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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E Jun 24. 2024

[봄대표] 산에서 인생을 배운다는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정말 가볍게 시작한 산타기였다


요즘은 동네에 있는 산을 탑니다. 전국에 있는 명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산 타기 좋아하시는 분들이 곧잘 찾는 정겨운 산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가볍게 시작해 보았습니다.


처음에 산을 탈 때는 그저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운동도 꽤 쉬었던 몸이라 언제 끝나나, 하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만 했습니다. 우습게 보았는데 실수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산은 꽤 매력적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회사에서 단체로 간 등산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빠른 코스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북한산의 어떤 코스였는데. 올라갈 때 이탈자가 나올 만큼 힘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작년 가을에는 둘레길이라고 속아서 올라간 북한산의 다른 코스는 두 발이 아닌 네 발로 엎드려서 올라간 걸 기억합니다. 가파르게 올라간 덕분에 나중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던 점이 좋았고 정상에 올라갔을 때는 훤히 보이는 서울의 전경이 일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올라가는 산은 다릅니다. 심학산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 산은 파주에 위치해 있는데요. 먼저 10분 정도 느슨한 오르막을 올라갑니다. 숨이 차긴 하지만 가파르거나 산을 탄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정도입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오르다 보면 왜 때문인지 내리막길이 나옵니다. 그러다 다시 오르막. 그렇게 계속 반복해서 1시간 동안을 걷습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매 순간의 오르막길은 그때마다 힘이 듭니다. 다만, 숨이 차고 지친다 싶을 때 내리막길이 나오고 그 때문에 다시 올라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과 새소리, 아주 가끔씩만 보이는 청설모는 소소한 행복까지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역시 산은 산입니다. 마지막 구간은 상당히 가파릅니다. 300m 정도(체감상)를 끝도 없이 위로 올라갑니다. 숨이 헉헉 차다 못해 멈추고 싶어 집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듭니다.


"쉬운 산이든 어려운 산이든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역시나 어렵구나."


등산 초보는 오르기 힘든 심학산의 정상을 향해 가는 도중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벤치가 툭 하고 놓여 있습니다. 기어가다시피 그곳에 털푸덕 앉았는데 등산 고수 어머니는 옆에 서계십니다.


"엄마도 앉아요."

"여기서 앉아버리면 일어서기가 힘들어. 나는 서서 쉴게."


그 순간 왜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사랑하는지 알 것만 같았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하면 10년 넘게 사업을 했는데도 늘 여전히 어렵습니다. 숨 쉴만하면 다시 어렵고, 놓고 싶을 때면 어디선가 힘이 생겨 또다시 올라가 보고. 그렇게 오르막 내리막 길을 몇 번이나 걷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어딘가 산을 닮아 있는 것 같았어요.


또 이렇게 널널한(?) 산도 정상을 가는 것에는 가차 없는데 내가 뭐라고 쉽게 원하던 것을 얻으려 하나. 쉬고 싶어서 털푸덕 앉아 버리면 다시 일어나는 것은 두 배의 힘이 필요하구나...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일어서서 기어가다시피 정상을 올랐고 전경을 보았습니다. 북한산만큼 멋진 전경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산에서 배움 하나를 깨달았으니까요. 


"정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


정상에 오르면 보이는 풍경은 아파트 일색입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나무, 그 사이로 내뿜는 숲 냄새, 땀에 젖은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을 느끼면 행복해집니다.


정상에 가면 고양이 가족 5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시원한 나무 사이에서 몸을 말고 꿀잠을 자고 있는 이 아이의 이름이 언제나 궁금합니다.


정상을 보고 하산할 때도 역시나 산의 가르침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된 산이다 보니 내려올 때도 다시 그것을 반복해야 하는데 기존에 가파르게 내려왔던 산들보다 훨씬 무릎에 부담이 덜 되더라고요. 그때 또 느끼죠. 


"그래, 인생도 내려올 때 잘 내려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어."


하하. 등산 초보가 그저 산을 타는 행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혼자서 말없이 산을 타다 보면 별의별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덕분에 많은 생각들을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죠. 


그 뒤로 저는 1주일에 두 번씩은 산을 오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깨우칩니다. 


"이렇게 매 번 하는데도 산을 타는 건 늘 어렵고 힘들고 숨이 차구나. 휴, 그래. 산도 이러는데 인생의 매일매일도 그럴 수밖에."


아! 그리고 오르막을 오를 땐 정상을 보지 말고 바닥을 보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정상만 보면 너무 아득해 보이는데 바닥만 보며 걷다 보면 금방 도착하는 느낌이 든달까요? 거기에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을 피해 갈 수도 있고 길을 잃어 말라가는 지렁이를 구해줄 수도 있으니 이러다가 또 하나 머릿속에 메모하죠.


"인생도 내가 가고 싶은 정상이 아닌 오늘만 보며 걸어야겠다. 그 편이 더 행복할 것 같아."


지극히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니까 산을 타라는 것은 아닌데요. 그만큼 좋았던 경험이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저는 아직 등산 초보지만 체력을 기르고 키워 북한산도 거뜬히, 지리산, 한라산도 올라가 볼 수 있길 바라봅니다. 한동안은 일단 심학산만 탈 것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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