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m] HBO의 체르노빌:
연출 분석

02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by 삐얏

1. [1:23:45]: AZ-5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45초. 강한 빛이 소련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를 깨운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자력 사고 -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건이다. 핵전쟁으로 펼쳐질 지옥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켜 많은 나라가 핵무기 감축에 기여하게 된 사건.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궁극적으로 소련이 붕괴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한 사건이다. HBO에서 방영한 5부작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은 해당 원자력 발전소 사고 조사를 지휘한 소련의 무기화학자, 발레리 알렉세예비치 레가소프(Вале́рий Алексе́евич Лега́сов)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2019년을 대표하는 최고의 미드로 평가받으며 에미상 10관왕을 기록한 만큼, <체르노빌>은 아직까지 높게 평가받고 있으며, 필자 또한 <체르노빌>의 완성도를 따라가는 작품을 손에 꼽기 힘들다. 등장인물을 추가하는 등 각색과정에서 실제 사건과 다른 부분이 있어 러시아에서 반발하기도 할 만큼 뛰어난 재현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서사를 제외하고 - 미니시리즈 자체의 몽타주, OST와 대사를 포함한 연출적으로 <체르노빌>은 어떠한 강점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체르노빌>을 꿰뚫는 하나의 주제는 '은폐'이다. 사고가 나기 전부터 소련은 검열을 진행하였기에, 폭발 직후, 프리피야트 관리자는 전화선을 끊으며 "오보"(misinformation)가 퍼지지 않도록 통제한다. 스웨덴으로부터 검출된 다량의 방사능 수치가 세계적으로 보도되자, 소련은 그제야 발전소 사고를 인정하고 뒤늦게 대응한다. 그러나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는다. 발레리 레가소프가 원자로의 폭발한 사고경위를 따지기 시작하면서 소련의 위상을 흔들고 과학계의 기밀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하자, 그는 끊임없는 위협을 마주하게 된다. <체르노빌> 1화의 제목, [01:23:45]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시각이자 후에 방사선 피폭으로 쇠약해진 레가소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각이기도 하다. 자결을 거행하기 전, 레가소프는 동료 과학자들에게 남길 음성 녹음을 남기고, 미니시리즈는 레가소프의 입을 빌려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본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그 대가는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의 진짜 대가란 거짓을 끝없이 듣다 보면 진실을 인지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그들에게 공정한 세계란 온전한 세계이다. 체르노빌은 단 한 번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벌어진 것도, 후에 벌어진 것도, 우리가 한 좋은 것 마저도, 모조리... 광기였다.

What is the cost of lies? It's not that we'll make them for the truth. The real danger is that if we hear enough lies, then we no longer recognize the truth at all... You see, to them, a just world is a sane world. There was nothing sane about Chernobyl. What happened there, what happened after, even the good we did, all of it... madness.





2. [Please Remain Calm]: 시점


대체로 재난을 다루는 많은 작품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폭발 장면과 빠른 화면 전환, 자극적인 죽음을 비춘다. <체르노빌>은 다르다. 이 유혹을 과감하게 포기하며, 마지막 5화를 제외하고 철저하게 1인칭으로만 사건을 전개한다. 즉, 발레리 레가소프가 법원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전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루기 전까지 관객은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오로지 눈앞에 있는 인물에 집중하게 되며,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그 인물의 삶이 무너지는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리피야트 지역에 사는 평범한 소방관과 그의 아내가 있다. 폭발은 굉음을 내며 건물을 부수지 않는다. 저 멀리, 조그맣게 빛이 나더니, 진동으로 집이 조금 흔들릴 뿐이다. 연락을 받아 출동하는 소방관 남편에게 잘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걱정하는 아내의 얼굴. 그리고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소방관, 바실리 이그나텐코의 얼굴이 비친다. 단순 화재가 지붕에 발생한 것으로 지시받은 이그나텐코처럼, 관객 또한 심각한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포함한 소방관들이 하나둘씩 쓰러지자 우리의 시점은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들을 받는 한 간호사에게로 옮겨진다. 간호사들은 방사능으로 심각하게 오염된 소방관들의 방화복을 지하실에 옮긴다. 쌓여가는 방화복. 그리고 간호사의 손도 점점 벌겋게 올라온다. 그 와중,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광원을 멀리서 지켜보는 시민들이 보인다. 이들은 '빛의 기둥'을 다리에서 지켜보며 정체 모를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것을 지켜본다. <체르노빌>의 1화는 폭발 직후 사람들이 각자 느꼈을 혼란과 공포 한가운데에 우리를 집어던진다. 무엇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뭘 조심해야 하는지도 안내받은 것이 없다. 철저하게 사람들이 느꼈을 두려움에 집중하게 만드는 1인칭 시점을 통해 우리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접한다.


