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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주의자 앨리스 Nov 08. 2023

두 번째 에세이 책 내기

#과제 3- 입회 동기 2

 첫 장을 펼치자마자 '데미안'은 나를 사로잡았다. '두 세계'로 시작되는 소설은 싱클레어를 둘러싼 두 세계를 완벽하게 묘사했고 나는 100 프로 동감했다. 나의 세계가 그랬다. 엄격하면서도 다정하고 안정적인 빛의 세계와 유혹적이면서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나쁜 남자와 같은 세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던 게 나의 성장 과정이었다. 

 성당은 대표적인 빛의 세계였다. 성당 안을 가득 메운 서늘한 침묵, 재단을 밝히는 촛불의 너울, 미사 제례를 위해 갖춰 입은 사제의 제의, 뒤따르는 복사, 오르간 반주에 맞춰 울려 퍼지는 성가.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들이쉬는 숨에 섞여 들어오는 향, 전날 피웠던 향로의 흔적이 얕게 남아 있었다. 

 내 삶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권모술수가 가득한 세계가 매력은 사라지고 배신과 실망이 넘쳐나던 무렵이었다. 나를 향해 난 한쪽 문을 닫고 남은 문을 활짝 열어 내 생의 이별과 새로운 시작을 동시에 일으키며 어딘가에서는 도망을 치고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삶의 설렘을 되찾으려려 했다.

 예비 입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소 피정은 맛보기였다. 피정 전 과정을 계획하고 주도하는 성소국 수녀님 외에도 전례를 위해 기타를 쳐주고 성가를 불러주는 수련 수녀님들과 뒤에서 말없이 매끼 식사를 준비해 주시는 수녀님까지 조화를 이뤄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직장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부딪히는 요소들, 의사소통의 오류, 미흡한 준비,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부족한 숙지로 나는 매번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비해 피정은 각기 다른 악기가 모여 하모니를 이루는 음악 같았다. 

 그리고 진짜 음악, 집에서 다니던 성당 미사 시간의  성가는 오르간 반주이거나 청소년 미사의 밴드 사운드가 유일했다. 입소 피정에서 전례는 어쿠스틱 기타 선율에 아름다운 목소리가 얹어 연주되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였다. 

 침묵으로 진행되는 피정은 최소한의 말소리, 몸소리만 남기고 소리가 사라졌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강의가 진행될 때와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나눌 때를 빼고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피정 공간은 곳곳에 묵상할 장소가 주어졌는데 갈색과 회색이 오묘하게 혼합된 푹신하고 커다란 방석, 은은한 조명, 숨겨진 다락방은 동화 속 환타지 공간이었다. 푹신한 침대 속에서 꾸는 아늑한 꿈이 현실이 되도록 했다. 

 마지막 나눔이 있던 날, 한 성소자가 말했다. 자신에게 하느님은 강아지 같이 작고 소중하고 위로를 주는 존재라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존재로 남아 주실 수 없냐고. 입회 동기였고 피정 소감이었다. 내 동기를 남들이 듣기에 좋게 꾸며 내놓으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했다.  

 그 성소 피정에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느님과 함께 하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될 것 같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을 바라며 수도회에 입회하기를 청했다.

 정답은 없는 질문이지만 바라는 답은 있기 마련이다. 선생 수녀님이 한 입회자의 말이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고 했다. "하느님이 좋아서요" 이 말은 아침 훈화 시간에 선생 수녀님, 그러니까 지원장 수녀님이 한 말이었다. 나와 동기를 포함한 천방지축 지원자를 지도하기가 힘에 부쳤던 수녀님에게 힘을 주었다면서.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흥칫뽕하며 심술이 났었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나의 입회 동기와 오아시스의 입회 동기의 차이는 '나'를 중심으로 일어난 동기인지, 수도회 존재 목적인 '하느님'을 중심에 둔 동기인지 하는 점이었다. 표현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안다. 내 입회 동기는 돌파구가 필요했던 내게 안식처로 수도회를 선택했다는 것을 말이다. 편하지 않고 혹독했던 수련기를 견뎌냈으니 주께서 이 불순한 동기를 용서하셨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입회 동기로 수도 생활을 하는 건 아니다. 수련장 수녀님의 오아시스였던 입회자는 나보다 먼저 수도회를 떠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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