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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Jan 29. 2024

실버타운의 발칙한 반란, 소설 "목요일 살인 클럽"

백발에 속지 마라. 얕보다간 당한다.

여든이 넘은 내 모습을 그려보자.   나는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나의 아이는 어디쯤 살고 있을까? 자주 나에게 전화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부모님이 떠오른다.  멀리 있는 자식보다 가까운 이웃들과 친구들을 더 자주 보고 더 많이 의지하고 계부모님.  한창 친구좋을 70대를 살고 계신다.  


평화로운 고급 실버타운 - 쿠퍼스 체이스에 살고 있는 조이스, 엘리자베스, 이브라힘은 은퇴 후 무료함을 덜기 위해 미제사건을 조사하는 동호회 ☠️Thursday Murder Club 목요일 살인 클럽☠️을 만들었다.  전직 경찰이자 원년 멤버인 페니는 건강이 악화돼서 식물인간 상태이지만, 멤버들은 페니가 남긴 미제 사건들을 풀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그동안 찾아낸 새로운 사실을 교환하고 의견을 나눈다.  그러던 중, (두둥) 이게 웬일인가.  실버타운 운영자 측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전직 건달, 토니가 살인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무료하던 멤버들의 일상에 회오리를 몰고 온 살인사건.  목요일 살인 클럽의 멤버들은 이 사건을 자신들이 풀어보기로 결심한다.  


간호사로 평생을 일하다 은퇴한 (얌전해 보이는) 조이스와, 소싯적 뭘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뭔가 미스터리 하고 수완이 좋은 엘리자베스, 왕년에 노조 관련 일을 하며 힘깨나 썼던 , 전직 정신과의사 이브라힘까지, 넷은 최고의 팀이다.  얼마나 눈치가 빠르고 손발이 척척 맞는지 미리 언질이 없어도 팀원의 눈짓 한 번이면 바로 연기에 들어가신다. 바람 잡기의 달인이자 맞장구의 인들이다.  


수사를 진행하던 중 경찰 쪽 정보를 빼내오기 위해 담당 순경과 형사를 포섭하는데 그 과정이 얼마나 코믹지, 큭큭 소리 내어 웃지 않을 수 없다.  유쾌하기도 하지만 꽤 설득력이 있는 설정이라 경찰들이 불쌍하기까지 하다.

  

"It really was an education", says Joyce with a smile. "And you should probably let Donna drive, DCI Hudson. There was an awful lot of vodka in those cakes."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조이스가 웃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운전은 도나가 하는 게 좋겠어요. 그 케이크에 보드카가 꽤 많이 들었거든."  


(완전 FM 스타일 형사, 크리스를 포섭하기 위해 주변인물 인터뷰에 응해주겠다는 핑계로 그를 불러서 차와 케이크를 대접하고, 결국엔 크리스를 마음대로 요리하는 장면은 참으려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석양이 아름다운 도시, 멕시코 푸에르토 바야타


반전에 반전을 더한 스토리 라인은 (후반이 좀 정신없이 돌아가긴 한다) 충분히 흥미롭다.  슬프고 무거운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벼운 톤으로 쓰여있어 심심풀이로 딱 좋은 소설이다. 벌써 4권까지 나온 시리즈물이니 추리물 시리즈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더 맞을 것 같다.  교보문고 사이트를 보니 적어도 2권까지 한글번역판이 출간되어 있다.  원서에 도전하신다면 책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으나, 영국식 영어가 생소할 수 있겠다.


책을 읽다 보면 순간순간 노인에 대한 편견 또한 돌아보게 된다.  마흔 중반에 접어든 나도 그렇지 않나.  나이만 먹었을 뿐, 속은 철부지다.  예전보다 사고를 덜 치는 건, 20대 30대 시절보다 에너지가 떨어져서 그런 것뿐, 내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노인들을 마치 모든 욕구와 욕심이 사라진 성자와 같은 개체라고 생각할까? 나이가 들어도 재미난 일,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늙어야 할까. 늙으면 반드시 돈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시아버지와, 내세울만한 자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친정아버지. 두 분 다, 자신이 가진 것 안에서 나름의 만족을 찾으신 것이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요일 오후다.


맥주에 라임즙과 소금을 타고, 멕시코의 스파이스 믹스, 타힌을 묻힌 첼라다 Chelada - 해변가에서 책 한 권 들고 누워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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