프리피야트 병원 지하실의 방화복은 현재까지도 치명적인 수치의 방사능을 내뿜는다.


철저한 1인칭 시점을 활용한 연출은 발레리 레가소프가 사고 대처 지휘를 맡게 되면서 더 도드라진다. 폭발 이후, 노심 용해로 인한 지하수 오염을 막기 위해서 핵연료를 식혀야 했던 소련 당국은 헬리콥터로 모래와 붕소를 원자로 상공에서 뿌리는 전략을 선택한다. 발레리 레가소프는 헬리콥터가 원자로 상공을 스쳐 지나가도록 지시하지만, 엄청난 양의 방사능을 직격으로 맞은 헬리콥터는 그 안의 탑승 인원과 함께 그대로 원자로 위로 추락한다. 이때, 카메라는 헬리콥터 안에 있지 않다. 긴박한 무전 신호와 불꽃이 튀기며 추락하는 헬리콥터 내부의 장면은 극적인 상황을 각인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는 멀리서 헬기가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발레리 레가소프와 같이 있다. 2차 폭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희망은 장난감처럼 부서지는 헬리콥터와 함께 추락한다. 전지적 시점이 아닌 레가소프의 위치에서 관객은 그와 함께 좌절과 절망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초반에 투입된 소방관 바실리 이그나텐코의 아내, 류드밀라는 남편에게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조차 설명받지 못하였다. 그녀는 이유도 모른 채 프리피야트에서 모스크바 대형 병원으로 옮겨진 남편을 찾아 생판 다른 도시로 떠난다. 그곳에서 힘들게 만난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지만, 곧 이그나텐코는 형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녹기 시작한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는 어떻게 생겼냐고 힘겹게 물어보는 남편에게 류드밀라는 병원 벽을 바라보며 왕실 크렘린과 바실리 성당이 보인다고 나지막이 말해준다. 카메라는 폭발로 인해 뒹구는 시민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자극적인 장면은 거의 <체르노빌>에서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대신 피폭으로 녹아내려 흐물거리는 남편의 손을 잡아주는 아내의 모습, 태어난 지 4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아이를 보는 류드밀라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춘다. 1인칭 연출로 그녀 한 명의 고통을 극대화하는 만큼, 우리는 동시에 수 만 명의 류드밀라를 본다. 그녀와 같은 일반 시민이 느꼈을 혼란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연출이다.


