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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덕여 Mar 26. 2023

영화 <파벨만스> 스포일러 개많은 리뷰 아닌 감상문 1

스포일러라고 할 게 있을진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러함

https://www.youtube.com/watch?v=Pg5LoIPyXgk



1.

 물론 아직 얼마 산건 아니지만 (누군가는 먹을 만큼 먹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사람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이것은 필연 인연이 될 거란 느낌이 오는 그런 만남이 있다. 리차드 링클레어의 <보이후드>가 그랬고 재즈 트로닉의 <Cinematic> 앨범이 그랬다. <파벨만스>를 보기 전 그런 느낌이 스멀스멀 느껴졌는데, 역시나 이런 촉은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2.

귀를 닫아버린 어른들 때문에 '라떼란 말이야...'란 말이 밈 처럼 되었지만, 몸소 이 '아스라한' 세상을 체험한 이전 세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런대로 재밌고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상대를 대하는 화자의 태도가 중요하겠지만,,, 2000년 전 소크라테스도 '요즘 애들 말 안 듣는다'라고 남겨놨을 만큼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이 오늘내일만의 일도 아니기에 이 갈등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듯싶다.


 저 먼 헐리웃의 예술가들도 나이 먹어 감에 따라 '라떼...'를 시전 하였는데, 능력자들인 만큼 술자리에 붙잡아 놓고 설명을 늘어놓지 않고 본인들의 '언어'로 작품을 남겼다.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가 그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토리노>가 그러했다. 스콜세지는 영화의 힘을 빌려 '그 시절'의 감성을 끌고 와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 이야기하였고, 이스트우드는 <그랜토리노>를 통해 '어른'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또 한 명의 거장 스필버그는 <파벨만스>를 통해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라떼는...'을 시전 하였는데, 사람 사는 게 별거 없는지 그의 '언어'가 탁월했는지 모르겠으나 이역만리 떨어진 '오늘'을 살고 있는 동양에 한 남자애의 온몸에 소름 돋치게 만들었으며 영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3.

 사실 오프닝 시퀀스를 보고 이 영화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영화'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개론서 펼쳐 들면 대개의 경우 초반 어려움을 겪는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기도 하고 '예술'이라 부르던 기존 매체들을 빌려 영화를 설명하기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으며(4D와 아바타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러하다.), 매스미디어를 '예술'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가란 근본적인 '늪'에 갇히기도 하는 등 쉽지 않다.


 물론 명석한 분들은 쉽게 그들의 의도를 이해하고 본인 스스로의 정의를 내리겠지만 나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참성을 갖고 발터 벤야민, 앙드레 바쟁, 들뢰즈 등 '고난'을 넘어 찬찬히 다 읽고 나면 이윽고 기술 발전에 의해 영화가 어떻게 흘러 왔는지 볼 수 있다.


 데미안 셰젤은 1920년대에서 30년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바빌론>을 통해 기존 예술과 영화에 대한 간극 그리고 '영화'란 매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시대빗대 설명하였다. 이에 반해 '거장' 스필버그는 에둘러서 설명하기보단 <파벨만스>를 통해 본인의 명확하게 설명했다.


4.

 스필버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파벨만스>를 홍보하지만, 큰 얼개에서 보면 실제 스필버그의 부모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가 존포드를 만났었는지 중요하지 않다. 모든 인물들은 대상화되어있으며, 특히 그의 부모는 스필버그가 생각하는 '영화예술'에 대한 의인화된 관념적 주체로서 상호 보완적이며 떨어져 있는 것 같으나 함께하고 있는 존재이다. (영화 후반 미치의 사진을 본 후 새미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버트의 대사는 지리다 못해 흘러내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오프닝 시퀀스에서 어린 새미에게 영화에 대해 서로 설명하는 버트와 미치의 대사는 영화예술 또는 스필버그의 영화자체를 설명하는 것이며 <파벨만스>란 '작품' 자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한 것이다.  



 5.

 감히 <파벨만스>는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 중 가장 주관적이며, 아트하우스의 성격을 띠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새미의 두 부모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과 요소가 대상화되어 있으며, 평생 영화에 빠져 살아온 어느 노인이 뷰파인드를 넘어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본인만의 언어'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영화는 평생에 걸쳐 한편 뿐이 못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쿠로사와 아키라의 <꿈>이 그랬고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가 그러했다.



6.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근 몇 년간 본 영화 중 가장 귀여웠으며, 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 소름이 가시지 않을 여운을 남겼다. 존 허트인가 싶었던 인물은 또 다른 '현시대' 거장 데이비드 핀처였으며 스필버그는 그런 핀처와 함께 '자기 시대'의 '영웅'의 말을 빌려 본인의 언어로 '영웅'에게 존경을 표했다.



7.

 스코어를 보니 장기 상영은 쉽지 않을 듯한데 내려가기 전에 눈에 선하게 남을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봐야겠다. 입에 거품이 생길 정도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에 미래의 나를 위해 또 보고 또 적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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