개를 떨어트린 채 앉아있었다. 콧등을 쥐는 것도 효과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저 잠깐 그렇게 동떨어져서 코피가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 코가 시큰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는데 시작이야 어쨌든 코피가 멎을 때쯤 되면 코는 하도 쥐어짜서 욱씬거리기 마련이었다. 보기에도 좋지 않고 5분 동안의 야단도 그렇고 (야단이 일어나지 않게 조용하게 처리하고 있다가도 옆자리 짝꿍이 너 뭐해? 너 코 파? 꺅 선생님 얘 피나요! 하면 끝이었다.) 대체로 코피가 났던 순간은 다 창피했던 것 같다. 창피함과 약간의 쓸쓸함. 괜찮냐고 호들갑을 떨어주던 애는 저만치 앞으로 가버리고 나는 멎을 때까지 맨 뒤에서 느릿느릿 걷던 그 기억들. 새벽에 혼자 쪼로록 물을 틀어놓고 계속 피를 닦아내던 백열등 밑의 광경들. 입에 남았던 찝찔함과 비린맛들.
마지막 코피라고 명명하면 좀 이상하지만, 그 코피-생애주기가 지나고 나서는 좀처럼 코피가 나는 일이 없다가 스물 한 살 때 대학에서 창작교실이라는 지극히 문창과스러운 MT도 OT도 아닌 중간 형태의 창작 워크숍을 떠난 날에 나는 마지막 코피를 흘렸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에 갑자기 코피가 흘렀고 유독 까불던 남동기 하나가 "으악 누나 죽지 마! 죽지 마!" 외쳤던 것이 기억이 난다. 다행히도 그 이후로는 코피가 나지 않는다. 정말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내가 이 코피에 대한 기억을 나열해보는 이유는 요즘 자꾸 코피가 나는 꿈을 꾸기 때문이다. 앞서 나열한 여러 감각들이 꿈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는데 어떤 회상의 장면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때의 그 기분과 함께 한쪽 콧구멍이 욱씬거리면서 깬다. 요즘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산 적이 드물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마치 콧물인 줄 알고 짝꿍 앞에서 빠르게 쓱 닦았다가 손등에 묻어나온 피를 보고 나도 소리지르고 짝꿍도 소리 질렀던 것처럼……실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게 아닌 거 아니냔 질문을 스스로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코피 기분'이라고 셀프 명명키로 했다. 장황하게 정리하자면 조금 창피하면서도 코가 시큰거리고 뜨겁고 무거운 물이 입천장과 코 밑 어딘가에 고이고 찝찔하고 씁쓸하고 쓸쓸한 그런 기분. 왜 하필이면 코피가 나는 꿈인가 생각하다보니 저마다 '코피 기분'이라는 게 있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기분에 이름을 좀 붙여줘 보면 어떨까. 이름 붙이고 5분 동안 호들갑 떤 다음 그칠 때까지 결국엔 그냥 내버려두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없으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