장례식과 류드밀라

원자력 발전소 4호 원자로의 폭발의 내막은 마지막 5화에 이르러서야 밝혀진다. 소련연방대법원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발레리 레가소프는 폭발에 이르기까지의 정황을 20분에 걸쳐 설명한다. 여기서 관객은 마침내 1인칭 시점에서 벗어나 전지적 시점으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전지적 시점이란 한 인물의 시점에 국한되지 않고 시점변화가 자유자재로 가능한 시점, 즉 실제 벌어진 일을 그대로 보게끔 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제 카메라는 레가소프의 곁을 떠나 폭발 당시 원자력 발전소 내 - 우라늄-235 핵원료가 분열되기 시작한 - 상황을 관찰한다. 이제 원자로가 폭발하는 장면, 노심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다. 이처럼 1인칭 시점에서 전지적 시점으로 바뀌는 연출은 2가지의 극적 구조를 극대화시킨다. 먼저, 서사적인 관점에서 폭발의 내막을 결말에 알리는 전략은 하나의 추리물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발레리 레가소프가 애초에 폭발할 수 없게 제작된 RBMK(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가 어떻게 폭발했는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객은 끝까지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연출적인 관점에서 관객은 1화부터 등장인물이 느끼는 정서에 그대로 노출되어 고조된 긴장감을 경험한다. 이 긴장감은 은폐 사실이 드러남과 동시에 해소가 되는데, 이때 전지적 시점을 사용함으로써 끔찍한 은폐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순서 배치는 <체르노빌>이 여느 재난 영화와 다른 울림을 주는 핵심적인 이유이다. 전지적 시점, 즉 거대한 핵폭발을 처음부터 비춰주고 원인이 흑연에 있음을 밝히는 연출은 관객을 놀라게 할 뿐이다. 그러나, 이기심에 의한 은폐와 거짓, 그리고 피해를 감당하는 노동자들의 무력감, 상실감, 두려움은 강조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극적인 블록버스터 재난 작품보다, <체르노빌>이 서서히 세상을 녹이는 방사능의 무서움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시점 전환이 크다고 생각한다.


폭발하는 장면이 처음 등장하는 5화




3. [Open Wide, O Earth]:

덮이는 진실, 그리고 흙


<체르노빌>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은폐로 인한 재난'인 만큼, 그 피해의 규모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이 된다. 이중 가장 인상 깊었던 메타포(metaphor) 활용을 짚어보고자 한다. 메타포란, 은유법이란 뜻으로, 특정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상징하는 기법을 의미한다.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나 등장인물의 정서 등 복잡한 정보를 함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시나 소설에서 자주 사용된다. 영상물에서는 영상이라는 매체 자체의 특징을 살려 메타포가 시청각적인 요소로 등장하여 특색 있는 상징과 암시를 심는 장치가 된다. <체르노빌>에서는 특히 '땅'을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땅'을 하나의 메타포로 해석하면 '은폐로 인한 재난'을 해석하는 새로운 방식이 생겨난다.

관 위로 부어지는 시멘트 반죽

원자력 발전소 4호 원자로가 폭발한 직후, 아래로 녹아내리는 노심은 엄청난 양의 방사능 물질을 뿜으며 프리피야트 전 도시를 서서히 죽음의 지역으로 만들고 있었다. 폭발 직후, 발전소 부소장 아나톨리 디야틀로프를 포함한 몇몇 연구원들은 실험 도중에 발생한 수소 폭발이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여, 원자로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발전소 소장에게 보고하였다. 이미 노심 자체가 공기와 지상에 노출되어 치명적인 방사능이 사방으로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소방관들은 그대로 직격으로 피폭되었다. 이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실험을 기한 내에 끝내기 위해 강행하였던 윗선 관리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호출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바실리 이그나텐코를 포함한 소방관들은 몸이 녹아내리고 형채를 알아볼 수 없는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미 다량의 방사능을 흡수하여 생체 원자로와 같이 치명적인 방사능물질로 변해버린 그들의 시신은 납으로 된 관에 용접으로 아예 봉인된다. 그리고 그 위로 시멘트를 부어 영원히 지하에 밀봉된다. 인간이 목숨을 잃으면 땅에 묻힌다. 이는 시신을 가장 덜 훼손하는 방법으로 고인을 기리는 방식이기도 하면서, 시신이 부패하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의의를 두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이 비닐에 싸이고, 납 관에 갇히고, 시멘트 반죽에서 굳히는 것은 비정상적인 매장 방식이다. 이들은 원자로 지붕의 화재를 진압하는 공헌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땅'으로 회귀하지 못한 채 덮인 것이다.



