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의 묘미를 알려준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 함께 걸을 때보단 그 사람을 보러 갈 때나 바래다주고 홀로 귀가할 때가 사실 더 즐거웠다. 여하간, 계기는 그가 만들어줬다. 너무 늦게 알았을 수도 있으니 그 점은 고맙다. 그가 내게 얼마나 힘들고 슬픈 시간을 하사했는지와 관계없이.
작년 겨울부터 올해 초까지, 아쉽지 않을 만큼 걸었다.
겨울과 오롯하게 내밀한 추억을 만든 건 처음이다.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에 혼자인 나는 없었다.
눈을 맞고 여행을 가고, 하물며 집안에서 바깥을 구경할 때도 누군가 함께했다. 중학생 때는 자주 놀던 친구와 한 시간이 훌쩍 넘는 휴대폰 수리 센터까지 바람을 뚫고 걸어갔다. 그날 입었던 카키색 패딩과 그 애와의 말장난이 떠오른다. 깜깜한 학교 운동장에서 설익은 컵라면을 씹어 먹었던 것도 생각난다.
성탄에는 케이크를 만들어 먹거나 작은 과자 꾸러미를 선물하고 다녔다. 거실에 이불을 덮고 옹기종기 모여 영화도 봤다. 내게 겨울은 혹한과 한파가 무색하게 따뜻하고 포근한 감각이 깃들어 있었다. 딱 그런 이유로 겨울을 가장 좋아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추위는 견디지 못할 것이 됐다. 나가고 싶지 않았고, 내리는 눈도 아름답지 않았다. 설거지를 하느라 보기 안쓰러울 만큼 손이 텄다. 통학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에 서 있으면 끔찍할 만큼의 칼바람이 불었다. 기모 바지 안에 레깅스를 덧신고 상의를 두세 겹씩 껴입었다.
이만큼 추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양팔을 품 안으로 잡아끌며 가끔 생각했다. 잘 먹던 음식에서 알레르기가 발생하는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면역력 저하 정도의. 그러나 한 번씩 마음이 섭섭해진다. 이제 나는 냉기를 무마시킬 만큼의 따뜻한 시간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코가 시린데도 이상하게 달콤한 겨울 냄새는 밤에 유독 짙어진다. 당시 즐겨 듣던 음악에는 아직도 찬 바람 향이 묻어난다.
차가 한 대도 없는 도로, 전선 줄, 신호등, 고양이, 불 꺼진 간판, 띄엄띄엄 놓인 가로등, 공원, 눈, 표지판, 아주 가끔 스쳐 지나가는 연인과 또 다른 산책자, 입김을 만들고 없애다 조금 흥얼거리는 나. 다른 어느 계절도 아닌 겨울에 그 기억을 빚을 수 있어 다행이다.
혼자 걷는 시간이 얼마나 재밌는지 배우는 데 그 창백하고 외로운 날씨가 분명 일조했을 것이다. 어둑한 거리에서 저 먼 아파트 불빛을 응시하면, 꼭 우주에서 세상을 조망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 안에서는 내 안의 겨울 편린―영화를 보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추울수록 함께 붙어 있는―이 상영되고 있겠군, 생각했다.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라는 노래 제목을 어느 책에서 보았다. 산책도 산책이지만 나는 그 시간을 통해 선뜻, 외로움을 껴안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누군가와 떠들지도, 온기도 나누지 않고 이어폰 속 노래에만 귀를 기울이며 한적하고 검소해진 동네를 걸었다.
어쩌면 가장 본연에 가까울 풍경에서 어쩌면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서. 아침이 밝아올 때의 상쾌함보다는 모든 게 한바탕 끝나고 애매하게 시간이 지난 공터의 처량함이 세상의 본질에 더 가까울 것이다. 가장 당연한 상태일 것이다. 새 울음과 일출은 그래서 더 소중해진다.
어제도 밤중에 홀로 귀가했다. 야심한 역사와 골목을 지날 때 조금 무서웠다. 일부러 모자를 뒤집어쓰고 빠르게 걸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주먹을 힘차게 휘둘렀다. 겁먹는 사람보단 겁주는 사람이 되는 게 그 밤에는 안전하다.
실내에서도 종종 위험을 감지할 때가 있다. 아늑한 방이 오히려 숨 막히는 공간이 된다. 침대에 눕기 전에 가습기 조명을 켜거나 휴대폰으로 영상을 튼다. 잔 소음이나 불빛이 있어야 잠이 온다. 어느 무엇도 아닌 내 눈꺼풀이 가장 무서운 순간이다. 아울러 눈 감는 그 즉시의 칠흑이.
오히려 야외로 몸을 내보내서 잡생각과 불안을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은근한 통금이 집안에는 있고, 나는 그 규칙 안에 사랑으로 귀속돼있기 때문에 나갈 수 없다. 아쉬운 대로 창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들인다. 노래를 작게 따라 부른다.
세상에 아주 혼자 남은 느낌을 좋아한다. 다수 안에서의 고독처럼 소속을 잃고 배제되는 떨어짐과 조금 다른 결이다. 외계 행성이나 운석이 돼서 둥둥 떠다니는 듯한 시야. 그 느낌은 밤 산책에서만 받을 수 있고, 이 아련한 고립감은 찬 냄새가 풍길 때 유난해진다.
겨울은 더 이상 내 최고의 계절이 아니지만 그 추위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을 길어다 글을 쓰곤 한다. 차갑지만 아름답고 밉지만 고마운, 이 양면의 감각도 그 없이는 몰랐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