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잉홍 Mar 06. 2023

어두운 시절 1

그녀의 시절

그를 따라 올라가는 계단의 한 걸음이 좋다. 허름한 먼지로 장식된 그 계단을 한자욱 밟을 때마다 나는 또각거리는 소리가 좋다. 앞서 오르던 그가 뒤돌아보며 손을 내밀던 그 모습도 좋다. 카페 2층은 아담하고 아늑하며 그녀가 좋아하는 우드 테이블이다. 그와 마주 앉아 입김처럼 올라오는 커피 향을 바라보다, 그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든다. 그는 이미 그녀를 보고 있었다. 맞닿은 시선에 놀란 건 그녀보단 그였다. 그는 그녀의 시선조차도 감히 바라지 않았던 사람처럼 허둥대며 시선을 돌린다. 그 모습이 좋아 웃는다 그 순간, 빠르게 그녀의 어두운 시절이 그녀를 잠식하기 위해 올라온다.


어김없이 오늘도 행복하다 느낄 때면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그녀는 그녀의 과거에 갇혀 버린다.


세월에 의지해 나아져 보겠다고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몹쓸 숙제 같았다. 미루고 싶지만 마음이 내내 불편하고 직면해 버리자니 즐거운 것 하나 없어 정말이지 하기 싫은 숙제. 아버지가 포기한 등록금을 마다하지 않고 대학을 간 아버지의 동생은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했으며 인정받았다. 목소리 좋고 호기로운 아버지의 동생은 호황기에 맞물려 차린 사업체도 번창하여 가족들의 자부심이 되었다.


아버지의 동생은 그녀의 집에도 일 년에 한 번은 다녀갔다. 큰 봉투에 집 앞 슈퍼에서 이것저것 담았을 법한 간식을 그득 담아 오고 했으며 그녀에게 용돈 주는 것을 잊은 적이 없었다. 좋은 기분으로 기억된 것이 아니다. 초라했다. 초라하고 창피하고 어린 나이에 이상한 모멸감도 느꼈다. 선물인지 적선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왜일까? 어린 그녀는 그냥 기분이 더러웠다. 적당한 거드름이 보기 싫었고 형다운 체면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눈동자가 아팠다.


그 염증은 아버지의 몸 곳곳으로 보내졌다. 곪아가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속 뾰루지에 주먹질을 한건 희생을 받아먹은 그 동생이었다. 사업은 확장을 해야 했고 확장은 돈을 더 필요로 했으며 가족의 명예로운 동생을 지원하기 위해 고모도 아버지의 형도 나섰고 아버지도 내놓아야 했다. 몇 달이면 된다고 했던 돈은 돌아오지 않았고 소리치며 가시 돋친 말들을 내뱉는 주먹질로 관계는 정리가 되었다. 그 돈은 어떻게 해서든 찾아오겠다는 아버지는 그럴수록 억울하리 만큼 고립되어 갔다.


돈이 아니라 동생을 찾았다면 늙은 아버지 곁에 누군가는 있었을까? 지독하게 외로워 보이는 아버지의 마음만은 채워져 살 수 있었을까? 돈을 찾지 못하고 돌아온 수많은 날들 속에서 아버지의 눈은 회색빛이 되곤 하였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동생을 욕하고 형을 욕하고 돈을 빌려주라고 설득하던 고모를 욕하며 횡포를 부렸다. 그렇게 회색빛 눈동자에 잠식된 아버지는 그녀를 아리게도 하고 끔찍하게도 하였다.

     

3년 전, 그날의 아버지는 회색빛이 아니셨다. 말끔하셨다. 세안을 하셨고 수염도 정리하셨다. 아침부터 그녀를 보며 웃어 보이셨다. 그녀는 아버지의 생기에 마음이 놓이곤 하였지만 동시에 짜증이 나고 토가 쏠려 올라오곤 하였다. 차라리 하나의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약하고 무지하고 분노만이 남아있는 아버지라면 마음에서 홀가분히 버리고 떠날 수 있었을 테니까. 아버지에게 약속이 있어 나갔다 온다고 했다. 보통은 좋아하실 만한 TV 프로를 틀어주고 물과 약을 식탁에 보이게 올려두고 그 옆에 전화기까지 챙겨 두었지만 그날은 바빴다.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는 리모컨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30분 뒤에 먹어야 할 약봉지를 뜯어 놓을 시간이 없었다. 약봉지는 식탁의 구석에 뭉치로 놓여있었고 물은 냉장고에 넉넉히 있었다.