사고 발생 6개월 후, 당시 소련이 마주한 가장 긴급한 문제는 지하수였다. 녹아내리는 노심이 내뿜는 방사능이 지하수를 오염시키게 되면 프리피야트 강을 넘어 당장 약 5천만 명의 식수원이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막는 작업을 위해서 석탄부 장관, 샤도프는 툴라 광산으로 향한다. 샤도프는 머뭇거리다 이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지하에서 발전소 콘크리트 하층부 아래까지 뚫고 들어가 흙을 파내는 작업을 광부들이 맡게 되었다고 밝힌다. 답변을 들은 광부들은 묵묵히 자진해서 체르노빌행 버스에 탑승한다. 이 버스에 타면 목숨을 잃을 것을 이미 이들은 각오한 것이다. 이때 그들은 석탄부 장관을 지나치면서 그를 위로하듯 어깨를 툭툭 친다. 금세 장관의 깨끗한 슈트는 석탄으로 더럽게 물들여진다. 이때, 한 광부의 대사가 인상 깊다:

Now you look like the Minister of Coal.
이제야 좀 석탄부 장관 같군.


실제 석탄부 장관은 광부들과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체르노빌> 3화의 제목은 [Open Wide, O Earth], 또는 "세상이여, 활짝 열려라"이다. 영단어 Earth는 세상이나 지구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또한 지층과 땅이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3화에서는 총 세 가지의 사건이 벌어진다. 첫째, 방사능으로 소련과 유럽의 식수원이 심각하게 영원히 오염된다는 우려, 둘째, 납으로 된 관과 시멘트 아래에 묻힌 소방관들의 매장, 그리고 셋째, 노심 용해를 막기 위해 직접 원자로 하부 쪽으로 땅을 파고 들어가 '활짝 여는' 광부들이다. [Open Wide, O Earth]는 땅 위의 노심, 소방관들과 광부들을 집어삼키듯 입을 벌리는 듯한 땅이 연상되는 적절한 제목인 것이다. 그렇다면 '땅'은 미니시리즈를 관통하는 메타포의 역할을 어떤 방식으로 수행하는가?


'땅'은 덮고 묻는다. 파헤치지 않으면 영원히 잊히는 곳이 땅이다. 소방관들은 원자로의 붕괴를 수소 폭발이라고 잘못 이해한 관리인들의 오판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 근본적으로는 - 성과를 내기 위하여 위험을 감수하고 억지로 실험을 진행한 공산당의 시스템이 직접적인 원인인 것이다. 미니시리즈의 5화에서 밝혀지듯, 해당 실험을 최대한 빨리 통과시키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관리인들은 사전에 통보받지도 못 한 연구원들에게 실험을 할당하였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벌어진 후에도 소련 공산당 정권은 실제로 RBMK의 결함을 외신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사고를 부소장 디야틀로프의 책임으로 돌리는 등 사실 은폐를 시도하였었다. 소방관들이 너무나도 훼손된 나머지 정상적으로 땅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납으로 된 관 안에, 그리고 시멘트 밑에서 영원히 봉인되고 폐쇄되는 모습은 은유적이다.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되고도 언론을 봉쇄하고, 사고를 인재로 조작하는 정권의 '덮는' 모습이다. 또한, '땅' 아래, 지하에서 일을 하는 광부들은 서민층과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직책이다. 툴라 광산의 광부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하부층까지 굴착기 없이 한 달간 손으로 직접 땅을 파 재난을 막는다. 미니시리즈 에필로그에 나와있다시피, 이 과정에 참여한 400명의 광부들 중 100명은 40세에 이르기 전 피폭으로 사망하였고, 프리피야트 지역에 살고 있던 거주민 약 300,000명은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의 안내로 임시로 대피하였지만, 체르노빌은 현재까지도 거주 불가능 지역이다. 이렇듯, [Open Wide, O Earth]는 시멘트에 매장되는 관과 원자로 바로 밑 땅속에서 한 달간 작업하는 광부들을 통해 보여준다. 은폐의 책임은 결국 누가 졌는가? 거짓말의 대가는 무엇인가? What is the cost of lies?



