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유히 Feb 24. 2023

등산, 내 삶의 유일한 안전장치가 되다

학교 생활에 충실하지 않았던 산림과 학생이 뒷북 등산에 빠진 이유

나의 대학 전공은 자연계열인 산림자원학과였다. 어릴 때부터 공부에 관심이 없던 나는,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라는 엄마의 권유로 인해 인문계가 아닌 상업고에 진학하여 대학을 가게 되었다. 물론 내 고등학교 성적은 뱀의 머리가 아닌, 몸통 중상부 정도였지만.


산림과 재학 당시, 공무원 열풍이 불었고 부모님은 임업직 공무원이 되길 바랐지만 입학하자마자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학회장 입에서 ‘윤지, 걔는 남자였으면 한 대 쳤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에 애정이 없었다. 막상 보면 한 대 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그 흔한 전공 자격증조차 없고 사실 아직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과 특성상 산을 많이 올랐는데 그 당시에는 정말 왜 이 짓을 해야 하는 거냐며 불만이 가득했다. 그저 빨리 졸업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이랬던 내가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6년이 지난 요즘은 자발적으로 등산을 다니고 있다.


학교 다닐 땐 관심도 없더니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난 지금 왜 갑자기 등산을 다니냐는 대학 친구들의 질문에 명확하게 답변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게. 나는 왜 갑자기 산을 타게 된 걸까?’ 확실한 건 작년에 운동을 접하고나서부터였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익사이팅한 걸 찾게 되고 점점 활동적으로 변해갔다는 것이다. 


2022년 첫 산은 지리산 천왕봉으로, 자칭 나의 등산 메이트이자 헬스 트레이너였던 헬짱 티처와 함께 다녀왔다. 그 이후로 작년까지 총 열다섯 번의 산을 탔다. 둘 다 등산을 좋아하다 보니 큰 산은 대부분 같이 올랐으며 건강에 대한 가치관이 잘 맞아서 지금까지도 언니 동생하며 잘 지내고 있다. 


2022.07.16 - 산청 집현산


등산을 하다 보면 오고 가는 인사 속에 힘을 얻고 또 등산객들에게 많은 호의를 받는다. 나는 이런 부분이 참 좋다. 젊은 여성이 산을 오르는 게 신기한지 이것저것 챙겨주시기도 하고 한창 좋을 때라며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그 마음을 통해 뭔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 순간만큼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괜찮다는 말보다 더 괜찮았고 예쁘게 봐주시는 그분들의 마음을 기억하며 지금을 즐기며 잘 살아가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니까.


산을 오를 땐 정말 힘든데 ‘정상’이라는 고지에 다다르면 스스로가 대견하면서도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특히 땀을 식히며 앉아서 쉴 때 눈앞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근심으로 가득 찬 마음이 걱정 스위치 off를 누른 것 마냥 순식간에 평온해진다. 그리고 ‘결국 내가 올랐구나’, ‘또 한 번 해냈구나’, ‘남들과 비교할 필요 없이 내 페이스에 맞춰서 올라가면 되는구나’, ‘내 삶도 인생도 마찬가지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마 이런 마음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 같다. 다가올 한 주를 맞이할 에너지를 말이다. 더불어 내적 안정감도 같이.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내가 산을 타는 이유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또 무너지지 않기 위한 내 삶의 안전장치라고 해두자. 등산을 다녀오면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에 활력이 돋는다. 등산객들이 산을 타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아마 나와 비슷한 이유로 산을 오르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직접 물어본 적은 없어도 고요히 산을 바라고 있는 그분들의 눈빛을 보면 어쩌면 우리는 비슷한 걸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2022.05.27 - 제주 윗세오름 (어리목 코스)


내가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등산이기도 하다. 작년 봄, 퇴사 후 제주도에서 2주 살기를 한 적 있는데, 그때 한라산 정상과 윗세오름을 다녀왔다. 윗세오름을 혼자 오르면서 입이 쩍 벌어지는 경치를 보며 정말 너무너무 행복해서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았다. 마치 텔레토비 동산에 견학을 온 기분.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현실 속 세상이 아닌 것만 같았다. 뒤돌면 끝없이 펼쳐진 제주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었고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무릎을 꿇고 싶었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라는 걸 느끼면서 내년에도 이 행복감을 얻기 위해 꼭 오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려면 다시 충실한 일개미가 되어 또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지.


굳이 안 해도 될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재작년에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나의 첫 중고차 흰둥이를 바로 폐차시킨 적이 있다. 현재 재취업에 성공하고 나니 차가 너무 갖고 싶고 퇴사 방지용으로 확 질러버리고 싶지만 부모님이 크게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섣불리 행동할 수도 없는 상태. 근데 차가 너무너무 욕심난다. 


왕복 두 시간 출퇴근용 보다 등산을 다니기 위해 차를 갖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말하면 좀 이상하려나?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고 싶은 이 욕구를 참으려니 너무 갑갑하다. 뚜벅이가 된 상태에서 등산을 다니기엔 시간적으로나 거리적으로나 많은 제약이 따르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근데 차가 없는 사람들도 산을 잘만 다니는 걸 알기에 나는 그저 차가 갖고 싶은 마음을 등산을 앞세워 철없는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조금 더 자유롭게 등산을 다니려면 자가용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의 건강한 취미 생활을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잘 모르겠다. 곧 출근 예정인 회사에 먼저 잘 적응하고 나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지. 등산 얘기하니까 산을 타고 싶어 졌고, 곧 단풍과 억새군락지로 유명한 창녕 화왕산을 갈 예정이라 너무 기대가 된다. 이처럼 운동과 등산은 지금의 나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니까.


작가의 이전글 나는 왜 글이 쓰고 싶은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