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꽃 환한 엄니는 꽃을 좋아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마당은 어지러운 꽃밭이다. 이게 마당
인지 아프리카 정글인지 구별이 안 간다. 깔끔한 걸 좋
아하는 나는 싫은 내색을 하고 싶지만 잘되지 않는다.
마당 좀 정리하자면 엄니는 촌에 사는데 어떻게 아파트
처럼 깔끔할 수 있냐며 내 말을 귓등으로 듣기 일쑤다.
팔순 노친네 취향을 무슨 수로 저격한단 말인가.
엄니 빽을 믿고 봄부터 가을까지 선수 교체해가며 꽃들
은 기고만장 오만방자하다. 콧대가 하늘을 찌른다.
처음엔 나무 의자 틈새로 얼굴 빠끔 내밀더니 허리띠 풀
어놓고 자리를 차지해 버린 덩굴장미. 옆으로 좀 비키라
면 점령군처럼 성질을 내며 손톱 세워 꼬집는다.
아예 터를 잡았는지 비닐하우스 출입구를 막고 반쯤 취
한 자세로 누워 있는 들국화. 낮술을 처먹었는지 근처만
가도 입 냄새 진동한다. 눈 흘겨도 모르쇠다.
맨드라미, 달리아, 분꽃, 수국, 어사화, 할미꽃, 달래 꽃,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 코스모스……, 정신이 없다.
봄꽃인지 여름꽃인지 가을꽃인지 알 수도 없다.
엄니는 여전히 꽃을 좋아하고 나는 점점 지쳐간다. 마음
약한 나는 꽃들의 폭력 앞에 한없이 작아져 마침내 굴종
에 이르렀다. 눈을 딱 감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색색의 꽃 그 알싸한 살 냄새가 마당 가
득하다. 아주 가끔 뒷동산 새가 우는 밤이면 방 안으로 쳐
들어온 살 냄새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