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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희 Apr 06. 2023

[책] 크레파스 (채영주)

글로 그려낸 한 편의 누아르


  김형중 평론가의 말을 빌려, 한편의 누아르 였다. 평소 익숙지 않은 미국 사회에 대한 적나라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데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건지는 몰라도 자꾸만 한인의 입장에 더욱 마음을 가까이 하여 소설을 읽게 됐다. 백인, 흑인 그리고 한인. 이 세 인종의 갈등과 대립이 주를 이루는 이 이야기는 뭐랄까 한 편으로 굉장히 불편했다. 20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이 소설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지금의 사회에서도 이어지고 있고 우린 이것을 알아야 하고 해소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고 누구하나 한 발 먼저 나서기엔 꺼려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렇기에 자꾸만 난 이 이야기가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야 했다. 실제 일어난 이야기는 아니지만, 실제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고 우리는 그걸 알아야 했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핍박받고 그 사이에서 이간질 당하고 결국 그 누구도 믿지 못해 서로를 잡아먹어야만 끝나는 이 비참한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계속해서 비참함을 이야기한다. 계속해서.


  영화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 지금의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불편하고 보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지만 마주해야 하는. 마음 한 켠이 계속해서 불편했지만 피할 수 없었다. 단지 내가 보고 싶지 않다는 이 감정과 불편함은 어쩌면 알아야 하지만 여차저차 눈을 가리고 있던 것들을 마주해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으니까. 난 이 불가피한 불편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피하고 싶지만 피해선 안되는 것들. 그런 것을 마주할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크레파스’도 그러했다. 크레파스로 칠해진 색이 의미하는 것을, 피하지 말고 바라봐야 한다.


  소설의 내용과 별개로, 책을 읽는 내내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했다. 마치 완성도 있는 콘티를 읽는 느낌이랄까. 글이 의미하는대로 장면이 그려졌고 사람들이 움직였다. 글에서 색감이 느껴졌고 그 분위기가 그림처럼 그려졌다. 채영주 작가가 글로 그려낸 이 이야기는 움직이고 있었다.




p. 101.

유진이 나가고 그녀는 한참 동안을 창가에 기대어 서 있었다. 커튼 틈으로 바깥 거리를 내다보았다. 유진의 모습이 차 속으로 사라지고 자동차가 어두운 골목을 돌아 사라지고, 그래서 거리에는 차가운 겨울만이 남겨질 때까지, 그리고 마침내는 유리창을 짚은 그녀의 손바닥마저 차갑게 얼어붙을 때까지.


p. 281.

구태여 먼 곳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으리라. 삶의 체적을 부풀리고 싶다는 욕망… 안타까웠던 점은, 혹은 다행스러웄던 점은 도시는 멀어도 삶은 결코 멀어질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분노는 늘 가까운 곳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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