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면서 마음속에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하루하루를 눈물겨운 나날들로 벅차하기도, 또 누군가는 못 본 척 외면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그 아픔을 덜어내고 견뎌내며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위로할까?'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거나, 오랜 친구를 만나 밀린 수다를 떤다. 소란스럽게 습습 거리며 매운 음식을 먹고, 목적지는 정하지 않은 채로 정처 없이 걷는다. 코믹영화를 보며 소리 내어 웃거나, 슬픈 영화 장면을 핑계로 눈물을 흘려보낸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향긋한 차를 마시거나, 좋아하는 안주에 술 한잔 기울인다. 탁 트인 풍경을 벗 삼아 드라이브를 하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책을 보며 마음을 쓰다듬기도 한다.
그런 찰나의 시간들로 잠시나마 그 힘듦을 내려두고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당신들은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알고 있나요?'라고 던져본다. 애석하게도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자의 질문이다.
친한 친구의 연락에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건 그 친구를 신뢰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친구가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큼 가깝지 않은 사이여서는 더더욱 아니다. 사실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었다. 그러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마음이 조금이라도 홀가분해질까? 그 과정에서 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지쳐가진 않을까? 나란 사람은 여러모로 후자에 속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건지 까마득했다. 어떻게 풀어낸다 한들 그 힘듦을 모두 표현할 길이 나에겐 도무지 없었다. 그렇게 친구의 연락에도 그저 그런 뻔한 말들로 서로의 안부를 나누고 애써 아무 일 없는척했다. 조만간 얼굴 한 번 보자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는 모습이 가식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그렇게 차곡히도 쌓여버린 '상처'들은 차마 뱉어내지도, 그렇다고 껴안지도 못한 채 조용히 아파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으며 본능에 따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 멈춰있는 시간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던 건지 아니면 무심히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 건지 모른다. 그렇게 내가 나에게 던져놓은 '무관심' 속에서 상처는 무던히도 자라났다.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책으로부터 위로받는 순간들이 많았다. 까마득한 나의 이야기를 말로 토해내는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책은 늘 모든 걸 알고 조용히 위로를 건넸다. 작고도 큰 세계 안에서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졌고 그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글들은 마음속 엉킨 실을 조금씩 풀어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온통 우주의 검은빛으로 물든 듯 한참 동안을 쓰지도 읽지도 못했다. 억지로 읽어보는 책 속의 활자들은 미처 다다르지 못한 채 제각기 흩어졌고, 꽉 막힌 내 안의 말과 글은 흐르지 못한 채 고여만 갔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 하나씩은 가지고 온다는데, 그 무게에 짓눌린 채 웅크려있는 나약한 내 안의 존재와 마주하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위로는 생각지 못한 곳으로부터 나를 찾아왔다.
"당신의 글을 기다리고 있어요." 나의 글을 기다린다던 그는 이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꼭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물론 빼꼼 고개만 내밀고 사라져 버린 나의 글이 대단해서가 아니라는 건 잘 안다. 글을 쓰는 우리가 서로 소통하는 순간이 다시 오기를 바란다는 그 마음.
나 역시 그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나를 보고 싶다는 말보다 더 깊고 진하게 와닿았던 그 말이 이렇게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다시, 읽는다. 우두커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어떤 것도 되지 못한 채 멈춰있던 '책'은 나와 함께 차분히 흩날리기 시작했다.
다시, 쓴다. 출발선까지 오는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멈춘 뒤 다시 일어서는 일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내 안에 방치해 둔 채로 쌓여서 제멋대로 부풀어 오르고 딱딱해져 버린 상처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부딪힌 그 아픔의 덩어리들을 천천히 조각내고 깨트려 비로소 마주한다.
'글의 힘'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글은 글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글에는 희로애락이 있고 무엇보다 '사람'이 있다. 줄곧 '글의 힘'을 믿어온 나는 그것이 곧 '사람의 힘'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다듬고 다듬어 건네어볼까. 행여 그러다 너무 늦지는 않을까. 지금 느끼는 감동 그대로의 날것을 건네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