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운 좋게도 살면서 신변의 위험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굳이 꼽자면 한겨울 운전 중에 살얼음 도로를 지나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아 차가 휙 돌아버렸던 순간 정도? 그러다가 얼마 전 미국에서 극도로 위험한 순간을 경험하게 됐다.
5월 말. 봄이 끝나고 여름으로 가는 길목. 기온이 크게 올라 드디어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가기로 했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뉴욕주)과 캐나다(온타리오) 국경에 걸쳐있다. 어디서 봐도 장관이지만 캐나다 쪽에서 보는 풍경이 더 멋지다고 해서 미국 뉴욕주 버팔로 공항에 내려 공항에 대기 중인 셔틀택시를 타고 캐나다로 넘어왔다.
폭포는 과연 어마어마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물줄기와 바람 한 점 없는데도 휘몰아치는 거센 물살을 보고 있자니, 진부한 표현이지만 대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느낄 수 있었다. 날씨마저 화창해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사건은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 새벽에 벌어졌다. 빠듯한 주머니 사정상 몇 달러라도 아껴보겠다고 가격이 싼 새벽 6시30분 출발 비행기를 예약한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미국에 온 뒤로 몇 번이나 새벽 출발 비행기를 이용했었고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필 예정보다 30분 이상 늦잠을 자버린 나는 허둥지둥 짐을 싸서 캐나다 호텔에서 무사히 체크아웃을 마쳤다. 그리고 우버를 불렀다. 원래는 공항에서 이용했던 셔틀택시를 예약하려고 했지만, 전날 살펴보니 우버가 훨씬 쌌다. 캐나다에도 미국과 똑같은 회사가 운영하는 우버가 있는데, 굳이 비싼 공항 택시를 이용할 이유가 없었다.
새벽 4시. 우버는 5분도 안 돼 호텔 앞으로 왔고 나는 차로 약 30~40분 거리의 버팔로 공항으로 가달라고 했다. 그러자 인도계의 우버 기사가 갑자기 자신은 국경을 넘을 수 없다고 했다. (승차거부를 방지하기 위해 기사가 출발할 땐 도착지가 안 보이게 돼 있는 모양이었다)
분명 캐나다에서 우버를 타고 미국 국경을 넘었다는 지인의 말을 들었건만, 기사는 자신은 여권이 없고 국경을 넘으려면 집에 가서 여권을 가져와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결국 차는 가다가 섰고, 나는 이미 결제된 요금을 어떻게 취소할지 몰라 당황하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앱(app)에서 경로취소 버튼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버린 시간만 족히 15분은 됐을 거다. 결국 목적지를 변경한 뒤 기사는 캐나다와 미국 국경에 나를 떨군 뒤 떠났다.
국경엔 ‘레인보우 브릿지’라는 미국과 캐나다를 잇는 다리가 있는데, 먼저 캐나다 검문소에 현금으로 통행세 1달러를 내고(오직 현금만 받는다), 짐을 드르륵드르륵 끌며 빠른 걸음으로 미국 검문소로 향했다. 마음이 급했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걸어서 다리를 건너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다. 24시간 운영하는 미국 검문소에서 필요한 서류를 검사하고 ‘캐나다엔 뭐 하러 갔었니’ 등 간단한 인터뷰를 마친 뒤 출구로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중요한 관문들을 잘 통과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항까지 가기 위해 다시 우버를 불렀다. 그런데 차가 없었다. 가장 저렴한 차량부터 가장 비싼 것까지 모든 옵션을 다 선택해도 차가 잡히지 않았다. 리프트(lyft)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대도시에선 한 밤중에도 길어야 15분 정도 기다리면 잡히던 차가 단 한 대도 잡히지 않았다. 실제로 새벽의 국경 주위는 희미한 가로등 한 두 개만 켜져 있을 뿐 쥐죽은 듯 고요하고 어둑했다. 비행기 탑승 시간은 다가오고 난 정말로 걱정되고 애가 타기 시작했다. 일반 택시는커녕 굴러다니는 차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새벽 5시. 공항까지 30분은 걸리니 이제는 정말 출발하지 않으면 비행기를 놓치게 생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놓치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땐 ‘어떻게 해서든 비행기를 타야한다’는 생각이 먼저였고, 무슨 용기가 났는지 어떤 차라도 눈에 띄면 잡아보자는 마음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워낙 운행 중인 차량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 차 한 대가 캐나다 쪽 국경에서 나왔다. 나는 세차게 손을 흔들며 ‘익스큐즈미!!’를 외쳤다. 차량 앞에는 남성과 여성이 타고 있었는데 나를 봤지만 그대로 지나쳐 지나가버렸다. 절망적이었다.