4. [The Happiness of All Mankind]:

"전 인류의 행복을 위해, " 그리고 예술


흔히 러시아는 문학의 나라, 음악의 나라라고 칭해진다. <체르노빌> 미니시리즈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인물의 정서 또는 상황이 고조될 때 다양한 예술 작품이 함께 등장한다. 가장 먼저 2화 [Please Remain Calm]의 도입 부분에서 벨라루스의 핵 물리학자 울리야나 호뮤크(Ульяна Юрьевна Хомюк)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러시아 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시를 한국어로 번역해 보았다.


No, I believe that the Russia we fight for
Is not the dull town where I lived at a loss
But those country tracks that our ancestors followed
The graves where they lie with the old Russian cross
I feel that for me it was countryside Russia
That first made me feel I must truly belong
To the tedious miles between village and village
The tears of the widow, the women's sad song
By old Russian practice, mere fire and destruction are all we abandon behind us in war
We see alongside us the deaths of our comrades
By old Russian practice, the breasts to the fore
Alyosha, til now we've been spared by the bullets
But when for the third time my life seemed to end
I yet still felt proud of the dearest of countries
The great bitter land I was born to defend

아니, 우리가 지키는 러시아는
내가 헤매며 살던 따분한 마을 따위가 아니야
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이 낸 시골 길들
오래된 십자가와 함께 누워있는 그들의 묘지들
내게는 그것이, 바로 러시아의 시골이었어
그게 처음으로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알려줬다
마을과 마을 사이 하찮은 거리부터
과부들의 눈물과, 여성들의 슬픈 노래
오래된 러시아 전통에 따르면, 불이나 파괴 따위가 전쟁터에 두고 오는 것 전부여야 하지만
우리 옆에는 죽은 동지들이 누워있다.
오래된 러시아 전통에 따르면,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가야 하지
알료샤, 방금 전까지 우리는 총알로부터 안전했었지만
이제 세 번째가 되니 내 목숨은 끝이 난듯해
그래도 나는 여전히 소중한 나라가 너무 자랑스럽다
내가 지키기 위해 태어난, 거대하고 쓰라린 땅


위의 시는 러시아 시인 콘스탄틴 시모노프의 <알렉세이 수르코프>라는 작품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덤덤하게 담아내어 당시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 해당 시가 낭독되면서 2화가 시작이 되는데, 이 시가 전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보면 <체르노빌>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또 다른 메타포가 '전쟁'임을 알 수 있다. 이를 시각적으로도 뒷받침하듯 배경에는 용병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대립하는 모자이크 작품이 비친다. 체르노빌에서 벌어진 폭발 사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상황을 아우르는 사실 조작과 은폐,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에 따른 판단으로 희생양이 되는 민간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건 또 하나의 전쟁이다.



3화의 후반부에는 짧게 스쳐 지나가는 회화가 있다. 레가소프의 지휘 하에 대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련 당국이 RBMK의 결함을 숨겼다는 사실에 대하여 조사하던 핵 물리학자 호뮤크는 소비에트 국가보안위원회(KGB)에 의해서 연행된다. 레가소프는 KGB 국장 챠르코프를 만나 호뮤크의 석방을 부탁하고, 그녀를 해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순간을 뒤에서 지켜보는 보리스 예브도키모비치 셰르비나(Борис Евдоки́мович Щербина)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연료동력부 장관인 그는 초반에는 과학자인 레가소프를 업신여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 물질에 대한 레가소프의 우려를 불신하였다. 그러나, 곧 발전소 책임자들이 사건을 덮으려 하고, 실제로 수소 폭발이 아니라 원자로 자체가 붕괴된 것을 확인한 후부터는 레가소프를 신뢰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래 장면은 그가 관료의 입장에서 처음으로 사실을 은폐하려는 KGB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이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는 그의 표정을 담고 있다. 이때, 셰르비나의 뒤에는 형채를 알 수 없게 뿌연 회화가 하나 걸려있다.



