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외로움이 조금씩 늘어간다. 올해의 나는 특히나 심하게 그것을 느끼고 있다. 한국에서의 나는 매일같이 약속이 있었고 집에서는 가족들과 바깥에서는 친구들과 늘 복작복작한 하루를 보냈었는데, 프랑스에서의 나는 찾는 이도 없고 찾을 이도 없다. 같이 유학을 시작했던 다른 친구들은 나와는 다른 지역에 있거나, 나와 자주 볼 정도로 시간이나 마음을 쓸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혼자 지낸다고 해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외로움은 전적으로 내가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해외라는 점, 그 때문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점. 무엇보다도 나를 이해해주고 서로 마음을 나눌만한 진정한 친구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외롭다. 서울에서도 바빠 자주 보기 힘든 친구들에게 7시간, 8시간의 시차를 둔 연락은 망설이다 하지 못하기 일쑤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다른 친구들은 이미 방학 때 한국에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로 프랑스 생활에 잘 적응한 탓에 여전히 나만 붕 뜬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유학 초반이었던 어학연수 시기에는 그 어떤 외로움도 느끼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향수? 그런 것은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내 붙어살아야 했던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경험이 재미있고 신선하기까지 했다. (물론 지금도 가족에 대한 향수는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내가 같이 살아가기로 선택한, 나와 잘 맞고 나를 훨씬 더 넓은 폭으로 이해해주는 친구들에 대한 향수가 크다) 날마다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해 먹었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즐거웠다. 하지만 그 모든 즐거움은 나와 잘 맞았던 친구들 덕분이었다는 것을 나는 몇 년이 지난 이제서야 깨닫는다.
잘 맞았던 친구들이 곁에 있었던 시기에는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 외국 땅이고 언어가 마음처럼 통하지 않아 불편하기는 해도, 움츠러들고 마냥 편하지는 않았어도 괜찮았다. 나와 잘 맞는 친구들이 바로 곁에 있었고, 언제든 얼굴을 보고 수다를 떨 수 있었으며, 강가를 산책하며 깔깔거리고 나면 즐거웠으니까.
그러나 다들 자신의 목적대로 프랑스 전역으로 흩어지거나 한국으로 귀국한 후, 파리로 홀로 오게 된 내게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슬슬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우울증이 심해지고, 프랑스에서 가장 친한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틀어지고, 학교 생활은 커녕 일상생활조차 하지 못해 정신병원에 입원할 때까지만 해도 외롭다는 감각은 없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그런 미묘한 감각을 느낄 정도로 충분히 싱싱히 살아있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외롭다는 감각은 언제 자리 잡은지도 모를 정도로 천천히 내 안에 자리 잡아 결국 현재의 나에게 도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한바탕 내게 힘이 되고 의지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어느 정도 회복을 한 뒤 돌아온 뒤라 더 이런 감정들을 세세히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가 중요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크게 빈자리를 느낄 줄은 몰랐다. 나는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해외 생활은 나를 참 많이 바꾸기도 했고 내가 스스로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어쩌면 단지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것들이 바뀐지도 모르지만, 이곳에서 혼자 살아가면서 나에 대해 새로 알아가는 것들이 참 많다.
내게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과 떨어져 살아가면서, 나는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었고, 그런 관계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외로움 덕에 나는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았고, 직접 마주하고 웃고 떠드는 시간이 내게 주는 에너지를 더 잘 감각하게 되었다. 외로움이 내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중요성을 알려준 준 셈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은 결국 내가 선택한 나의 친구들이라는 것, 그들이 생각보다 단단하게 나를 지켜주었고 내가 그 안에서 꽤 평온했다는 것도.
하지만 외로움이 내게 친구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고 해서 단번에 달가운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고, 깨달음만 주고 휙 사라지는 존재도 아니다. 여전히 외로움은 씁쓸하게 남아있다. 씁쓸함의 농도가 순간순간 달라질 뿐, 매일이 씁쓸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소중한 친구들은 한국에 있고 나는 프랑스에 있으니 내가 계속 외로운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자 당연한 일이다.
외롭다는 감각은 한 번 자각하고 나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것 같다. 아까는 너무 외로워서 글을 쓰다가 (뛰쳐)나가서 산책하고, 사진 찍고, 장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외로움을 외면하며 꿋꿋하게 일상생활을 해도 외롭다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독하다는 것과 외롭다는 것은 매우 다르다. 나는 차라리 고독하고 싶다. 외롭다는 것은 참 비참한 일이다. 그 감정이 어찌할 수 없이 무작정 불어나기만 한다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나의 외로움은 따지자보면 이것이다. 같이 있고 싶은데 혼자 있을 수밖에 없어서 외롭다. 아무와나 같이 있고 싶은 것도 아니고, 같이 있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외롭다. 같이 있고 싶을 정도로 친하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프랑스에 없기 때문에 외롭다. 그런 이들을 여기서 당장 새로 사귈 수 없기에 외롭다. 아무튼 외롭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할 수 있는 행위 중에 효과 있는 행위는,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밖에 없다. 언젠가 가득 쌓인 외로움을 털어내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지만, 아니 오히려 그 사실을 알기에 오늘도 내 외로움은 착실히 복리로 늘어나는 중이다. 언제 이 모든 외로움을 털어낼 수 있을까?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이 엄청난 이자를 내가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