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단씩, 다시
어느 정도 회복하여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엔 세상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다는 게 낯설었다.
병실의 기계음도, 복도 끝에서 들려오던 간호사의 발소리도 없었다.
익숙한 내 집인데도 어딘가 어색했다.
몸은 훨씬 편했다. 누워도, 앉아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자유가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병원에서는그대로 침대에 누운 채 기저귀에 용변을 보았고, 그 후에 간병인을 부르면 뒤처리는 그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집에서는 내 두 발로 화장실에 가야 했고, 그 당연함조차 어색했다.
병원침대에서는 침대에 누워있다가 앉으면 그곳이 식탁이었으나, 집에서는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고, 내 손으로 음식을 입에 떠 넣어야 했다.
살아오는 동안 해왔던 당연한 것들이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지면서 매 순간 몸의 불편함을 더 크게 실감했고, 그 때마다 마음은 어두워졌지만
이상하게도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손이 잘 움직이지 않고, 씹는 게 어색해서 음식을 흘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아도, 그건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병원에서는 누워 있는 나를 세상이 돌봐주었다면,
집에서는 일어서는 나를 내가 돌봐야 했다.
그 차이가 처음엔 잔인하게 느껴졌지만,
어쩌면 진짜 회복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싶다.
몸이 낫는다는 건 단순히 걷게 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스스로 다시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현실에 부딪히며 필요해진 것은 재활해야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다잡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하루를 버티는 법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잠시라도 햇빛을 쬐었다.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햇살이 방 안으로 스며들면, 그제야 비로소 하루가 시작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의식 같았다.
이런저런 글을 써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불편해진 몸으로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한 문단 한문단 이런저런 글을 써 나가며 완성되는 것은 글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나의 각오였던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