모스크바 중심에 있는 트례쨔꼬프스카야 미술관에 입장하여 2층으로 올라가 왼쪽을 바라보면 한 벽을 차지하는 유화가 걸려있다. 바라보면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회화, 화가 일리야 레핀의 걸작,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이다. 캔버스를 뚫을 듯이 충혈되고 움푹 들어간 눈으로 이미 숨을 거둔 아들의 피가 울컥 쏟아지는 머리를 처절하게 감싸 안은 아버지가 어두운 방 한가운데 있는 모습이다. 영어로는 Ivan the Terrible(Иван Грозный), 경외심을 일으킬만한 강하고 또한 두려운 군주라는 이름을 가진 이반 4세는 1581년 11월 16일, 자신의 황태자인 이반을 지팡이로 폭행하여 살인하였다. 이 일화를 화가 레핀은 공포와 광기의 감정을 담아 상상하여 묘사하였다. 당시 신성시되던 왕족, 차르 일가를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묘사하여 레핀을 향해 많은 비판이 있기도 하였다. 이 그림이 그렇다면 셰르비나 뒤에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그가 지금 서있는 곳이 소련 정권의 건물이라서' 라기에는 하필 이 그림이 걸려있을 이유가 없다. 저 그림은 '광기'이다. 셰르비나는 이 순간 자신이 속해있는 권력층이 어떤 곳인지 깨닫고 있다.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은 국가보안법에 위반되어 연행되고 있을 때, 방사능으로 인해 장기는 녹아내리고 태아는 산모 대신 방사능을 흡수하여 죽고 있다. 신성시되고 있는 소련의 권력은 최소한 내부에서 바라보았을 때 다름 아닌 거짓으로 품위를 유지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셰르비나는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내용을 함축적으로 묘사하는 그림으로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이 적절한 이유이다 - 광기. 암시되는 이 내용을 <체르노빌>은 친절하게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대사로도 짚어준다:


Our power comes from the perception of our power.
우리의 힘은 우리의 힘에 대한 다른 이들의 지각에서부터 온다.


Иван Грозный и сын его Иван 16 ноября 1581 года, картина русского художника Ильи Репина


마지막으로 4화에서 등장하는 작품으로 노래를 소개하고자 한다. 원자력 발전소를 중심으로 치명적인 방사능 물질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는 현장 수습 작업부서를 호출한다. 이 중, 방사능을 내뿜는 동물들을 살처분하는 작업에 투입된 청년, 파벨이 등장한다. 그는 총을 다뤄본 적이 없음에도 인력 부족으로 인해 체르노빌까지 불려 오게 된 것인데, 차마 동물들을 죽일 수 없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간이 흘러 파벨은 어느덧 동물들을 사살하는 것에 익숙해지지만, 오랜만에 인간을 본 어미개와 새끼를 보고 얼어붙는다. 곧 총소리가 들리고, 살처분된 동물들은 모두 콘크리트로 매장된다. 이때 러시아의 민요, <검은 갈까마귀(Чёрный Ворон)>가 흘러나온다. 이 오래된 민요 또한, 전쟁터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병사가 위에서 그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갈까마귀를 향해 부르는 내용으로,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비극을 전쟁으로 비유하고 있는 또 다른 장치이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가장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상위 권력층이 아니라 불려 나가는 병사들이기 때문이다.


Чёрный ворон, что ты вьёшься,
Над моею головой!
Ты добычи не дoбьёшься,
Чёрный ворон, я - не твой...
Ты добычи не дoбьёшься,
Чёрный ворон, я - не твой...

검은 갈까마귀여, 왜 도는가,
나의 머리 위에서!
너는 사냥하지 못할 것이다
검은 갈까마귀여, 나는 너의 것이 아니니까...
너는 사냥하지 못할 것이다
검은 갈까마귀여, 나는 너의 것이 아니니까...



