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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는 사람들이 괴로워하게 놔두고는 느긋하게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주문을 약간 고쳐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새벽 비가 와서 지붕은 깨끗해져 있었고 고양이들은 느긋하게 누워서 햇살에 달궈지는 돌을 즐기고 있었다. 니나는 고양이들이 경계하지 않도록 적당히 떨어진 곳에 앉아 다음 새벽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함정을 파거나 그물을 치면 고기가 충분히 걸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법이다.
배가 고파진 니나는 잠입 전에 사둔 빵 조각을 마저 먹었다. 고양이들이 기름 냄새에 호기심을 보이며 니나 쪽을 기웃대다 시선을 피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강했다. 니나는 새삼 없는 고양이가 아쉬워졌다. 고양이만 있어도 쟤들이 조금 안심할 텐데. 세상 모든 고양이가 나만 사랑해 주었으면.
보아하니 부어서 퉁퉁한 고양이도 있었고 다리를 저는 고양이도 많았다. 가장 멀쩡한 고양이는 무대로 끌려가 끔찍하게 죽을 뻔했던 새끼 고양이였다. 녀석도 등 쪽에 화농 딱지가 붙어있었고, 대부분 말랐거나 눈에 눈곱이나 고름이 덕지덕지 붙은 것이 병색이 짙었다. 니나는 고양이들에게서 조금 더 멀리 떨어져서 가방에서 마법 도구를 몇 개 꺼냈다. 가방을 박박 뒤지니 고양이 박하 가루 약간과 향기만 모은 장미수 한 병도 나왔다. 밀 싹은 없지만 적어도 기본 진통제 역할은 할 것이다. 말린 생선을 싸왔어야 해. 혀를 차며 니나는 일단 급한 약부터 만들기로 했다.
니나는 장미수를 제일 입이 넓은 그릇에 부은 뒤 은판으로 햇빛을 반사시키며 먼지를 걸러낸 고양이 박하 가루를 뿌렸다. 그 뒤 그 혼합물을 10분 정도를 햇빛 아래 놓고 미지근하게 데웠다. 10분 뒤 조금 데워진 혼합물을 솔에 묻힌 니나는 고양이들 쪽으로 열심히 튕겨 뿌리기 시작했다.
햇볕처럼 따뜻하게, 흙처럼 부드럽게.
마법을 머금은 약 방울이 조심스럽게 고양이들의 주변을 맴돌았다. 부드러운 장미 향기 속에 하나둘 나른해진 고양이들은 털 고르기를 멈추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약 뿌리기를 한 니나는 숨을 고르며 연락용 향수를 꺼냈다.
제압 완료. 고양이 마흔세 마리 생존. 지붕에서 진통제 처치 완료. 하루 동안 범인들 감금하며 수집 예정. 고양이들 영양 보충과 치료 급함.
하루가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향수를 듬뿍 먹인 밤나무 펜이 공기 중에 바쁘게 글씨를 써내려갔다. 라이메에게 보낼 보고를 잽싸게 마친 니나는 반대쪽 손등으로 글씨를 휙 밀었다. 이제 짐을 싸 들고 마법사들이 고양이들을 모시러 올 것이다. 니나는 미끄럼 방지를 섞은 막기 마법으로 지붕을 광주리처럼 감싸며 고양이들이 잘 자리를 잡았나를 다시 확인했다. 건물 안쪽에서 고함이 조금 새 나오자 몇몇 고양이가 깨어났고, 니나는 화가 나서 지붕의 먼지를 쓸어다 안에 풀어 넣고는 조명창을 막았다. 의학 교수들은 환자의 안정이 마법사의 편의보다 백 배는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수의학 교수는 아픈 동물은 아픈 사람보다 천 배는 예민하니 알아서 조심하라고 가르쳤다. 니나는 오랜만에 모범생이 되기로 했다. 받은 것의 배의 배 정도로는 갚아줘야지.
