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릴 적, 내게 무해했던 모든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최은영 작가의 문장은 사람을 아릿하게 한다. 언젠가 내가 느꼈던 슬픔, 아픔, 그리고 사랑, 우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게 무해한 사람’ 속 인물들은 대체로 내가 지나 온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자신만의 서사 속에서 사랑을 하고 헤어짐을 겪고 아픔을 맞이한다. 그때 우리가 겪었던 모든 감정은 우리의 마음을 모르는 어른들에 의해 그리 진지하지 않은 혹은 단지 어린 시절에 지나지 않는 어린애들의 이야기처럼 치부되곤 한다.
그래서일까, 나조차도 나의 감정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던 이유가. 지금은 내가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는 걸거야, 지금 내가 느끼는 건 나중되면 다 괜찮아질거야. 그렇게 치부해두고 쌓아둔 감정들이 지금의 나에게도 이어지고 있음을 왜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까. 그래서인지 ‘내게 무해한 사람’ 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감정에 더욱 아팠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알고 있었던 상처와 아픔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그때의 나에게 충분한 위로를 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고 그게 꼭 나 같아서.
그렇게 이 책을 읽는 내내 아린 마음으로 문장을 읽어냈다. 읽어내다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읽어내다가.
내게 무해한 사람. 나의 어릴 적, 내게 무해했던 모든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그여름
p. 13.
수이는 자신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오래 바라볼 수 있구나. 모든 표정을 거두고 이렇게 가만히 쳐다볼 수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경은 자신 또한 그런 식으로 수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나가는 밤
p.99.
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던 그때의 기다림을 윤희는 아프게 기억했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모래로 지은 집
p. 158.
그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펴볼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고백
p.208.
우리는 때때로 타인의 얼굴 앞에서 거스를 수 없는 슬픔을 느끼니까. 너의 이야기에 내가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너에게 또다른 수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
아치디에서
p.278.
마음에 없는 말을 예쁘게 포장해서 보여주는 식이 아니라 해가 빛나듯, 비가 내리듯 그저 그렇게 마음으로 내려오는 말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