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10살에 아이가 처음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또래 여느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겪고 지나가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다.
"너의 꿈을 응원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말에 나의 진정성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아이는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말했지만 엄마는 잠을 자듯 꾸는 '꿈'이라고 여겼다.
"엄마~ 난 아이돌이 꿈인데 미술, 피아노, 영어, 수영학원을 다니고 있잖아~
내 꿈에 다가갈 수 있는 학원을 다녀야 하는 거 아닐까?"
어느 날 영어학원에 다녀온 아이가 말했다.
영어학원에 같이 다니는 5학년 언니도 꿈이 아이돌인데 댄스학원에 다니며 오디션을 계속 보고 있다고 했다.
언니에게 댄스학원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고 와서 엄마에게 야무지게 전달하며 나도 학원에 다니고 오디션을 봐야 꿈을 이룰 수 있지 않겠냐고 묻는 아이,
그러면서 엄마는 내 말에 반응을 빨리 해주는 편인데 내 꿈에 대한 반응이 없어서 혹시 꿈이 마음에 안 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 이어졌다.
아차 싶은 순간이었다. 그랬다.
말로는 아이에게 꿈을 응원한다고 했고, 뭐든 하고 싶은 걸 해야 즐거운 거라고 말해온 나였지만
왜 아이가 '꿈'이라고 말했던 걸 내 기준에서 여느 아이들이나 가질 수 있는 꿈으로 치부하고 지나쳐왔을까.
"엄마~ 댄스학원에서 오디션이 있대!"
바로 동네에 댄스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고상담예약 후 아이와 함께 학원을 찾았다. 그날 아이의 뒷모습을 잊지 못한다. 댄스학원에 가서 다른 아이들이 춤추는 장면을 창문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이는 싱글벙글했다.
그렇게 작년 10월 아이는 댄스학원에 등록했다.
영어학원 요일이 화, 목인데 댄스학원을 같은 화, 목요일로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영어학원은 재미있지만 숙제도 많고 단어시험도 봐야 해서 부담되는 요일인데 댄스학원과 같은 요일이면 화, 목요일이즐거워질 거 같다는 말을 더하며 언제나처럼 참 야무진 아이답다.
댄스학원을 다니고 4개월이 지났을 무렵 아이가 다니는 댄스학원에 소속사에서 내방해서 비공개로 진행되는 오디션이 공지되었다. 사실 난 학원 공지사항을 통해 이 오디션을 미리 알고 있었다.
아이가 엄마를 통해서보다 학원에서 직접 듣게 되는 것이 더 짜릿한 기분일 것 같아 말하지 않고 기다렸는데 댄스학원을 다녀온 들뜬 표정으로 아이가 말했다.
"엄마~ 댄스학원에서 오디션이 있대"
난 당연히 아이가 바로 신청해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아이의 이어지는 말은 이랬다.
"오디션이 있다니까 나 너무 떨리고 설레는데 신청할지 말지 고민이 돼. 왜냐면 나는 춤을 배운 지도 얼마 안 됐고 우리 학원에는 나보다 훨씬 춤을 잘 추는 전문반 언니들도 많고, 오디션 보는 나이도 11살부터라 내가 제일 어릴 거고 그래서 붙을 가능성이 적은걸 너무 잘 알겠어서 그래서 고민을 좀 해보고 싶어"
아이는 생각보다 꿈에 진지했고 또 그 과정이 너무 귀했다.
어떤 결정을 하던 아이의 결정을 응원해 주겠다고 말해주고 대답을 기다리던 어느 날
"엄마~ 나 결심했어! 오디션 신청해 줘요~ 떨어지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거니까 해보는 게 중요할 꺼같아!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아!" 며칠 동안을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던 아이는 이렇게 멋진 대답을 건네왔다.
다시 한번 이토록 '꿈'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쑥쑥 커갈 아이의 성장을 내가 막을 뻔했구나 하는 생각에 아찔하기도 했다.
드디어 첫 오디션!
마지막 엔딩포즈로 준비한 윙크까지 잊지 않고 했다며 후회가 없다는 아이~
그렇게 오디션을 신청한 아이는 오디션 곡을 고르는 데에도 신중했고,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며 골라달라고 하기도, 댄스학원 선생님한테 가서 나에게 어울리는 곡이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하며 준비를 이어갔다.
아이가 첫 오디션 곡으로 고른 곡은 '아이브의 애프터라이크'였다.
오디션날까지 집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을 이어가던 아이는 오디션 전날에는 의상까지 신중하게 고르는 모습으로 엄마미소를 짓게 했다.
드디어 오디션 날!
아이는 아침부터 떨리고 설렌다는 말을 반복하며 얼굴은 한창 상기되어 있었다.
"엄마 나 오디션 볼 때 마지막에 끝나고 윙크를 이렇게 할 건데 어때?"라며 엔딩포즈까지 준비한 아이
그렇게 오디션을 본 아이는 끝나고 너무나도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나 연습한 대로 잘한 거 같아서 뿌듯하고 기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서 떨어져도 후회 없을 꺼같아~ 왜냐면 오디션은 계속 있고 나 한번 해봐서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리고 마지막에 윙크하려고 했던 것도 잊지 않고 했어. 심사위원 눈을 봤는데 내가 춤출 때는 무표정한 눈이었는데 마지막에 윙크하니까 웃는 눈으로 바뀌었어!"
"엄마 근데 나 댄스학원 다닌 지 얼마나 됐지? 심사위원이 물어봤는데 내가 정확하게 몰라서 7개월 정도 된 거 같다고 말했는데 4개월밖에 안 된 거야? 어떡하지? 흐잉~"
아이가 꿈에 다가가는 과정이 이토록 아름다울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고등학생이 되도록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11살 아이의 당찬 도전이 그저 기특하기만 하다.
얼마 전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아이 친구엄마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요즘 중학생들이 가장 많이 가지는 꿈은 무엇인지를 묻자 친구 엄마가 말했다.
"꿈이 뭐든 있으면 다행인 거예요~ 꿈이 없다거나 모르겠다고 말하는 아이가 반이 넘거든요"
아이의 꿈은 바뀔 수 있다.
이젠 어떤 꿈을 꾸던 아이가 이루고자 하는 '꿈'을 나 또한 이루고자 하는 방향으로 안내해 줄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그림으로 예중시험을 합격해서 춤을 추는 반으로 바꿀 수도 있을까?"
엄마~ 나 예중을 가면 아이돌이 될 확률이 많다는데 예중은 어떻게 가는 건지 좀 알아봐 줄 수 있어?
며칠 전 아이가 말했다.
아이가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 바로 반응해주고 싶어 예중 입시를 알아보았고 몇 군데 정보를 알려주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가 그림을 잘 그리잖아~ 춤은 사실 아직 많이 잘 추지 못하니까 그림으로 예중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춤을 추는 반으로 바꿀 수도 있을까"
"엄마~ 큰일 났어! 미술학원 원장님한테 예중 가는 거 준비하고 싶다고 했더니 여기에서는 안되고 예중입시학원이 따로 있대~ 데생만 하루에 4시간 이상씩 해야 한다는데 어떡하지?"
"영어가 점점 어려워지긴 하는데 아이돌이 영어를 잘하면 그렇게 멋있어 보이더라고, 그래서 난 영어공부를 계속할 거야!"
아. 정말 아이의 신선한 발상에 빵 터질 수밖에. 그리고 스스로 꿈을 이뤄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다가가는 아이의 미래가 한없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