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ree Ways Feb 01. 2023

부산여행

이게 그럴 일이냐구요.

이틀을 부산에 있었는데 기억이 엉켜버렸다. 기록을 하거나 하다못해 사진이라도 순서대로 찍었으면 ‘이 정도로 헷갈리진 않을텐데’라고 후회를 해보지만 ‘뭐 어때’라는 생각도 든다. 즐거웠던 일이 앞에 있으면 어떻고 뒤에 있으면 또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냥 여행지에서의 유쾌한 헷갈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부산시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다리를 이리저리 건너 다녔는데, 이게 나를 좀 헷갈리게 했던 것 같다. 딱히 혼동될만한 것도 아닌데 다리를 왔다 갔다 하면서 방향감각이 사라져 버렸나 보다. 보통은 지하에서나 건물 안에서 잃게 되는데, 다리를 왔다 갔다 해도 잃게 되는구나. 나의 꺼벙력에 1포인트 추가했다. 돌이켜보니 이런 나에게 시내운전을 시키지 않은 건 대단히 현명한 일이었다.          


어제저녁 사두었던 식빵과 커피 그리고 야채로 아침을 먹는다. 이 정도로 괜찮은 아침이라는 생각이 들다니, 어젯밤 정량에 미달하는 알코올을 섭취한 것이 분명하다. 깔끔쟁이 지금사진 작가는 세탁기까지 돌리고 있다. 내 것도 슬쩍 끼워 넣을 걸 그랬나.            


특별한 일정이 없기는 어제나 오늘이나 매한가지. 아니 이럴 거면 뭐 하러 여행을 온 거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근데 꼭 여기저기 시간 꽉 채워서 다녀야 하는 건가. 그럼 그게 일이지 여행이냐구.라면서 오늘도 자기 최면을 걸고 있다.      

     

기장 쪽으로 올라가면 동해바다를 만날 수 있단다.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을 가면 확연하게 물색깔이 다르다고 한다. 에이, 같은 바다인데 남해와 동해가 만난다고 눈에 딱 보일 정도로 달라질까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더니 지금사진 작가 몹시 억울해한다. 하긴 안 본 사람이 우기면 그냥 져 주는 게 나을 때가 있다. 우기는 사람하고 입씨름해 봐야 나만 손해다. 오죽하면 <지구가 네모라고 믿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이라는 류의 책도 나와 있을까. 사진작가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믿어주기로 했다.

          

아무튼 기장 쪽으로 갔다. 게다가 기장끝집에 가면 기가 막힌 전복죽을 하는 곳이 있단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 기장이란 곳, 끝에 있는 집을 말하는가 보군’. 가보니 진짜 식당이름이 ‘기장끝집’이다. 메뉴라고는 딱 전복죽 한 가지이다. 3인 앉자마자 밑반찬이 나오더니 부추전은 직접 만들어 먹어보라면서 반죽을 주신다. 그동안 요리솜씨로 설움과 놀림을 받던 지마음 작가가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전을 부쳐낸다. 신중하게 전을 부치고 드디어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완벽한 부추전을 만들어내고 의기양양해한다. 아니, 이게 그럴 일이냐구요. 네.          



솥에 담겨 나온 전복죽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먹고 나니 배가 너무 불러 소화도 시킬 겸 바닷가를 걷는다. 날이 너무 좋아서 포구에 만들어 놓은 산책길이 끝나는 곳까지 다녀왔다. 지금 사진 작가가 마음 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대로 산책을 하고 지금사진 작가는 이리저리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혼자서 적당히 놀았으니 이제 같이 놀 차례인가.     



카페로 가는 길에 용암초등학교가 보인다. 지금사진 작가가 재미있는 말을 한다. 예전에 대변포구에는 대변초등학교가 있었단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 학교 이름 때문에 주변 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단다. 대변이 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콤플렉스였나 보다. 어느 똘똘한 친구가 학생회장 출마공약으로 학교이름을 바꾸겠다고 했단다. 학교를 졸업한 동창회 어른들도 어른다왔다.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동창회에서 동의를 하면서 개명에 성공했다. 그렇게 대변은 용암이 되었단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신나는 일이다.    


