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2404 선구안이 살아있는 타자가 되고 싶어서

04. 나는 스트라이크라는 확신이 들 때, 있는 힘껏 세게 스윙할 거야.

by 마차

야구의 룰도 모르는 내가 남자친구의 권유와 설득으로

야구에 빠진지 벌써 1년 정도 되었어.

남자친구가 기아 팬이라 나도 자연스레 기아 팬이 되었지.

출신지가 그쪽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 2024년도 시즌이 시작되고

평일의 대부분을 아주 흥미롭게 보내고 있는데..

금요일인 어제도 어김없이 기아 vs. SSG 경기를 보고 있었어.

어느 타자가 나와서 자세를 잡고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단하며

타격준비를 하고 있는 그때 들려온 해설위원의 한 마디가

나의 마음에 진하게 와 닿았지 뭐야..


“좋은 타자는..

잘 치는 거전에, 볼을 잘 볼 줄 아는 선수입니다.”


타자의 관점에서 야구의 룰을 간단히 말하자면..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자세를 잡고 투수의 공을 치려할 때

들어오는 공이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면 ‘스트라이크’이고,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공은 ‘볼’인데,

타자입장에서 스트라이크는 2번까지 가능하고,

투수입장에서 볼은 세 번까지 가능 해.

스크라이크가 세 번이 되는 순간, 아웃이 되고,

볼이 네 번이 되는 순간, 볼넷이 되어 타자가 1루로 나가게 되는 거지.


이때, 타자는 투수가 던진 공을 보는데 0.15초, 타자가 그 공을 쳐야할 지 말지를 결정하고 스윙하는데 0.25초 걸린다고 하더라.. 결국 0.4초만에 투수가 던진공을 보고 스윙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거지. 즉, 짧은 시간 안에 이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이것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선구안’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해설위원이 했던 말의 뜻은?

‘선구안이 좋아야 좋은 타자의 자격을 갖출 수 있다’는 거였어.


해설위원이 했던 말을 곱씹어보며 들었던 생각은..

‘그러네.. 스트라이크로 들어오는 공을 잘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내가 치지 말아야 할 공을 걸러낼 수 있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영역이구나..’라는 생각이었어.

.

.


나.. 지겹도록 이 글 속에 많이 썼잖아.

내가 간호학과 3학년 1학까지 다니고 휴학을 하면서

가족들의 거센 반응들과 다시 복학을 하도록 하기위한

설득에 대해서 말이야.


최근 부산 여행 때도.. 마찬가지였어.

엄마, 아빠, 오빠와 나는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3:1로 토론을 하는 느낌이었어. 아니, 토론도 아니지..

나는 그저 묵묵히 듣거나..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생각해 볼게요”라는 말을 할 뿐이었으니 말이야.

나를 제외한 세 명 중,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가족 구성원이 있었으면.. 난 이렇게까지 부담스러워 하진 않았을 거야.


그러나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고,

그들의 의견만 피력하고 있는 것을 한 가운데에서 바라보니..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보단 당하는 느낌이 들더라.

내가 한가운데에 누워있고, 내 주위에 있는 세 명이

나를 힘차게 발로 차는 느낌이었어.

그 한가운데에 있었던 나는,

‘아.. 진짜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냥 1년 반만 두 눈 감고 학교 다닐까’라는 생각도 불쑥 들었지만,

그러기는 정말 싫더라고.

현재든 미래든 내가 나에게 실망하는, 실망하게 될 선택이라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졌고,

지금 나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난 독립적인 인생을 꿈꾸긴 어렵겠구나 싶었어.


다소 극단적이고 미성숙하지만,

나를 향해 내가 싫어하는 선택지와 그럴듯한 근거들을 보여주는

엄마, 아빠, 오빠에게.. 확 나 죽어버리겠다고. 제발 그냥 놔두라고.

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를.. 겨우 눌렀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을 꺼내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러나 내 마음속에선 이미 그 말을 꺼낸 지 오래야.

내 삶을 바꾸려드는 건, 내 목숨과도 같은 일이라고

나 또한 어필하고 싶었으니까..


어쨌든 난..

이번에도 어김없이 같은 태도의 가족들을 만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어.

지금 나에게 있어 가족들이란..

너무 사랑하지만 너무 멀어지고 싶은 존재이고

너무 멀어지고 싶지만 너무 가까워지고 싶은 존재여서

고민이 참 많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생각은 같아.

계속 서울에 있을 거야.

계속 하던 일 할 거야.

계속 계획했던 일 진행시킬 거야.

이 문장을 쓰면서도 왜 난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걸까.

서울에 있는 게 뭐 어때서.

하던 일 하는 게 뭐 어때서.

계획했던 일 진행시키는 게 뭐 어때서.

나는 그 누구보다 큰 죄를 안고 있는 사람처럼 살고 있을까.

죄가 있다면, 내 삶을 잘 살고 싶어 하는 죄밖에 없는데..


글을 쓰며 내가 몰랐던 나의 마음을 발견했어.

그 죄책감, 불안함, 두려움들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느낄 이유나 잘못도 없는 상황인데

그 감정들을 내가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글을 쓰며 발견한 또 다른 것은..

타자가 칠 공과 치지 말아야 할 공을 판단해야 하는 것처럼

나 또한 칠 공과 치지 말아야 할 공을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


투수가 던진 그 공이

나의 삶에 딱 잘 맞을 것 같은 공이라면

‘쳐야겠다’는 판단을,

나의 삶과는 잘 맞지 않을 것 같은 공이라면

‘치지 말아야겠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 ‘선구안’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지.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매 순간 속에서..

이번에 나는,

나의 삶에 딱 잘 맞을 것 같은 공을

‘쳐야겠다’라고 판단했고,

나를 제외한 가족들의 의견은, 신중히 생각해봤지만

투수가 볼이라 판단하여 스윙을 참아내는 것처럼,

결국 나는 ‘치지 말아야겠다’라는 판단을 했어.

사실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의 선구안이 아직은 많이 부족해 내린 결정일 수 있지만..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난, 이 공을 참아내고

내가 확신을 가지게 되는 그 공을 있는 힘껏 세게 치고 싶어.

.

.


이번 4월, 그리고 이제 맞이하는 5월

나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무슨 공을 쳐야했으며,

무슨 공을 바라만 보아야 했을까?


여전히 모르겠어.


여전히 모르겠는, 이 감정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깨닫는 건 아닐까싶은 마음으로,

이번 달의 내 마음을 보낼게.

작가의 이전글ver.2404 선구안이 살아있는 타자가 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