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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 한의사 손영기 Apr 18. 2023

올빼미

제주 한의사의 영화 이야기



"풍을 맞은듯 하옵니다."


"소경이냐. 니가 그것을 어찌 아느냐."


"아까 발소리를 들어 보니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숨소리 간격이 짧고 불규칙한 것이 성격이 조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해 풍을 부른듯 하옵니다."


"진맥도 안해보고 진단을 그리 내려서 되겠느냐."


"애초에 실로 진맥한다는 것이 다 헛소립니다. 


실을 쓴다는 것은 내명부 마마님들을 진맥할 수 없는 형편에서 나온 요식 행위일 뿐이고, 


실제로는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진단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이상은 영화 올빼미의 대사.


맹인이지만 뛰어난 실력을 지닌 주인공과 인재를 뽑으러 온 어의御醫와의 대화.


한의학의 진단법은 망문문절望聞問切.


환자가 호소하는 국소만 진찰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전체적으로 보고(望), 듣고(聞), 묻고(問), 만져서(切) 진단.


한의학에선 이를 사진법四診法이라 칭한다.


대중은 한의학하면 맥진만 생각하는데 맥진脈診은 절진切診에 속하는 것.


영화에 등장하듯이 맥진을 하지 않더라도 진단이 가능.


더구나 그 맥진이 실을 잡고 이루어지는 요식 행위라면 오히려 진단을 방해.


그런데 사진법四診法인 망문문절望聞問切은 중요도 순서로 나열된 것.


한의학의 진단은 본다(望) > 듣는다(聞) > 묻는다(問) > 만진다(切) 순서로 우선되니


관觀, 눈으로 관찰하는 진단이 가장 중요.  


망진에 능숙한 한의사가 제일 고수. 


진맥하지 않아 이상하다는 이야길 환자로부터 종종 듣는데


스승으로부터 어렵고 힘들게 망진법을 배운 내 입장에서 무척 섭섭하다.


상수上手의 기술을 배운 사람에게 하수下手 기술을 쓰지 않는다며 무시하는 꼴이라 그렇다.


스승이 망진의 대가이기에 내가 배운 것이 망진법이지만 나는 망진望診 이상으로 문진聞診을 중시.


듣는 진단의 비중이 망진 못지 않게 크다.


망진하는 입장에서 코비드에 따른 환자의 마스크 착용이 진단에 방해되지만


소리 듣는 문진이 부족해진 부분을 커버. 


팔강변증은 맥진 없이 망문문望聞問으로 충분.


다만 장부변증에선 절진切診에 있어서 복진腹診이 사용된다.


제주 관자재에서 시행되는 팔강변증, 장부변증, 육경변증에 있어서


팔강변증은 망문문望聞問으로 진찰되고, 장부변증은 복진腹診이 이루어지며 


육경변증은 문진聞診을 중시하니 여기에 맥진이 붙을 자리가 없다. 


내가 환자의 맥을 잡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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