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퇴사할래애애애애
*퇴사의 정당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려고 하는 목적으로 쓴 글이라서 매우 편하게 작성했습니다.. 혹여나 반말이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흐흐
2019년 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나는 취업에 성공했다. 20년도부터 고졸 취업이 줄어들었기에, 막차 탑승에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근데 알고 보니 목적지가 잘못됐다. 그것도 아주, 매우, 단단히! 잘못됐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일거리와 밑도 끝도 없는 진상 민원들, 화장실도 제 때 가지 못해 방광염이 생겼고 업무시간 중 휴대폰을 잠깐 사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벅찬 하루하루를 감당해 냈다.
취업을 했다는 기쁨은 아주 잠시였고, 일을 시작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나는 온갖 병이 생겼다.
나는 평상시에 말이 좀 많은 편이었다. 음, 그러니까 자타공인 mbti 대문자 E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 불특정 다수의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요청사항을 처리해주다 보니, 근무시간에 말을 너무, 너무, 너무 많이 하게 됐다. 입 주변 근육이 발달되면서 근육통이 온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퇴근 후에 입이 쉴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 발령이 난 곳이 본가에서 대중교통으로 왕복 4시간 거리여서, 도저히 본가에서 다닐 수 없었다. 발령을 받은 직후 전화로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회사에서 도보 3분 거리 월셋집을 계약해 주셨다. 발령 바로 다음날도 출근해야 하니 집 계약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겠지만, 진짜 하루 만에 구해주실 줄은 몰랐다. 놀랍고 감사했다.
그래서 내 첫 자취방이자 끝내주는 마라탕 맛집을 알게 해 준 작고 소중한 원룸은 늘 적막만 가득했다. 해뜨기 전 출근해서 해 다 지고 퇴근했고, 늘 혼자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해가 떴을 낮에도 햇빛이 잘 들어오는 편은 아니었다.)
주말엔 더더욱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소설을 보다가 잠들고 집안일을 좀 하다가 유튜브를 보는 둥 잉여스러운 생활을 보냈고, 평일 낮에는 정신없이 일하고 저녁에는 진이 다 빠져 널브러져서 소설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회사 근처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본가에 가는 것도 사실 교통편이 하도 좋지 않아 자주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은 참 나를 많이 믿으셨던 듯하다. 한 달에 한 번 본가에 갈까 말까 한 딸내미에게 별말 없이 간간히 안부전화가 올뿐이었으니. (불효녀라 욕하실 분들께, 카톡은 자주 했다!)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은 아니어서 그럭저럭 그냥 시간을 보냈지만, 나 스스로가 변해가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사람을 만나는 게 즐거웠던 내가 이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어지다 못해 혐오(좀 과격한 단어긴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랬다)스러웠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입을 여는 것조차 싫었고, 주변에서 제발 말을 걸지 말아 줬으면 좋겠었다. 망가져가고 있던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잠이 부족하거나 조금이라도 피로할 경우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이 정해져 있었다. 바로 구내염이 나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에 대한 이야기의 연장선으로 수면부족이 생긴 이유를 이야기해 보자면, ‘다음날의 출근이 두려워져서’가 가장 컸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나를 스트레스받게 만들지, 또 어떤 사고가 터질지, 어떤 진상이 찾아와 또 힘들게 할지 걱정스러웠다. 내 오후 저녁 시간이 소중해지기도 했고… 매일 출근길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저 멀리 오는 차가 나를 치면 일주일 정도는 출근 안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뭐 어쨌든, 이 구내염이 나면 일상생활이 매우 괴로워진다. 위치와 개수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밥을 먹는 것도 고통이고, 말을 하는 것도 고통이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아플 때도 많다. 또 나는 약을 발라도 약효가 잘 듣지 않아서 그냥 가만히 나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그 기간 동안 고통을 감수하며 말이다.
구내염은 약과다. 일을 하면서 전신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척추가 틀어져 갈비뼈가 한쪽이 더 튀어나왔고 한쪽은 움푹 파였다. 어깨도 한쪽이 더 높아졌고, 어깨 길이도 한쪽이 더 짧아졌다.
회사 근처에는 혼자 점심을 먹을 만한 가게도 매우 적었고, 5분에서 10분 정도 걸어가야 상가거리가 있었다. 또 점심시간을 1시간을 다 쓰는 것도 눈치가 보일 정도로 일이 많아서, 보통 40분 이내로 들어와야 했다. 자연스레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게 됐고 바로 옆에 새로 생긴 편의점을 애용하게 되었다.
그러니 내 위가 나빠진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원래도 소화기관 중 장은 튼튼하고 위는 연약한 편이긴 했지만, 스트레스성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살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말 순간적으로 위가 확 쓰린 그 느낌, 다들 아실 거라고 믿는다. 그럴 땐 그냥 화장실에 달려가서 토해버리고 싶고, 온몸에서 열을 뿜어내며(이게 느껴진다 놀랍게도) 진짜 화를 이겨내지 못해 전신이 뻣뻣하게 굳고, 결국은 깊은 한숨이 푹 나온다.
더 버틴다고 해서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고, 나는 아직 어렸고, 부모님도 내가 본가에 내려갔을 때 친구들을 만나고 술을 마신 뒤 들어와 울며불며 한탄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퇴사하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내가 왜, 뭘 위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