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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 Aug 03. 2023

다이소 식물의 비밀

콩 심은 데 콩 나고 바질 심은 데 버섯 난다.


뜨거운 여름볕에 붉게 달궈진 방울이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온 방울이는 은봉이의 작은 주먹 안에서 송글거리는 땀방울과 함께 나뒹굴며 집으로 왔다. 방울이만큼이나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외치는 은봉의 목소리가 현관부터 다급하게 울려 퍼진다.



"엄마, 드디어 첫 방울이를 수확해 왔어요!"
학교수업을 마치자마자 숨 고를 새도 없이 달려왔는지 가쁜 호흡이 은봉이의 음성 사이사이에 묻어났다. 봉이의 얇은 머리칼 사이마다 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자  촉촉한 열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방울이는 은봉이가 학교에서 직접 키운 방울토마토다. 매일 가서 물을 주고, 애정으로 살피던 바로 그것.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마치 엄마가 자식자랑을 늘어놓듯 매일같이 자랑해 왔던 주인공이 바로 '방울이'다.





  
방울이는 시원한 물줄기에 몸을 맡긴 채 깨끗하게 먼지를 털어냈다. 비쩍 마른 초록 꼭지를 떼어내고  도마 위에 올리니 안정적인 모양새로 은봉이의 손길을 얌전히 기다렸다. 은봉이는 작은 과도를 들고 방울이를 4등분으로 잘랐다. 본인이 직접 키운 식물의 첫 수확을 가족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조심스레 칼날을 앞 뒤로 움직이는 은봉이를 보며 우리 가족이 다섯이 아니라 다행이 생각했다.



"음~ 엄마가 이제까지 살면서 먹어본 방울토마토 중에 가장 맛있다. 어쩜 이렇게 달콤한 맛이 나지?"

"그치 엄마? 진짜 맛있다."


입에 넣으면 사라질 크기였지만 온몸의 미각세포를 깨워 은봉이의 기대 어린 눈빛에 보답하려 애쓴다.

실제로 방울이는 마트에 파는 방울토마토보다 껍질이 좀 더 질긴 느낌이었지만, 설탕물을 주고 키웠나 싶을 정도로 신기하게 단 맛이 났다.
방울토마토를 썩 좋아하지 않는 은봉이도 흥분하며 4분의 1조각의 방울이를 와그작 씹는다.






며칠 뒤 다이소매장에서 식물 키우기 코너 앞에 걸음을 멈춘 건 은봉이 뿐만이 아니었다. 방울이 하나를 나눠 먹고 입맛을 제대로 다신 우리, 그리고 수확의 기쁨을 함께 느껴버린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씨앗재배키트에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식물 키우기에 'ㅅ'자도 모르는 인간들이었기에 어떤 식물을 골라야 할지 고민했지만, 결정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의 식물. 그 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결정적 요인은 어이없게도 화분의 색이었다. 그렇게 무지한 식물초보 티를 팍팍 냈다.  

은봉이의 방울토마토와 은봉이 동생 은복이의 바질, 엄마의 해바라기. 이렇게 3개의 화분을 집으로 데려왔다. 고작 2천 원짜리 재배키트에 화분, 배양토, 씨앗이 야무지게도 포장되어 있었고  놀라운 가격과 구성에 다시금 입이 떡 벌어졌. "쑥쑥 자라라"라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는 달리 씨앗을 직접 심어 보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씨앗재배키트였지만 '재배'라는 말은 '배제'했다는 말. 즉,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실패가 눈앞에 보여도 시작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씨앗 심은지 5일 차에 싹이 텄다.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매일 아침 화분들이 있는 베란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막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작고 귀여운 것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움이라니. 그 초록빛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가우면서 감사한 마음까지 든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컴컴한 암흑 속에서도 생명력을 피우기 위해 무던히 애썼을 작디작은 씨앗이 위대하다.





씨앗 심은지 13일 차.
비교적 큼직한 해바라기 씨앗 2개 중에 한 개의 씨앗에서만 발아를 했다. 본인의 자태를 태생부터 알고 존재감을 뿜어내듯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다섯 개의 씨앗을 심었던 은봉의 방울토마토는 다섯 개의 싹이 모두 발아했고, 우린 그 앞에서 기특하다는 듯 물개 박수를 쳤다.
작은 새싹이 입을 앙 다물고 씨앗을 물고 있는 것처럼 함께 흙 위로 피어오른 모습이 왠지 경이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문제는 은복이의 바질 화분이었다.
하필 막내 은복이의 바질만 며칠째 감감무소식이다. 방울토마토의 싹 하나를 쥐도 새도 모르게 옮겨 심어서라도 은복이의 실망 어린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은 엄마의 조바심이 매일같이 일렁이던 날이었다.






"엄마!! 설마 이게 바질은 아니겠죠?"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
바질 심은 곳에서도 당연히 바질 싹이 나야 하는 법인데 기다리던 바질의 싹은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고, 바질 대신 뜬금없이 나타난 것은 버섯이었다.


예상치 못한 그 녀석의 모습은 가히 압도적인 형태였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었지만 손바닥만 한 작은 화분에 찾아온 생명력이 신기해 눈을 떼지 못하던 마흔 살 인간과는 다르게 십 대의 두 자매는 까무러치며 당장 뽑으라고 성화다.

독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와 본인들이 심은 싹들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버섯이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이렇게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괜히 아쉬운 마음까지 든다.



그제야 자세히 살펴보니 방울토마토 화분에도 우산을 포개놓은 듯한 모양의 작은 버섯들이 줄줄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우산을 활짝 핀 모양을 보여줄 듯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흙 사이에서 쑥 뽑아져 나가는 버섯은 은봉이의 손에 쥔 거친 나무젓가락 사이에 끼어 꼼짝없이 퇴출당하는 신세다.
그렇게 초대받지 못한 손님의 방문은 가차 없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불청객인지도 모르고 5일에 한 번씩은 꾸준히 고개를 내미는 버섯의 생명력에 매번 놀란다. 습하고 축축한 흙 속에서 스스로 피어오르다가 다음 날 뜨거운 볕이 내리쬐면 고개를 숙이며 말라가기를 반복한다.

사실 구입해 온 씨앗재배키트 중 성장속도가 가장 빠르고 신기해서 아침마다 재촉하는 나의 발걸음을 베란다로 이끄는 것은 다름 아닌

'바질' 화분을 점령한 '버섯'이었다.

은봉이와 은복이의 관심이 조금은 사그라든 요즘이 적기다. 난 모른 척할 테니 잘 지내다 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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