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을 다닌 첫 직장은 사실 취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지원한 게 아니었다. 그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상태였고 바로 일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여행이 가고 싶었다. 그렇게 한 달 단기 알바를 할 마음으로 가볍게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오래 눌러앉아 일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내 찬란한 20대가 한 회사에서 막을 내릴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학창 시절부터 늘 마음속에 품었던 꿈은 ‘작곡가’, ‘작사가’, ‘영화음악감독’ 등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감성을 자극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 꿈과 전혀 무관한 식품을 온라인으로 팔게 될 줄이야.
첫회사는 소규모 중소기업이었고 입사할 당시 나는 어떠한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있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물음표를 가지면서도 정신없이 일을 했다. 월급날은 기다려지지 않은지 몇 년이 되었고, 하루하루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익숙해진 대로 안주하며 지내왔다. 그래서 그런지 내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매 순간 불안했다. 계속 이대로 지내다가는 정말 내 인생이 까만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주변에서는 나의 퇴사 결정을 엄청난 용기라고 말했지만, 나는 오히려 회사에 남아있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게 더 두려웠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렇게 첫 직장이 끝 직장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날 지배했다. 서른 살이 되어 퇴사를 하고 7개월의 쉼을 가졌다. 그 후 나는 바로 나의 두 번째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2017.10.20 - 전 직장(야근)
아, 이렇게 말하면 ‘첫 회사가 정말 별로였나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은 소도시에서 복지는 정말 좋았고 다른 지역에 있는 비슷한 규모의 회사와 견주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물론 동료들도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더 이상 내게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기에 아무 미련도 후회도 없이 그만둘 수 있었다. (좋은 추억과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던 회사. 지금은 전직동과 함께 더 돈독하게 잘 지내고 있다.)
일을 그만두고 쉬는 동안, 나는 어떤 일이 하고 싶은지 또 내가 추구하는 건 무엇인지 고심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걸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가던 이십 대와 삼십 대는 달랐다. 지금은 계획이라는 것을 하며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 하려면 경제적인 능력 또한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걸 느꼈달까. 그래서 그런지 두 번째 직장 또한 긴 시간 장기근속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의욕이 살아나게 만드는 곳으로 가야 했다. 나는 지난 1년간 운동을 통해서 얻은 건강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졌다. 그렇게 입사하게 된 곳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되었다.
내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일 원초적으로 생각해 보면 생계유지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일단 생계유지는 말할 필요 없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너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취미는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활력을 주고 도전할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가져다 주기에 앞으로도 쭉 즐길 수밖에 없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시작하면 그만두고 싶고 그만두면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게 일인 것 같다. 꼭 직장생활이 아니어도 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인정욕구를 채우고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며 삶에 기여하는 행위는 인간의 생존 본능이 아닐까.
2022.05.27 - 제주 함덕
나는 30대 중후반이나 혹은 늦더라도 40대에는 바다가 있는 곳에서 일을 하고 싶다. 제주도에 가고 싶다는 말이다. 사실 이번에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제주도로 훌쩍 떠나버릴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엄마는 "네가 원하면 어디로든 가야지"라고 말했다. 진짜 그럴 생각으로 구직 사이트를 뒤적거리곤 했었다. 내가 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싶었고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결국 제주도는 가지 않았지만.
10년 안에는 1년이든 2년이든 꼭 제주도 살이를 해보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도전해보고 싶다. 50대가 되기 전엔 바닷가 근처의 주택을 구매해서 나만의 감성으로 리모델링 후 공간대여업이나 에어비엔비 같은 걸 하고 싶다. (급변하는 시대인 만큼 그때가 되면 사회가 또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지만 현재까지 나의 큰 계획은 이렇다.)
현생에 여기저기 치이는 사람들에게 나만의 감성으로 꾸며진 공간을 통해 휴식과 안정을 주고 싶다. 머물다 가는 이들이 잠시나마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쉬다가 갔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위로를 받고 다시 삶의 의지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운영을 하고 싶다. 그렇게 나만의 작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대략적인 키워드는 공감, 휴식, 안정, 감성, 존재가치, 건강, 쉼 같은 것. 점점 AI화가 되어가는 시대에 인간에게 꼭 필요하고 제일 중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싶다.
AM 7:15 - 아침 출근길(기차역)
이제 서른 하나. 내가 곧 마흔을 향해간다고 생각하니 믿기지 않는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일이든 취미든 꾸준히 열심히 해볼 맘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라 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결은 비슷하다. 현실과 타협하되 내가 보람과 성취를 느끼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새로운 전문 분야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거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또 그렇진 않으니까. 만약 '직업'이라는 겉옷 때문에 배울 마음이라면 지금 하는 일과 진심 가득인 취미활동에 더 집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20대는 생각 없는 즉흥파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면 30대는 계획대로 움직이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다. MBTI로 치면 P와 J의 중간정도. 나는 극 P니까 말이다.
그리고 헬린이에서 헬짱 아줌마로, 더 나아가서 헬짱 할머니가 될 때쯤 큰 캠핑카를 개조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전국을 누비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여기에 내 인생의 동반자까지 있다면 너무나 행복하겠지? 벌써부터 김칫국을 항아리째 마시고 있다. 상상만으로도 설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