암울한 멜로디가 흐르며 시멘트가 죽은 동물들의 사체에 부어지는 것을 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는 세 병사들 뒤로 크게 걸려있는 현수막이 있다. <체르노빌> 4화의 제목은 "The Happiness of All Mankind"으로, 당시 소련 정권의 선전 선동 문구인 "우리의 목표는 전 인류의 행복이다!" (Наша цель - счастье всего человечества!)에서 사용된 문구이다. 해당 선전 선동 문구가 적힌 현수막은 다 뜯어져 내리고 있고, 거주민들이 이미 떠나간 유령 마을에서 청년들은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가. 전 인류의 행복을 위해 이들은 고스란히 방사능에 노출되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5. [Vichnaya Pamyat]:

"고통받고 희생된 모든 자를 기리며"

Вечная память. '영원의 기억'이라는 뜻으로, 러시아 정교회나 장례식에서 영혼을 기릴 때 사용하는 문구로, 미니시리즈의 마지막 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무엇을 영원히 기억해야만 하는 것일까? 사고 후 4개월가량이 지나자 레가소프의 지휘 하에 소련은 화재 진압, 대규모의 피난과 동물들 살처분 작업, 원자로 하층부 굴착 작업 등 순차적으로 수습에 성공한다. 그러나, 4호 원자로 지붕 위에는 원자로 내부의 노심 구성하였던 흑연 덩어리가 치명적인 방사능을 내뿜으며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이다. 이를 처리하기 위해 독일로부터 소련은 '조커'라는 이름을 가진 월면 로봇(로버)을 받아보지만, 방출되는 방사능을 버티지 못하고 로봇은 작동을 멈춘다. 여기서 대안으로 레가소프는 참혹한 표정을 지으며 'Biorobots'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가이거 계수기 소리


기계도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오염된 원자로 노심이 노출된 지붕 위. 1인당 90초씩 돌아가며 흑연 조각들을 원자로 아래로 쓸어 넣는 작업이 진행된다. 90초밖에 안 되는 이 장면에는 어떠한 노래도, 대사도, 얼굴도 없다. 그저 방호복을 뒤집어써 얼굴을 알 수 없는 한 명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삽으로 흑연 조각을 날라 움직이는 것만 보인다. 사방에 깔린 흑연으로부터 방사선 입자는 그 어느 때보다 폭력적으로 그의 몸을 뚫고 지나간다. 그 신호로 가이거 계수기의 '틱틱티틱' 신호가 증폭된다. 폭발 장면도 아니고, 고통스럽게 피를 흘리며 하나둘씩 쓰러지는 장면도 아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을 이용해서 흑연을 처리하는 방식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많은 희생을 낳을지 시청각적으로 각인시키는 연출이다. 웅장한 배경음악도, 가상인물의 대사도 없을 때 비로소 관객은 실제 당시 그들이 90초 동안 느꼈을 극한의 공포를 현실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이 끝나고, 마치 전쟁을 치르고 복귀한 부대를 반기듯 악수를 건네는 소련군 민방위부대 공병장교, 니콜라이 드미트리예비치 타라카노프 (Николай Дмитриевич Тараканов)는 감사의 말을 건넨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각 부대원은 "I serve the Soviet Union(소련에 헌신합니다)"라고 답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수명을 깎이면서 헌신하였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인류는 모를 것이다. 전문가들이 추산하는 사망자의 수는 4,000명에서 93,000명이다. 반면, 1987년부터 바뀌지 않는 소련의 공식 사망 수치는 31명이다.

타라카노프는 현재까지 살아있고, 해당 미니시리즈를 시청하였다고 한다.


소련연방대법원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발레리 레가소프는 소련이 RBM-K 원자로의 결함을 의도적으로 은폐한 것으로 모자라, 원자로가 폭발하고 나서의 소련의 미숙한 대처를 공개적으로 비판한다(물론, 이것은 <체르노빌>에서 덧붙인 창작에 불과하고 실제 발레리 레가소프는 UN 사고 청문회에서 거짓 보고서를 제출한 후 죄책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비에트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입장에서 상당히 곤란한 발언을 한 레가소프는 결국 국장 챠르코프에 의해 연행되어 심문을 받게 되는데, 챠르코프의 발언이 인상적이다.



"Why worry about something that isn't going to happen?"
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는가?


