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다시 말해줄래?
나는 같은 말을 두 번씩 하는걸 싫어한다. 뭐 그런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겠느냐만은 정말 싫다. 아마 그건 엄마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는 귀 한쪽이 잘 안들리신다. 선천적인건지 뭐때문인지, 사고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하여간 엄마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한쪽귀의 청력을 잃은 채 살아왔다. 내가 어릴 때는 그걸 몰랐다. “엄마~ 이거 내일까지 해야돼” “뭐?” 엄마에겐 항상 두 번씩 말해야했다. 그 어떤 짧은 말이라도. 두 번이면 다행이었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까지도 가곤 했다. 나는 엄마 귀에 대한 사실을 모른 채 ‘내가 발음이 많이 안 좋나?’라는 생각을 했다. 점점 발음에 자신이 없어져 웅얼거리는 투로 말을 했고 그 버릇은 아직도 남아있다. '엄마는 내 말에 관심이 없나봐' 몇 번씩 되묻거나 아예 듣지 못한 듯 답이 없는 엄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튼 나는 내 얘기에 관심이 없거나 내 발음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며 꽤나 자신감없는 아이로 자랐다.
그런데 웬걸, 밖에 나가면 아무도 내 발음을 지적하기는 커녕 되묻는 사람조차없다. 혼자 중얼거리듯 말한것도 기가 막히게 캐치해서 대답을 한다. 뭐야, 다들 소머즌가? 신기하면서도 같은 말을 두 번씩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다. 성인이 되고나서야 엄마가 귀에 대한 얘기를 알게 됐지만 나는 종종 그 사실을 까먹었다. 아니 까먹은척 하고 싶었던걸지도.
"엄마 이거 반찬 맛있다. 어릴때는 별로였는데 크니까 입맛이 바껴"
"뭐라고?"
"...아냐. 됐다."
같은 말을 수십년간 매번 두번씩 반복한다는건 어려운 일이다. 조금만 관심있게 들어주면 한 번에 대답할 때도 많잖아? 왜 자꾸 같은 말을 두번씩 하게 하는거야?
말하기를 그만두고 마저 밥을 먹는 나를 보고 엄마는 속에서 뭔가 욱 올라오셨나보다.
"니는 어떻게 남보다 못하노"
"..."
"밖에 나가면 다른 사람들은 몇 번이고 다시 말해주는데 니는 가족이라는게.. 엄마 귀 안들린다고 무시하나"
한 사람의 날선 말에는 그보다 두배 더 큰 목소리로 화답해주는 우리의 레퍼토리를 깨고 침묵을 지키는 나를 보자 엄마는 본인이 더 당황하신듯 2절 3절까지 가야 할 멘트도 거기서 끝이 났다. 우리는 침묵속에서 밥을 먹었다. 나는 엄마의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었던 건, 부끄러워서였는거 같다.
나는 두 귀의 청력이 멀쩡함에도 엄마가 하는 말들을 자주 까먹는다. 듣지도 않고 영혼없이 "응~" 대답만 하는 식. 이건 도대체 다시 말해달라고 하는 엄마보다 훨씬 자세가 나쁘다. 여기서 내가 엄마를 싫어하는 이유를 운명적으로 만난 단 한 문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모습속에 보이는 자신의 일부분을 미워하는 것이다. 나의 일부가 아닌 것은 거슬리지 않는다
- 헤르만 헤세
나의 일부가 아닌 것은거슬리지 않는다라.. 나는 이 문장을 처음 본 순간 깨달음을 얻었고 꽤 오래 곱씹었다.
아아, 내가 엄마를 미워하는 이유는 이거였구나.
나 역시 타인의 얘기를 잘 못듣거나 흘려들은 적이 많다. 나는 그런 내 모습을 싫어하고 있었구나. 그렇게도 안닮아야지 안닮아야지 했지만 싫어하는 모습까지 쏙 빼닮아버린 엄마라는 존재는 왠지 나의 못난 부분만 모아놓은 결정체 같아서 볼 때마다 미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결점들을 자꾸 직시하게 해서, 그래서 미워했는지도 모르겠다.
효녀는 부모님이 달아주는 타이틀이고 좋은 부모는 자식이 달아주는 타이틀이라면 엄마와 나는 '좋은 부모', '효녀' 둘 중 어느것도 얻지 못할 사이다. 그만큼 우리 관계는 애증으로 엉망진창 얼룩져있다. 나는 나를 끊임없이 화나게 하고 상처입히는 엄마를 사랑하기를 멈춘지 오래됐지만 분노마저 애정의 다른 이름이라는걸 얼마전에 깨달았으니까. 스스로도 인정한다. 나는 불효녀다. 내 결점들을 비추는 거울같은 엄마에게 살가운 말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항상 싫어하는 내 모습을 발전시켜 없앨 생각보다 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엄마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내가 더 이상 그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나의 일부가 아닌 엄마를 미워할 일도 없을 텐데 뭐 때문에 둘 다 품고 살려는지. 나는 엄마가 항상 내 말을 흘려듣는다고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며 비난했지만 엄마 말을 여태껏 흘려들은 건 나였다. 나는 엄마가 잘 안들리시는 귀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몇 번이나 들었는데도.
침묵은 엄마가 대화의 물꼬를 틈으로써 끝이났다. "입맛이 계속 바뀌지? 이것도 한 번 먹어봐" 두 번씩 얘기하기 싫으니까 그냥 아예 입을 다물어야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하던 나와는 달리 엄마는 또 다시 대화를 시도하고 들으려했다. 나는 조금 더 또박또박하고 분명한 발음으로, 엄마는 한껏 귀를 기울인 토끼같은 모습으로. 마치 셔틀콕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애쓰는 배드민턴 선수들처럼 우리는 문장 하나도 낙오되는 일이 없게 최선을 다해 주고 받았다.
예전에 말을 막 시작해 옹알이를 하는 아이에게 "뭐라고? 다시 말해줘"라며 되물은 적이 있다. 원래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나인데 아기의 옹알이는 귀여움의 수치만큼 부정확한 수치도 높아서 몇 번이고 물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거다. "미안해. 뭐라구?" "한 번만 더 말해줄래?" 나는 묻고 또 물었으나 갓 잠에서 깬 아이는 놀랍게도 조금의 짜증도 없이 똑같은 말을 하고 하고 또 했다. 결국 내가 그 단어를 알아내자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기천사마냥 활짝 웃었다. 감동과 죄책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이 조그마한 아이조차 수십번을 반복해서 말해주는데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반복해서 말해준 적이 있나.' 없었다. 수십번은 커녕 두 번 조차 말하지 않으려 하는 나에게 이 아기천사는 과분한 선물같았다. 아기를 보며 생각했다. '아가야. 오늘도 나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는구나. 고마워. 앞으로 엄마도 할머니한테 너처럼 반복해서 말할게' 그렇게 다짐했건만 일상 속에 무뎌진 내 다짐은 또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나는 정말 불효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