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보다 내 성질대로 일을 해결하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그럼에도 함께 어울려살아가야 하기에 서로 배려하는 거죠. 그런데 제가 마주한 세상에는 생각보다 무례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근무 시간 외에 상담을 신청하는 사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자격미달이라며 비난하는 사람, 너가 참아야한다고 저를 억누르려고 하는 사람 등등.
제가 지키는 예의는 어느샌가 상대에게 만만해 보이는 약점이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허탈했고 이 과정에서 점차 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억울함과 분노가 불쑥불쑥 올라와 이성을 잃기도 하고 입을 꾹 닫아버리기도 했습니다.
이러다 모래가 바스라지는 거처럼 스스로 바스라질 거 같아 기존쎄 스터디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존쎄란 건강한 공격성입니다. 나를 지키기 위한 건강한 공격성은 꼭 필요하니까요.
그렇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줘선 안되니 정한 원칙들이 있습니다.
나의 의견을 말하기 전에 질문으로 상대와 간격을 둔다.
질문으로 생각의 틈을 잠시 주는 겁니다. 내 의견을 바로 말하기 전에, '왜 그렇게 생각해?' 질문하면서 내가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도 하고 상대가 자신의 무례함을 깨달을 수 있게 질문을 해봅니다.
부드럽게 하지만, 핵심을 담습니다.
핵심은 반드시 이야기해야합니다. 절대 잘모르겠어라고 하지 않습니다. 호불호를 명확하게 하지만 좀 더 부드럽게 말하고자 노력합니다. 내가 공격받았다는 건 이미 상대방은 선을 넘었고, 나를 굴복시키려고 하는 상황입니다. 이럴때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핵심을 피해서는 안됩니다.
핵심을 말하되 예의를 지키며 말하는 것이야말로 기존쎄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화를 내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마세요. 그러기보단 생각과 핵심을 명확하게 전달해보세요. 상대가 의견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한다 할지라도 표현하는 건 중요합니다. 내 존재를 보이는 거니까요.
왜 내 공격성이 발현되는 부분일까?를 곱씹어봅니다.
나를 지켜야할 상황을 빠르게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나고보니 무례한데?라는 생각을 한 적 있지 않으신가요? 내 선이 명확하지 않다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경계를 명확하게 짓기 위해 어떤 것이 나의 경계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건강한 공격성이 아니라 야만의 공격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타인에게 당연하게 배려를 바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건 가식이라고 하며 무례함을 솔직함이라고 포장하죠.
우리는 그러지 말았으면 합니다. 상대의 실수에 관용을 베풀고 기회를 주고 기다려줬으면 합니다. 나를 지킬만큼의 건강한 공격성을 가지고요.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기존쎄 스터디를 해보시지 않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