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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주의자 앨리스 Apr 22. 2024

미처 알지 못했던 일   

거침없는 그녀들

  

가슴이 예쁘네.

말끝이 올라간 감탄하는 어조가 아니라 끝을 내려 확신하는 말투로 그녀가 내게 건넨 말. 생전 처음 들어봤다. 근데 내 가슴은 언제 봤대? 말기로 꽁꽁 싸매 납작하게 눌러놓은 걸. 말기는 수도회에서 사용하는 가슴가리개다. 원래는 한복 바지나 치마의 맨 위에 둘러서 댄 부분으로 한복의 바지허리나 치마허리를 가리키는 명칭인데 말기와 가슴가리개가 구분이 어렵다 보니 가슴가리개가 말기로 잘못 불리고 있다. 전통 가슴가리개는 가슴 윗부분을 밀착하고 아랫부분은 헐렁하게 늘어뜨렸지만 내가 사용한 말기는 거의 압박붕대로, 남장을 한다면 그 말기가 아주 유용할 듯하다. 그러니 그녀는 내 옷맵시에서 가슴이 예쁘다고 평가할 수 없고 맨 가슴을 봤어야 가능할 것이다. 욕실에서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공동 욕실이긴 해도 칸막이로 나눠지고 각각 문이 달려 있어서 한 명씩 사용하니 벗은 몸을 보긴 어렵다. 세 명이 같이 쓰는 방에서 보았을까? 새벽 묵상과 기도, 미사가 끝나면 예식을 위한 정복에서 5분 내로 일복으로 갈아입는 일이 빈번했지만 속옷까지 벗는 일은 없으니 그녀가 내 가슴을 보지 못했을 텐데. 

내 몸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녀 말이 순순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언짢고 기분이 상하기만 했다. 옷을 사는 게 늘 곤혹이었다. 굵은 종아리를 내놓을 수 없으니 가게에 진열된 치마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엉덩이와 허벅지 때문에 스키니진이나 골반 바지가 유행하는 시절에는 살 바지가 없었다. 상의는 엉덩이까지 가릴 길이로 선택했다. 가슴이 옷 위로 도드라지거나 굴곡이 지지 않게 어깨를 동그랗게 말고 가슴을 작게 만들었다. 

머리카락을 감추고 가슴을 누르며 여성성을 감추도록 요구되는 수도원에서 가슴이 예쁘다는 말은 시답지 않았다. 나에게는 불쾌하고 부끄러워 피하고 싶은 주제였다. 이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몸은 동기들이 나누는 대화에 종종 등장했고 급기야는 이런 말까지 뛰쳐나왔다.

문장완성검사의 문항, ‘내가 성교를 했다면                에서 그녀는 빈칸을 ‘좋겠다’라고 채웠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썼냐고 묻자 “이 나이에 뭐가 부끄러워서 말을 못해?” 라고 했다. 꿈에 남자가 그녀를 애무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잠에서 깨었다며 아쉬워도 했다. 그런 자신을 수도원에 들어온다고 있는 게 없어지는 것이 되냐며 감추고 외면하는 태도보다 훨씬 건강하다고 여겼다. 물론 선생 수녀 앞에서 말하지는 않았고 동기끼리만 하는 말이었다. 그녀 덕분에 대화는 가끔 아니 자주 은밀하고 흥미롭고 생기 넘쳤다. 동기들도 하나씩 짝사랑하던 남자 이야기, 콤플렉스인 작은 가슴 이야기, 사귀던 남자와 싸운 이야기를 내비쳤다. 거룩하고 엄숙한 수도원에서 기도와 노동으로 풀이 죽었을 때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음식과 연예인과 남자 이야기였다. 

수도원은 매우 낯선 세계였고 앞으로 어떻게 풀릴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수도원의 규칙을 따르는 일은 자기 결정권을 내려놓는 일이었고 내 독립성과 주체성과 프라이버시를 포기하는 일이었다. 수도회는 자유를 내어놓고 규칙을 따르는 자는 수도회가 내어주는 확실한 미래, 종신 서약에 다다를 수 있다고 유혹했다. 이를 위해 내 인생의 모든 측면을, 중요하고 예측 불가능하여 창조적이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무언가가 될 기회를 기꺼이 내어놓기를 요구했다. 수도회의 요구가 분명할수록, 몸을 억압하고 감정을 누르고 내 생각을 부정할 때가 많아질수록, 동기와의 은밀하고 위험한 대화는 생기 넘쳤고 즐거웠다. 

느리게, 실수투성이로, 고통스럽게 진행되는 수도자가 되어가는 과업 속에 많은 것을 난생처음으로 발견되었고 대부분은 나보다 타인이 먼저 발견하였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모습,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이 속속들이 들추어질수록 긴장과 불안 속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자신을 잃을까 두려웠고 진작 지나쳤던 다른 많은 길을 돌아보고 싶었다. 아직까지는 되지 않은 존재가 앞으로는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무서울수록 수도원 밖에서 포기했던, 억눌렀던 욕구를 자각하게 되었다. 생뚱맞게 바람을 맞으며 해안가를 달리고 싶었고 해외 여행을 가고 싶었다.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싶었고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고 싶었다. 심야 라디오 사연을 귀기울여 들으며 위로 받고 싶었다. 무엇보다 고향 사투리로 실컷 떠들고 싶었다. 포기하고 버려둔 수도원 밖의 생활과 수도 삶의 가치를 저울질하면서 나는 두려움 속에 내면의 삶을 방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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