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잘 놀기 위해 전 재산을 써 버렸다.
#1 잘 놀기 위해 집 구하기
미쳤다.
아니, 나는 미치신 분이다.
놈은 그래도 어감이 좋지 않으니 기왕이면 분이라 하겠다. 제대로 놀기 위해 수백만 원도 아니고, 수천만 원도 아니고 억 소리 돈을 썼으니.....
내가 여유가 있어 플랙스를 했다면 자랑이라도 하겠다만, 잔고는 바닥나고 나도 같이 방바닥을 기어 다닐 판이다.
잘 놀려고 전 재산을 써버렸다.
나는 왜 이런 지름을 했을까?
누가 들으면 질릴 일을 왜 했는가?
지금부터 사건을 저지른 동기와 과정을 적으려 한다. 글을 읽고 마지막에, 당신이 내 미침에 대해 응원할지, 비난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며 어떤 말이라도 상관없다. 미침의 제1원칙은 신경 쓰지 않고 지른다였으니까.
사건의 발단을 말하려면 가벼운 일상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당신도 알듯 넓은 강물도 아담한 옹달샘에서 시작되니까
"여보세요. 혹시 독서모임을 하려는데 8명이 가능한 좌석이 있을까요?"
나와 분홍은 퉁퉁 부은 다리로 차마 가지 못한 카페까지 검색해서 전화했다. 유독 매서운 추위가 예보된 날이라 그녀는 검은색 바탕에 회색 줄이 있는 롱패딩을 묻히듯 입고 나왔지만 겨울 칼바람에는 역부족이다. 많이 걸어서 열이 오르다 멈췄다. 땀이 증발되면서 체온을 앗아가 어떤 복장도 속수무책이다
"효롱님 안 되겠어요. 해운대에 카페를 찾는 건 포기해야겠어요. 다시 스터디카페를 검색해 봅시다."
"분홍님 8명까지 들어갈만한 곳은 스터디룸도 잘 없었잖아요. 있어도 예약이 이미 되어있고, 아니면 외곽으로 멀리 나가겠는데요."
여기서 벗어남은 정체성이 흔들리는 일이다. 우리 모임은 동네에 쉽게 갈 수 있는 동네모임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해운대 독서 살롱이라는 명칭을 봐도 첫 번째 단어가 해운대다. 그만큼 여기를 벗어난다면 이미 해운대 독서 살롱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지쳐 야외 카페 벤치에 잠시 앉았다가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몇 년 동안 지겹게 반복된 뜨내기 생활을 끝내고 싶다. 이렇게 고통받으며 모임을 계속할 수는 없다.
마지막까지 와서 우리는 드디어 최후의 방법까지 떠올렸다.
차마 너무 어렵고, 복잡하고, 짊어질 무게가 많아져 얘기하지 않았던 말이다.
서로 동시에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분홍님 우리 그냥 독서살롱 아지트 구할까요?"
"효롱님 우리 그냥 독서살롱 아지트 구할까요?"
동시에 웃고 있으니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우리를 보며 힐끔 거린다. 추운 겨울에 뜨겁게 한바탕 웃었다. 그 웃음은 우리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생각에 대한 진실한 감정의 표출이다.
입 밖을 나온 것은 순간이지만 이 생각은 어설프게 설익은 것이 아니고, 익을 대로 익어 무거워져 땅에 떨어지기 직전의 사과와 같다.
고백과 비슷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는 순간 감정은 따라오고 확정되듯이, 내면에 가득 찬 생각은 세상에 나온 순간 멈출 수 없다.
적당한 공간을 구하려고 마음먹었으니 다음 고민은 몇 평의 공간이 적당 한가인데, 크면 클수록 좋겠지만, 크면 클수록 아프다. 왜냐하면 비싸서 못 들어가니 마음이 슬퍼지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한번 돌아다녀 봅시다."
분홍은 마음먹으면 해내고 마는 성격이며, 대충 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아마 내일부터는 고된 일정이 시작이다. 일단은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며 지하철에서 덩치 큰 아저씨 둘 사이에 끼어 앉아 여기 있는 사람보다 많은 생각들이 빽빽하게 머리를 채웠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가?이다
다시 원점에서 생각해 보자. 독서모임을 하는 것은 행복을 위해서다. 행복이라는 말은 사실 포괄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라서 딱 정의하기 어렵지만 독서모임을 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면.... 음....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지나가는 반대편 창문에 비치는 빛들을 보며 떠올려봤다.
검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속도감을 느끼며
오른손으로 까칠해진 턱을 만졌다.
확실히 모임을 하기 전보다 행복감이 양적으로는 다소 많아졌을 뿐이지만 질적으로 크게 농밀해졌다.
책을 읽으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화되고, 비생산적인 시간이 줄어들어 생산적인 시간이 늘어나고, 사람들을 만나니 다양한 경험을 들어 나를 돌아볼 수 있고...... 등등등
이런 이야기를 지금 다 하기는 싫다.
사실이긴 하나 너무 세세하고 많아 큰 한방을 주는 효과들은 아니다.
독서 모임을 해서 얻은 위와 같은 많은 이유들을 착즙기에 넣어 짜내 한 문장을 만들어내고 싶다.
지금까지 보낸 시간에서 기억을 꺼내 압축해 본다....... 드드드드득......
통
.
.
.
문장이 나왔다.
"재미있어서."
맞다. 다 필요 없다. 재미있어서 오래 한 것이고, 아마 그건 사람의 힘일 것이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다 같이 먹으면 즐겁고, 게임을 해도 같이 하면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같은 시간을 보내도 질적으로 다른 무엇인가가 된다.
사실 행복과 재미는 다른 영역이다.
주관적인 개념 정의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재미는 행복 안에 있는 작은 개념이지만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 특히
이런 모임은 재미라는 행복의 요소를 중점으로
생각해도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면 재미를 위해 우리가 하는 것은 일종의 "놀이"이며, 거창하게 책을 내세우지만 잘 놀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우리 모임 사람들이 즐기는 놀이는 다른 놀이와 차이점이 있다.
생산성을 동반한 놀이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임 사람들은 모두 그런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일 것이다. 술과 대화만이 있는 만남보다는 책을 동반한 이야기라는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해운대 독서살롱 모임이 끝나면
분홍은 내게 이렇게 묻곤 했다.
"오늘 오신 회원님들은 즐거웠을까요?"
그녀도 느끼고 있던 것일까
나는 "놀이"에 대해 진지 해졌고 집에 들어와서도 오랫동안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행복은 즐거운 문으로 걸어 들어와,
신나게 손잡고 노는 것일까?
해운대 독서살롱 1부가 마무리되고
2부의 이야기입니다.
1부는 가을까지 이야기였고, 이제 겨울인 2부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현재와 시점이 가까워지니
어느 카페에 약속을 해놓고 바로 문 앞에 와 있는 설레는 기분입니다. 따뜻한 관심 부탁드립니다
해운대 독서살롱 1부 브런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