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량재 Jun 06. 2023

[편론] <비긴어게인>을 보고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의 의미

최근에야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토요일 심야로 변경됐지만, 꽤 긴 시간 동안 KBS 2TV의 금요일 심야 방송은 우리나라의 음악 방송을 대표해 왔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프로그램들이 바로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그리 높은 시청률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음악인들에게 무대의 기회를 제공해왔던 이 족보 있는 방송의 뚝심은 그 방송의 진행자들이 가진 음악에 대한 애정을 대중들이 확인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 음악가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이 세 명을 한 방송에서 모았다. 이미 캐스팅부터 화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던 <비긴어게인>은 현재의 시청률이 검증해주듯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방송 시작 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음악적 권위를 가진 세 명의 아티스트가 아무런 인지도가 없는 낯선 외국에서 아마추어 공연으로 인식될 수 있는 버스킹 투어를 떠난다는 설정에서 오는, 그런 낯설고 새로운 모습에 기대감을 가졌다. 그리고 이 방송의 제목인 ‘비긴어게인’이 의미하듯 프로 뮤지션들이 낯선 경험을 통해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끼고 그들의 음악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언론 역시 <비긴어게인>에서 프로 뮤지션들이 보여주는 무대와 협업 그리고 그 준비 과정에 중심을 맞추어 이 방송을 조명한다. 물론 제작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리라. 그러나 방송을 몇 주간 지켜본 나는 이 방송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울림이 그것들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방송에서 주는 가장 큰 울림은 오히려 유럽의 행인들이 음악과 버스킹을 즐기는 모습에 있지 않을까. 아티스트와 관객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좋은 음악이 나올 때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고, 걸어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리에 앉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 유럽의 시민들이 음악을 즐기는 모습은 분명 대한민국에서 우리들이 음악을 소비하는 모습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

  ‘비긴 어스'(방송에서 버스킹을 하는 윤도현, 유희열, 이소라의 밴드 이름)의 무대를 가만히 지켜보며 자신의 꿈과 목표를 적어보던 한 청년의 모습. 또 이들의 음악을 반주삼아, 유럽의 경치를 배경 삼아 걸음을 멈추고 함께 춤을 추곤 했던 연인들.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고 흥겨워하며 소리치고 박수치던 행인들. 이들 모습을 보며 우리는 ‘유럽이니까, 경치가 좋으니까, 여유가 있으니까’의 차이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지 않을까?

  과연 우리는 지금 음악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을까? 예술이 주는 감동은 우리가 특별하게 누려야 할 것들이 아니다. 예술은 항상 일상 속 가까이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큰 결단을 하고 예술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순간들마다 우리는 예술과 함께 할 수 있다. 그 예술이 주는 감동의 순간은 날마다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하고 또 응원한다.

  <비긴어게인>이 주는 새로운 시작의 의미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일상의 매 순간마다 스스로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예술을 누릴 줄 아는 우리가 되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2017. 08. 25.

작가의 이전글 [편론] <썰전>을 보고서 적은 교육에 대한 고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