"뭘 잘했다고 떠드는 거야."
어린 마법사가 등을 지붕에 붙이며 투덜거렸다. 두 시간 뒤 마법사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수의학 교수가 이끌고 온 연구부 학생들은 고양이들을 조심스럽게 진찰한 뒤 폭신한 천을 깐 광주리에 넣었다. 수의학 교수는 고양이들이 생각보다 안정된 것을 보고는 니나를 칭찬해주었다.
"네가 이름값을 하는구나. 다친 것은 그대로지만 일단 놀라고 겁먹은 것이 많이 진정되어 치료하기 편하겠다. 아주 잘했다, 니나."
"감사합니다, 교수님."
"저 녀석만 빼고 다 광주리에 들어갔다. 마법에 우리 뜻대로 따르지 않는 걸 보니 마력을 타고난 놈이구나. 네가 잘 어르고 달래 보거라. 보아하니 저 녀석도 오래 굶었어. 빨리 뭐라도 먹여놔야 한다."
"예, 제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무대 위의 우리에서 울던 새끼 고양이였다. 너무 작아서 태어난 지 몇 달이 되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젖은 뗀 것 같은데 큰 눈을 부릅뜨고 계속 경계만 하고 있었다. 대답은 넙죽 해 놓았지만 니나는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약하고 겁에 질린 새끼 고양이는 돌본 적이 없었다. 마법사의 최악의 악몽 중 하나는 고양이의 외면인데, 만약에 이 고양이에게 거부당하면... 아아, 그건 정말 끔찍할 거다.
"이거 받거라. 너도 배가 고프겠다고 현자께서 주방에 부탁해 잔뜩 싸주셨단다. 참, 경관들은 오후쯤에 올 거란다. 현자께서 아마 직접 와서 사건을 넘기실 테니 그때까지 좀 지키고 있거라."
"네, 교수님."
수의학 교수는 의약품이 든 주머니, 큼지막하고 덮개가 있는 고양이용 광주리, 그리고 촉촉하게 삶은 닭고기가 포함된 도시락 바구니를 건네주고는 연구부 학생들을 끌고 마탑으로 돌아갔다. 니나는 일단 도시락 바구니에 들어있던 넓적한 접시에 닭고기를 잘게 잘라 늘어놓은 뒤 햇살의 열기로 그릇과 고기를 약간 데웠다. 손가락을 두 번 까닥거려 접시를 새끼 고양이 쪽으로 옮겨준 니나는 다시 고개를 도시락 쪽으로 돌렸다.
가지와 양파를 가득 채운 팔뚝만 한 새우 엠빠나다에 부드러운 치즈를 넣은 달걀 오믈렛, 달콤한 시다르 펀치 한 병이었다. 니나는 엠빠나다와 오믈렛을 조금 더 데우며 시다르를 일단 한 모금 머금었다. 부드럽게 터지는 탄산, 달콤한 사과 향기, 쌉쌀한 단맛에 미끄러운 목 넘김. 니나는 아래쪽에서 슬슬 벌어지고 있을 아비규환과 살아난 고양이들의 평온해진 얼굴을 생각하며 따끈해진 오믈렛과 엠빠나다를 먹었다.
오믈렛 냄새가 공기 중에 퍼지자 새끼 고양이는 호기심을 드러내 코를 킁킁대며 입맛을 다셨다. 니나가 엠빠나다를 베물자 양파 냄새에 화들짝 놀란 새끼 고양이는 닭고기 조각을 하나 물고 후다닥 물러났다. 니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버섯과 양파와 함께 고기를 볶은 속을 넣은 엠빠나다는 니나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다. 고양이들이 양파에 민감하다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을런가. 니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바람이 불지 않는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엠빠나다를 천천히 먹어 치웠다.