"30분 뒤엔 약 드세요" 구두를 꺼내 신으며 그녀는 인사말을 했다.   

  

수다는 즐거웠다. 한두 살 어린 직장 동생들과 주말에도 만나는 것은 아직 셋 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을 나누는 사람과는 소소한 것들도 관심을 받았고 나눌 수 있는 감정은 더 많았다. 동생들에겐 외로운 주말을 함께해 주는 좋은 언니였겠지만 그녀에게는 한 주의 지침이 치유되는 절박한 시간이었다. 그녀들과 있으며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일을 하고 있다. 돈도 모으고 있다. 남자를 만날 것이다. 결혼도 할 것이다. 곧 이리될 것만 같았다.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만 없다면... 말이다.


처음 이 생각이 그녀 안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머리를 휙휙 흔들며 내보냈다. 하지만 멀리 내보내지는 못했다. 이 죄의 씨앗 같은 마음은 그녀를 몇 번이고 찾아와 파고들었다.


‘누굴 욕하고 저주하든 알 게 뭐람 그 정도 생각도 못 하고 살면 모두가 성인이지 아버지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 왜 내게 남아있는 게 아버지야 왜 이런 아버지냐고!’


드러나지 않은 마음속 샤우팅이 커질수록 그녀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 힘겨워졌다.

이 죄성의 싹은 뿌리도 꽤나 내린 모양이었다.     


좋아하는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잘 깔린 길 위에서 들리는 여자의 구두 소리만큼 세련된 소리가 없다. 들어선 집은 조용했다. 아주 조용했다. TV는 틀어져있지 않았다. 문은 닫혀있었다. 아버지는 주무시는 것 같았다. 수제 맥주 한 잔으로 기분 좋게 피곤했다. 침대에 늘어져 있고 싶었고 눕자마자 그녀는 혼미해졌다. 자다가 쿵 소리를 들은 거 같기도 아닌 거 같기도 했지만 잠으로 끌려들어 간 의식은 붙잡아지지 않았다.

‘얼마나 잤을까?’ 너무 고요했고 어두웠다. 그 스산함에 눌려 잠이 깼다. 일어나 앉을 때 잠결에 들은 쿵 소리가 떠올랐다. ‘꿈이었나?’ 동시에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몸이 먼저 바르르 떨렸다. 달려가 아버지 방의 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져 계셨다. 언제부터였을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몸을 흔들어 보며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움직임도 숨결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늦었다는 게 느껴졌다. 눈꺼풀을 들어보고 숨을 들여보내보았다. 방법이 맞는지도 모르고 그냥 뭐든 해야 했다. 손이 떨리고 나가서 전화기를 가져왔다. 119를 누르고 소리쳤다. 얼마 뒤 낯선 남자들이 들어왔고 아버지는 그들 손에 들려 나가셨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눈물이 왈칵 흘렀고 어떡하냐며 낯선 남자의 팔을 잡고 흔들며 매달렸다.


어두운 의식에서 깨어난 것은 마주 앉아 있는 그가 손등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있다는 것을 인지하자 그녀는 몸이 따스함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우드 테이블의 카페만큼이나 편안하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 맑고 성수처럼 깨끗하여 그녀도 씻기어지는 거 같아 숨이 쉬어진다.


"내가 당신 곁에 있어도 되는 걸까요? 나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어요. 나는 다 알았어요. 아버지가 약을 드시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쿵 소리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도 나는 모른 체한 거예요. 나는 그냥 자버렸다고요. 나는.. 이런 내가 끔찍해요."

그녀는 그에게 고백한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그건 운명 같은 거죠. 누구나 마음속엔 십자가가 있어요. 그것을 감당해 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죠. 어느 날엔 너무 아프고 힘겨워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나는 이제 당신을 보며 내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갈 용기가 나요. 당신이 내어준다면 당신의 십자가도 내 어깨에 걸치고 가겠어요. 당신 내게 십자가를 내려놓고 쉬어요. 내가 곁에 있을게요"

그는 진심을 다해 그녀를 본다.     


죄책감, 상처, 무기력, 분노 그 어느 감정도 시간을 흘려보낸다고 희미해지지도 나아지지도 않는다.

못난 돌을 정으로 쳐내서 다듬듯이 뼈를 깎아내는 고통을 감내하며 스스로 깎고 쳐내며 다듬어 가야 한다.

그 일은 혼자서 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가 먼저 알아보았지만, 그녀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그녀에게 그 누군가인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5. 3인3색의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