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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거북 Aug 23. 2023

대전에 갔다왔슈(1)

일상

지난 토요일, 대전에 갔다 왔다. 영화 보고 빵 사러 갔다. 대전에 새로 생긴 오노마호텔에 메가박스가 있는데, 거기 돌비시네마관이 코엑스보다 더 크다고 해서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다. 사실 이번 여행의 시작은 1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성온천호텔이 문을 닫는다고 해서 그 전에 기념으로 가보자고 한 것인데, 늘 그렇듯 함께 가기로 한 4명의 일정을 맞추고 맞추다 보니, 한 명이 못 가게 되었고, 못 가는 사람이 없는 날짜를 맞추다 보니 유성온천호텔이 문을 닫을 기세라, 한 명은 낙오된 채로 가게 되었다. 대전에 살고 있는 한 명을 제외한 세 명이 유성온천호텔에 묵을 예정이었기에, 1박 2일의 일정은 한 명의 낙오로 당일치기로 바뀌었다. 무슨 맥락이냐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고, 그냥 일이 그렇게 되었다. 늘 그렇듯.


아침 9시에 센트럴시티에서 친구를 만나 9시 15분 우등고속을 타고 대전 유성터미널로 갔다. 대전까지는 1시간 50분이 걸린다고 했다. 무엇을 할까 고심 끝에, 지난밤 무서워서 못 봤던 악귀 3화를 다운받아 갔다. 차에 타자마자,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악귀를 틀었다. 그리고 시청 15분 만에 잠이 들었다. 중간에 코를 골 것 같아 머리 방향을 바꾸어가며 야무지게 자다가 눈을 뜬 시간은 10시 57분, 버스는 정각 11시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잠에서 깨지 못한 채로 친구에게 이끌려 버스에서 내려 유성터미널의 화장실에 갔다가 밖으로 나오니 대전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두고 친구가 대전 사람에게 전화를 거니, 바로 앞이라는 지방 사람들 특유의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 후, 대전 사람이 타고 온 건 새로 뽑은 하얀색 SUV. 그러고 보니 기억 저편에서 대전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차를 샀다. 6개월 뒤에 나온다. 그리고 또 저편에서 차가 드디어 나왔다는 얘기를 했던 것이 떠오른다. 손을 붕붕 흔들며 차 문을 열자 새 차 냄새. 아. 오늘 대전에는 이 차를 구경하러 온 것이구나. 좋은 목적이 새로 생겼다.


차를 타니 11시 20분, 광택이 나는 매끈한 가죽을 만지며 우리 이제 뭐 하냐고 대전 사람에게 물었다. 친구도 거들었다. 우리는 대전 사람인 너만 믿고 아무 계획도 안 짜왔다고. 그러자 대전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한다며, 숯골원냉면이냐, 온천 칼국수냐 고르라고 했다. 실은 나는 냉면을 먹고 싶었는데, 마침 내가 온천 칼국수가 참 맛있었다는 말을 한 터라 그냥 가만히 있었고, 그렇게 온천 칼국수로 갔다. 주차장은 만차, 주차장 주변도 만차라 주변에 주차하고 가니 벌써 대기 26번. 11시부터 영업을 하는 식당인데 토요일에도 사람들은 부지런했다. 장마철 가운데 드물게 햇볕이 쨍쨍한 날, 동죽 조개가 잔뜩 들어간 뜨끈한 칼국수에 매콤한 쭈꾸미를 먹으려고 지글거리는 아스팔트 주차장에서 10여분을 기다렸다. 11시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다 먹고 나온 자리가 말끔하게 치워지고, 우리가 들어갔다. 쭈꾸미 2인분에 공깃밥 2개, 칼국수 1인분을 시켰다. 김치, 단무지, 공깃밥, 앞접시가 나왔다. 김치가 여전히 정신이 번쩍 들게 맵다. 손톱만큼 떼어먹고 물을 마신다. 마침내 쭈꾸미가 나왔다. 각자 대접에 공깃밥 2개를 3등분 해서 덜고, 콩나물과 섞은 쭈꾸미를 퍼와서 비볐다. 사실 나는 찍먹파, 다 따로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건 조금씩 비벼서 먹었다. 맵다. 몹시 맵다. 칼국수가 나오지 않는다. 어제밤 마셨던 화요의 알코올이 살아나기 전에 동죽 국물을 투입 시켜줘야 하는데, 오지 않는다. 남의 테이블에 세숫대야만큼 큰 그릇에 들어있는 칼국수를 흘낏흘낏 쳐다본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매운 쭈꾸미와 김치를 먹고 있는데, 드디어 칼국수가 나왔다. 민폐가 되지 않을 만큼의 국물을 내 대접에 떠서 마시니, 아. 알코올이 가시는구나. 역시 동죽 조개가 참 맛있다. 그 뒤론 말없이 먹기만 하는 시간. 그런데 갑자기 아주 티끌만큼 남은 칼국수의 면을 친구가 건져서 쭈꾸미에 넣는다. 옆 테이블이 그렇게 먹는데 맛있어 보인다고 소곤거리며, 부지런히 섞기 시작한다. 먹어보라기에 먹어봤더니, 역시 맛있다. 아. 한 번 더 오면 더 야무지게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움을 남긴 채 다 먹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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