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덕여 Mar 22. 2023

2023년 3월을 처음 살고 있는 30대 남자의 단상

3월 넷째 주

1.

 사과, 고등어 그리고 고양이. 출근하며 사과를 하나 먹고 점심으로 고등어 백반을 먹은 후 자기 전 고양이가 나오는 쇼츠를 보는 것만으로 하루의 삶을 만족하는 나 자신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예전, 그러니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삶의 방향은 수직 또는 수평으로만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리면 더 높은 등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열심히 실적을 쌓고 진급을 하다 보면 부자가 되어 '높은 아파트'에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노력 여하에 따라 위를 향해 나아갈 줄 알았으나 노력이 부족했는지 운이 따르지 않았는지 몇 번의 실패 후엔 죽음이란 이정표를 보며 하염없이 '노화의 길'을 걸어가는 듯 한 느낌이었다. 

 제자리걸음이라 할지언정 10년 뒤 나에게 원망 듣고 싶지 않아 하루하루 후회 없이 살려 애쓰던 어느 날, 가끔이지만 츄르를 사는 나의 모습과 (고등어를 오래오래 먹고 싶단 불순한 의도이지만)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는 내 모습을 보며 '수치'상 올라간 것은 나이뿐이지만 그럼에도 마냥 제자리에 있는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거 보면 사실 삶은 수직도 수평도 아닌 나선을 그리며 오르는 것이 아닐까. 계속해서 같은 풍경 속에서 맴도는 듯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면 시간이 흐른 뒤 벗어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다른 '위치'에 도달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가만 보니 늘 같은 자리를 맴돌 듯 지겹고 권태롭지만, 설렘과 떨림에도 불구하고 천연덕스럽게 새로운 사람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아직까진 부담 없이 식당에서 "고등어 백반 하나요!"를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으며, 사과의 단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으며, 여유롭진 않지만 가끔 만나는 고등어태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츄르를 지르는 나를 보며 마냥 같은 선상에서 제자리걸음하 듯 걷고 있지만은 않은 듯한 것 같기도 하다.




2.

 명동블루스. 서울 중구에 있는 명동 1-2가, 충무로 1-2가, 을지로 1-2가 등을 포함하는 지역을 일컫는 명동은 나에게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장소이다. 가족들 중 일부가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기에 어릴 적부터 자주 갔었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과거와 현재가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는 듯한 건물들의 모습이 좋았다. 


 혼자 명동을 갈 수 있게 되어서부터는 주로 쇼핑을 하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또는 사람 구경하기 위해 갔었다. 목적이 어찌 되었던 나는 늘 이곳에 있었고 이곳을 사랑했다. 이곳에 있으면 배터리가 충전되는 듯한 느낌이었으며, 위로를 받았고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었다. 이런 연유로 나는 명동에 직장을 얻기까지 했었다. 


 언젠간 명동에 대한 사랑을 담아 '명동블루스'란 노래를 만들 것이며, 명동에 작은 바를 하나 내서 찾는 이들에게 명동을 예찬할 것이다.



* 유니클로가 없어지고 엄청나게 큰 척테일러 매장이 생겼다. 




3.

 명동블루스 2. 외근을 나왔다가 오랜만에 명동엘 갔다. 멀끔한 정장에 타이를 매고 연신 전화를 하며 바삐 있어야 할 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후줄근한 후드티에 먼지 묻은 운동화를 신은 내가 있었다. 


 불과 얼마 전 일인 것 같은데 생각보다 시간은 많이 흘러있었고, 느낌은 그대로 인 것 같은데 그때 보다 나는 나이 들었고 나를 둘러싼 환경은 그때와 많이 바뀌었다. 당시만 해도 이곳에서 하고 있는 일과 내가 속한 집단이 나의 전부인 거 마냥 생각했고, 행동했다. 


 지는 것도 싫었고 무시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싫었기에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랬기에 사람들과의 내/외부 가릴 것 없이 '접대'란 이름의 술자리는 끊이질 않았고 담배연기를 싫어함에도 담배 피우러 가잔 권유에 오히려 앞장섰다.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어서였을까 모든 '리듬'은 무너졌고, 그제야 내 삶과 나의 일이 일치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오랜만에 지난 나의 동료이자 지금은 영혼의 동반자인 '차형'을 만났다. 멋들어진 콤비에 때깔 좋은 가죽 로퍼를 신은 그는 예전과 변함없이 바빴으며, 그의 전화는 쉬지 않고 울렸다. 나의 먼지 묻은 운동화를 슬쩍 쳐다보며 이것이 명동에서의 삶이었나 싶은 생각에 조금은 그리웠으나, 순간의 감정일 뿐 그곳에서의 사정은 그곳에서의 사정으로 두기로 했다.


 차형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귀신에 홀린 거 마냥 충동적으로 운동화를 하나 사가지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 뉴발과 척테일러에 미친놈. 




* 그는 늘 바쁘다.



* 엄청나게 맛있는 타르트와 커피집을 찾았다. 여긴 진짜다.



끝.

작가의 이전글 출장이라 쓰고 여행이라 읽는다. (부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