'일어나지도 않을 일'로 체르노빌은 현재까지도 출입금지의 죽음의 땅이 되었고, 근방 소아암 비율은 급증하였다. 수습을 위해 투입된 소방관들과 연구원들, 광부들과 생체로봇, 이를 돌본 의사들과 간호사들 수 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챠르코프의 저 대사는 <체르노빌>에서 비추는 안일함을 꿰뚫는 표현이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관료직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갖추었을 태도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생각 - 사소한 은폐 하나로 수많은 수익과 효율성을 얻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덮을 수 있다는 - 으로 인해 재앙이 발생한다. Вечная память. 우리는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피해를 막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모든 이들을

영원히 기억할 의무가 남겨지는 것이다.


아나톨리 시트니코프 (Анатолий А. Ситников). 실제로 사고를 부정하던 상사로부터 명령을 받아 반강제적으로 직접 옥상에서 노출된 원자로를 확인하여 보고하였다. 즉각 피폭되어 얼굴이 부은 모습이다. 사고 한 달 후 사망하였다.


발레리 호뎀추크 (Валерий Ильич Ходемчук). 순환펌프 기사로, 체르노빌 사고의 첫 번째 사망자. 현재까지도 체르노빌 원자로 순환펌프실에 묻혀있으며, 2016년에 지어진 강철돔은 방사능을 100년간 봉인하기 때문에 2116년에야 유해를 수습할 수 있다. 호뎀추크는 사고 당일, 댜틀로프 지위 하에 실험이 진행되는 사실조차 몰랐다.

죽음의 다리(мост смерти).

사고 발생 당시, 이 다리 위에서 광선을 지켜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본 '빛의 기둥'은 공기가 방사능에 이온화하면서 빛난 것이었고, 떨어지던 눈과 같은 먼지는 방사능 낙진이었다. 이들은 모두 피폭으로 사망하였다고 전해진다.


주변 피해국.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은 전 유럽으로 빠르게 퍼졌는데, 특히 벨라루스는 약 30%의 영역이 오염될 정도로 피해가 심했다. 최근 보고(Malko, 2007)에 의하면, 러시아ㆍ우크라이나ㆍ벨로루시에서 2056년까지 50.840명이 방사선암으로 사망하며, 유럽까지 포괄하면 89,851명이 방사선 노출로 인한 암으로 사망한다고 추정하였다(임종한).



6. 마치며


<체르노빌>은 매우 뛰어난 몰입력과 스토리텔링으로 단 5화의 분량으로 세상을 바꾼 사고를 다룬 작품이다. 덕분에 전 세계가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그만큼 사고에 대한 대비와 특히 은폐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번에 살펴본 작품 <체르노빌>이 다른 다큐멘터리에 비해 아직까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로는 사고를 시간 순으로 단순하게 나열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연출 장치를 몇 가지 살펴보았다. 제대로 된 대처의 부재 속에서 누구보다 혼란스러웠을 시민의 입장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시에 '땅'과 시, 그림과 노래 같은 다양한 메타포의 활용이 있었다. 이런 연출이 합쳐져 몰입감을 높이고 연결성있는 작품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체르노빌> 미니시리즈 5화 마지막에 약 3분짜리의 에필로그 영상은 5화의 분량동안 이어온 모든 서사를 완성시킨다(에필로그 영상은 꼭 미니시리즈를 감상을 다 마친 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왠만해서는 이 작품만큼 여운을 강하게 남기는 에필로그는 보기 힘든 것 같다. 더운 8월이다. 달리 할 것이 없을 때 시원하게 선풍기 틀어놓고 체르노빌로 떠나는 것은 어떤가?


"고통받고 희생된 모든 자를 기리며."
- Luke Hull, HBO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의 감독



출처:

HBO 미니시리즈 <체르노빌>

임종한, "체르노빌 사고: 유럽지역의 노출 수준과 건강 영향", '환경독성보건학회', 2011년 4월, 21쪽.



P.S.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실제로 보면 더 압도되는 작품이라 모스크바 여행에서 꼭 갤러리 방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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