30여 분 뒤, 새끼 고양이는 닭고기를 다 먹었다. 배가 차니 훨씬 여유로워졌지만 경계는 풀지 않고 있었다. 니나는 혀를 내둘렀다. 보통 놈이 아니다. 기가 센 것이 마력도 다른 고양이들의 열 배는 타고 난 놈이었다. 둘이 서로의 눈치를 본 지 약 한 시간, 새끼 고양이가 조심스럽게 니나 쪽으로 다가왔다. 둘은 곁눈질로 서로를 훑었고, 니나는 잽싸게 눈을 돌렸다. 새끼 고양이는 시선으로 니나를 쫓았다. 니나가 살짝 시선을 돌리자 둘의 눈이 다시 마주쳤다. 니나는 운명을 느꼈다.
"빵."
니나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한 마디가 흘러나오고, 푹신한 양털 더미가 지붕을 덮었다. 니나는 손가락을 까닥이며 새끼 고양이가 편하게 놀게 유도하고, 안아들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오래 기다렸다. 고양이 앞에서는 예의를 지켜야 하는 법이고, 새끼 고양이 앞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조심스러워야 한다. 30분쯤 젖 냄새가 나는 양털 더미에서 놀던 새끼 고양이는 쪼박쪼박 다가와 니나를 올려보며 울었다.
냐옹, 먀-옹. 냐-.
니나는 쪼그리고 앉아 손을 조금 내밀었다. 새끼 고양이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니나의 손이 저릴 무렵, 새끼 고양이가 손가락에 얼굴을 부볐다. 고양이의 선택, 가장 강력한 마법이 이루어졌다. 얼굴을 부빈 새끼 고양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벌리고는 니나의 손가락을 물었다.
"피페라투스. 후추처럼 맵구나. 맵고, 향긋하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나의 고양이."
니나는 기뻤다. 니나 바이나즈는 열다섯에 강력하고 아름다운 고양이에게 선택받은 완전한 마법사가 되었다.
피페라투스라고 마법사에게 이름을 선물 받기 전, 어린 얼룩 고양이는 엄마와 이모와 옆집 아줌마와 함께 지냈다. 형제는 다섯, 사촌이 셋이었고 옆집 아줌마네도 세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세 번째 아니면 두 번째로 태어난 것 같았다. 젖을 먹은 뒤 웅크리고 있을 때 같이 웅크린 작은 고양이들과 젖을 먹으려 움직이는 작은 고양이들을 느꼈으니까.
새끼 고양이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려 투덕투덕 놀며 잘 지냈다. 어른 고양이들은 둘씩 짝지어 새끼들을 돌봐주었다. 눈을 뜨고, 털을 핥는 법을 배우고, 걸음마를 익히고 마침내 뛰기 시작했다. 어미 고양이는 열심히 먹고 열심히 먹이며 두 달이 넘는 시간을 행복하게 보냈다. 회색 털에 얼룩무늬가 있는 이모, 갈색 털에 얼룩무늬가 있는 엄마 고양이와 달리 옆집 아줌마는 노란 줄무늬 고양이였고, 새끼 고양이들의 털 색은 더욱 다채로웠다. 사람들의 눈에는 낡은 창고 옆의 덤불이었지만 어린 고양이들 눈에는 그만한 놀이터가 없었다. 찬란한 늦봄, 꽃들이 곱게 피고 하늘은 천 가지의 푸른색으로 빛났다. 새끼 고양이들이 이가 날 무렵까지 세 가족은 행복하게 지냈다.