      

카페에서 복효근 시인의 시를 읽었다. 원래 지마음 작가가 가져온 시집인데 내가 나지막하게 읽으면서 감탄을 했다. 무슨 시구를 읽으면서 감탄을 하는가 궁금해진 지마음 작가가 옆으로 와서 같이 읽는다. 고요한 순간. 시인의 속삭임 같은 단어들에 같이 감탄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옆에 있던 지금사진 작가가 슬쩍 자리를 옮기더니 찍어주었다. 찍는 줄도 모르고 시에 빠져 있었나 보다.

        


오늘 저녁은 숙소 근처 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무슨 세트메뉴였는데 아주 훌륭했다. 더욱 훌륭했던 것은 지마음 작가의 ‘회오리주’였다. 적절한 소맥의 비율과 손목의 스냅을 이용한 화려한 섞기 기술을 숨죽이고 지켜보는 우리를 누가 봤다면 한마디 했겠지. 아니, 이게 그럴 일이냐구요. 네.


         

‘회오리주’로 시작된 음주는 늘 그랬듯이 숙소에 가서 이어졌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말 대잔치 같은 이야기들이 굴러다녔다.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내일이 되는 것도 모르고 있었을까. 한참의 수다 후 지마음 작가가 떡볶이를 해주겠다고 했다. 어제 장을 볼 때 사 왔던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되는 떡볶이였는데, 우리 지작가 물조절에 실패했다. 낮에 부추전으로 드높게 세웠던 명예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냄비에 다시 담고 물을 적당히 버린 후 졸이는 방법으로 겨우 기사회생한 떡볶이. 이외로 맛이 좋아서 깜짝 놀랐다.     



2박 3일의 마지막 일정이다. 오늘도 맑고 따뜻한 날이어서 더없이 좋았다. 늦은 아침 겸 점심으로 오복미역에 가서 순살가자미 미역국을 먹었다. 뜨끈한 국물에 비린내가 없는 가자미 미역국은 과연 소문대로였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의 한 끼였다. 용두산 공원에도 올라가 보고 국제시장을 한 바퀴 돌며 오징어무침에 구운 만두도 먹었다. 다양한 군상들이 모이는 곳이 시장이라더니, 진상손님 하나가 주인아저씨를 열받게 했다. 열받은 아저씨 분을 삭이려고 주변 아지매들에게 가게를 맡기고 담배를 피우러 갔고, 돈을 가져오겠다고 한 진상손님은 예상대로 감감무소식이었다.    

       

영도의 흰여울 마을 산책길도 좋았다. 골목을 내려가 바다를 보면서 걷는 작은 길에 사람들로 가득했다. 길의 끝에서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있다. 무슨 일인가 짐작하건대 같이 왔던 친구 중의 하나가 기절을 한 모양이다. 하얗게 질려 있는 일행 중 그래도 덜 패닉에 빠진 친구가 구급대원을 데리고 내려오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구급대원에게 경황을 설명하는 소리로는 의식도 있고 숨도 쉬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찾아갔다. EL xx.xx이라는 카페였다. EL은 건축공학이나 토목공학에서 해발고도를 표기할 때 사용되는 기호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건물 1층이 해발고도 xx.xx이었다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놓은 작은 방이 있어서 건물의 소소한 역사를 알아볼 수 있었다. 역시 건축하는 사람들은 ‘구라쟁이’이다. 건물의 아치모양 외관이 파도를 형상화했다는 둥, 개방감을 높이기 위해 어쨌다는 둥, 클라이언트로부터 오케이 사인을 받으려는 노력은 늘 ‘구라’로 이어진다.        


떠나야 할 아쉬운 시간이 다가올수록 말이 없고 각자 조용하게 시간을 보냈다. 흥미로운 시간은 어느새 지나가 버리지만, 따분한 시간은 3분이 3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그렇게 느리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은 여지없이 우리를 다시 일상으로 돌려보냈다. 렌터카를 반납하고 부산역에서 일엽편주 막걸리 가게 앞을 떠나지 못하는 우리의 사진작가. 한참을 쳐다보다 머리를 흔들며 돌아서더니, 택배로 주문하면 된다고 했다. 하여튼 아무도 못 말리는 막걸리 사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치 없는 ‘ㅂ’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