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도 바쁘지만 주말이면 더 바쁜 우리. 가뜩이나 주말엔 손님이 넘쳐나지만 주간 직원이 주 5일 근무로 토, 일은 쉬기 때문에 주말이 되면 우리 부부는 12시간 꼬박 모텔을 지킨다. 가끔 주변에서 직원을 구하라는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바쁜 시간대에 주인이 자리를 비운다면 어디 제대로 굴러가겠는가?
오늘은 4월의 마지막 주말.
2024년엔 하늘이 찢어지기라도 한 것인가 무슨 비가 이리 내리는지 모르겠다.
출근길 벤티에 들러 체력충전용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고, 김밥을 한 줄 사려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발길을 돌린다.
“요거 두 개나 사는데 하나 더 줘야지..”
“하하하!!!”
시장 상인과 가격 흥정을 하는 목소리가 귀에 익는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부부였다. 신랑의 오른손에는 20리터 쓰레기봉투가 쥐어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막걸리가 5~6병 정도 담겨있다. 둘은 아마도 비가 주르륵 내리는 주말을 맞아 신선한 해물에 막걸리를 한 잔 걸치려나 보다. 인사를 하려다 울컥한 마음에 슬쩍 그곳을 피한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만두다.
“당신 특초밥 시켜놨어.”
특초밥은 인근 식당 중에서 나름 고가의 점심메뉴였다.
비싼 초밥, 아메리카노, 구찌운동화, 까르띠에 시계를 찬 손목 위 자도르(디올 향수) 향내를 풍기며 중형세단을 타고 출근을 했겠지. 그러나 기껏해야 간 곳은, 그러니까 기껏해야 남들 다 쉬는 주말에 간 곳은 여기! 또 여기겠지.
내가 가진 것들, 누리는 것들. 그런데 이 공허함을 어떻게 설명하지?
15년 전인가? 주말이면 남편과 역전 시장에 들른다. 소라, 조개, 꽃게 따위를 사고 들어오는 길 소주 3병도 잊지 않았다. 빌려온 비디오테이프 두 개를 모두 돌려보고 나면 우리 부부는 얼큰하게 취해있었다. 해장으로 라면을 끓이고, 아이들은 냄새를 맡고 달려든다.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주말이면 온 가족이 모여 개그콘서트를 보며 함께 웃었다. 개그콘서트가 끝나고, 개그맨들을 흉내 내며 누가 누가 더 잘하는지 장기자랑을 선보이는 아이들이 이젠 장성한 20대가 되었다.
그 시절 우리는 얼마나 찌질했던가?
백화점 구경에 나서서 정말 구경으로 끝났던 날 서러워 부둥겨 안고 울던 우리.
아이 돌반지를 팔아서 중고 아반떼를 300만 원으로 사고선 우리의 첫 자동차가 천국이라도 데려다줄 것 같던 나날들이 문득 떠오른다.
지금 나는 천국에 와 있는가?
어느 것이 진짜 행복일까?
그 시절 그토록 원하던 것들을 가진 대가로 그 시절 그토록 당연하게 여긴 것들을 잃었다.
뭘 그리 심각하게 구는가?
달라진 것은 없다.
튼튼한 두 다리, 유연한 두 팔, 아직도 뜨거운 심장과 작은 일에도 크게 웃을 줄 하는 얼굴 근육과 목청이 있는데?
무얼 바라는가?
아직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밤하늘의 별이 꺼지지도 않았는걸? 한낮의 태양은 얼마나 눈이 부신가? 함덕 바다에 파도가 멈춘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