봄은 짧게 지나갔다. 어느 날, 쇳내가 나는 인간들이 올 때까지, 고양이들은 인간들과 별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셋이 움직였다. 냄새가 지독하고, 기분 나쁘게 컸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새끼 고양이의 사촌들을 입만 있는 괴물에게 먹이는 일이었다. 사촌들이 빼액빼액 울자 벽에 괴물이 몸을 박았고, 침묵이 흘렀다. 그다음엔 그저 무서웠다. 얼어붙었던 새끼 고양이는 똑같이 얼룩무늬였던 언니, 그리고 막내와 함께 괴물에게 먹혔다. 사촌 하나는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나머지는 뻣뻣하게 굳어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그다음은 공포와 의문의 연속이었다. 새끼 고양이는 친숙한 냄새와 떨어져 형제들과 따로 쇠장에 갇혔다. 작은 우리, 숨을 곳 없는 뻥 뚫린 공간이었다. 그 밖으로 거친 목소리와 더 저속한 장난질이 오갔다. 몸을 아무리 웅크려도 피할 수 없었고 아무리 기다려도 어미도 이모도 옆집 아줌마도 와서 핥아주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는 냄새가 나자 지독하게 독한 냄새를 풍기는 인간들이 몰려들어 우리를 툭툭 건드리며 지나갔다. 새끼 고양이는 털을 부풀리며 태어나서 처음 하악질을 했다. 인간들은 웃어대며 우리를 계속 툭툭 치고 지나갔다. 갑자기 언니의 비명이 들리더니 짝짝대는 소리가 거대하게 울려 퍼졌다. 새끼 고양이는 그것이 마지막이고, 공포가 언니의 흔적이라는 것을 우리 옆을 지나는 인간들의 긴 털에 배인 냄새로 알아냈다. 다음 날은 방 끝의 늙은 고양이, 이틀 뒤에는 사촌과 막내가 그렇게 사라졌다. 밤과 낮은 똑같이 무섭고 춥고 알 수 없었다.
다시 이틀 뒤, 새끼 고양이는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그 냄새를 파악하려는데, 늙은 고양이의 우리를 챙긴 인간이 인간들이 몰렸다 빠지던 곳으로 새끼 고양이의 우리를 들고 갔다. 싫어! 싫어! 싫어! 새끼 고양이는 울고 울었다. 인간은 우리를 쥐고 거칠게 흔들었다. 우리 속을 구르니 정신이 없었다. 제정신이 들 때까지 한나절이 걸렸고 냄새들이 파악될 무렵에는 이미 무대 위였다. 울리는 짝짝 소리, 옆에서 대드는 인간, 그러고 이상한, 하지만 친숙한, 아는 냄새. 그리고 새끼 고양이는 우리에서 벗어나 천천히 떠올랐다. 공중에서, 새끼 고양이는 냄새의 주인을 볼 수 있었다. 녀석은 살아 있는 모든 고양이를 철 우리에서 꺼내 햇살 아래로 데려가 좋은 냄새로 놀란 털을 달래주었다.
새끼고양이는 햇살에 데워진 지붕에서 생각했다. 녀석은 나쁘지 않았다. 먹을 것을 주지 않았을 뿐. 하지만 녀석이 자기를 흘낏흘낏 바라보면서 향긋한 물을 뿌리고, 다른 놈들이 어른 고양이들을 데려간 뒤 닭고기를 주자 새끼고양이는 마음이 많이 풀어졌다. 하지만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
닭고기를 다 먹은 새끼고양이는 마음을 정했다. 양털 더미에서 벗어난 뒤 지붕을 따라 걸음을 옮긴 새끼고양이는 녀석이 앞발을 뻗으면 간신히 닿을 만한 거리에 멈춰서 울었다.
냐옹, 먀-옹. 냐-.
이봐, 나랑 놀래, 응?
녀석이 쪼그리고 앉아 앞발을 조금 내밀었다. 인간들은 다 앞 발가락이 길다. 새끼고양이는 조심스럽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직 마음을 완전히 내줄 수는 없다. 녀석은 한참 동안 앞발을 거두지 않았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고, 고분고분하고, 냄새도 좋고, 눈치도 빠른 놈이다. 충분히 녀석을 살핀 새끼고양이가 손가락에 얼굴을 비볐다. 고양이는 마법사를 선택했다. 얼굴을 비빈 새끼고양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벌리고는 마법사의 앞 발가락을 물었다.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피페라투스. 후추처럼 맵구나. 맵고, 향긋하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나의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