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무계획 제주여행(13) 혼자 만들어 먹은 떡국(230121)
제대로 정신 차려 눈을 떠보니 10시였다. 오늘이 지나면 날씨가 좋지 않아 여행하기 어려우니 오늘은 나갔어도 좋았을 듯 싶었다. 그렇지만 오늘부터는 명절 연휴의 첫날인데 분명 어딜가나 사람들에 치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나가지 않는 걸로 하고 오늘은 어떻게 보내볼까 고민했다.
오전 10시에 깼어도 아무 생각 없다가 12시가 넘어가니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떡볶이, 특히 엽떡 덕후인 나로선 엽떡 쿨타임이 찬지 꽤 오래된 걸 생각했다. 그래서 엽떡을 주문했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거의 거절당했다(배달비만 7500원을 내고 엽떡을 먹고싶진 않았다). 결국 아점(실질적으론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가 떡국을 끓여먹기로 했다.
한 번도 떡국을 끓여본 적이 없다. 원체 요리에 소질이 없기도 하거니와 일단 엄마표 떡만둣국이 너무 맛있어서 굳이 해먹을 필요성을 느낀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 설연휴는 난생 처음으로 혼자 맞는 명절. 그래도 분위기는 내보고 싶어서 떡국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래도 어렵진 않았다. 미리 사둔 사골곰탕을 냄비에 데우고 떡을 씻어서 넣었다. 떡을 불려야 한다고도 했지만 뭐 그냥 대충 하면 되지 않나 싶어서 떡을 넣어서 끓였다. 그러다 곰탕이 넘치길래 놀라서 계란을 투하시켰다는 게 문제지만(...) 나름 그럴싸한 떡국이 되었다. 물론 사골곰탕에 계란 푼 맛이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알쓸인잡 마지막 회를 보면서 떡국을 먹었다. 괴물같은 인간이라는 주제에 메리 셸리를 소개해준 김영하 작가님의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워낙 좋아하는 작품인 '프랑켄슈타인'을 이렇게나 멋지게 소개해주셔서 해당 작품의 팬으로서 뿌듯한 마음이 컸다. 그러다가 바느질을 하며(롱패딩 지퍼 부분이 튿어져있었다. 반짇고리를 빌려주신 숙소 사장님, 감사해요!) 4차원에 관심을 보였던 시인 이상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알쓸인잡은 이번 주가 마지막이긴 하지만 다음 주엔 미처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추가로 나눈다고 하니 다음 주도 기대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떡국을 먹고 논문을 들여다봤다. 아무래도 연말엔 제주에 사람이 많을테니 이번 연휴엔 집콕을 하면서 논문도 쓰고 편하게 쉬기로 했다. 먹을 것도 넉넉하니 냉장고 파먹기를 해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제주여행이라기 보단 제주살이가 더 맞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기분이 내키면 바다를 보러가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내가 할 일을 해야 하는 시간들.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하다. 모두 메리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