잠시 적막 속에 몇 분을 더 기다리자 또 한 대의 SUV 차량이 보였다. 이번에도 짐을 끌고 차량에 다가가 손을 흔들고 소리를 쳤더니 운전석 창문이 내려가고 차가 잠시 멈췄다. 젊은 흑인이었다. 내가 사정을 설명하니 그는 “내가 가는 방향과 다르다. 다른 차를 기다려봐라”며 떠났다. 순간 또 다시 희망이 사라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 차가 다시 후진하더니 멈춰서는 거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가가니 그는 타라고 했다.
‘세상에!!’ 너무나 기뻤다. 하늘에서 동아줄이라도 내려온 듯한 기분이었다. 이대로 빨리 달리면 가까스로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흑인 남성 운전자는 옆좌석에 앉은 내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이름이 뭐냐, 어디 사느냐, 여긴 왜 왔냐, 혼자 온 거냐 등. 나는 기쁜 마음에 사실대로 술술 얘기했다.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고 가길래 괜찮겠냐고 물어봤더니 자신은 여기 일대를 잘 안다고 했다.
새벽이라 차도 없는데 그는 영 속도를 내지 않았다. 비행기 시간이 촉박해 마음 같아선 빨리 가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대신 거듭 고맙다고 했다. 핸드폰 구글맵을 켜보니 공항으로 바로 진입하는 큰 도로가 있었는데 웬일인지 주변을 좀 도는 느낌이 났다.
초조한 상태로 계속 어두운 새벽길을 달리는데 그는 갑자기 나에게 공항까지 데려다주면 어떤 보상을 해주겠냐고 물었다. 나는 기꺼이 국경부터 공항까지 약 45달러인 우버요금의 두배, 세배의 돈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비아냥거리는 투로 “그 정도로는 절대 안 된다”라고 했다. 살짝 당황해서 그럼 어느 정도면 되겠느냐고 묻고나서 나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주 저급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표현으로 자신에게 성행위를 해 주거나, 500달러를 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결코 너를 공항에 데려다주지 않을 것이고, 어디로 데려갈지 장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해뜨기 전 도로는 어두웠고 도움을 요청할 만큼 지나다니는 차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 남자의 차에 내 짐과 함께 갇힌 상태라 나를 어디로 끌고갈지는 오롯이 이 사람에게 달린 셈이었다. 상황만 보면 납치든 강간이든 얼마든 일어날 수 있고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생김새든 언어든 누가 봐도 이곳에서 난 체구 작은 외국인이고 힘으로 어떻게 저항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를 달랬던 것 같다. 나는 나이가 많은 여자다, 그런 게 뭔지도 모르고 할 줄도 모른다, 너에게 돈으로 보상하겠다, 너는 나를 도와줬다, 너는 너무 좋은 사람이다, 우리 모두 돈을 벌기 위해 너무 힘들게 살고 있다, 하느님이 너에게 복을 내릴 거다…등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도 모른 채, 어떻게 해서든 이 사람이 허튼짓을 하지 않도록, 돈을 받고 나를 공항에 내려다 주기만을 바랐다.
드디어 공항 모습이 보였지만 그는 운전 속도를 줄이면서 좀처럼 출발구역으로 진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비행기 탑승시간은 불과 10분도 남지 않았다.
나는 “저기 봐라, 나처럼 참 일찍부터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주위를 환기한 뒤 핸드폰을 꺼내서 “내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앱을 쓰는데 요즘은 모바일로 돈이 순식간에 송금된다. 바로 여기서 돈을 보내줄 수 있다”며 그에게 자랑하듯 송금 화면을 보여줬다.
도로에서 완전히 차를 멈출 수 없어서인지 그는 자연스럽게 공항 쪽으로 진입하게 됐고 드디어 출발구역 자동문 근처 길 한가운데에 차를 세웠다. 나는 돈을 송금한 뒤 녹색으로 바뀐 ‘성공(done)’ 버튼을 보여주는 동시에, 문을 열고 뒷좌석에 둔 내 짐을 있는 힘을 다해 끌어내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항 출입문으로 뛰어들어가 곧장 사람들이 제일 많은 곳으로 달려갔다.
그 다음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모든 게 예정대로 흘러갔다. 이른 시간이라 버팔로 공항은 한산했고 나는 검색대를 금세 통과해 비행기 문이 닫히기 전 무사히 탑승했다. 옆 자리에 누가 앉든,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얼마나 오래 지체하든, 승무원이 친절하든 그렇지 않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내가 환한 전깃불이 켜져 있고 사람 많고 모든 게 통제되는 공공장소에 있다는 것 자체에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다.
버팔로 공항에서 애틀랜타 공항을 거쳐 노스캐롤라이나 아파트로 돌아오기까지 비행기 안에서, 공항 탑승 게이트 대기구역에서 든 생각은 오직 한 가지였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어쩌다 그런 안 좋은 사람을 만났을까, 힘들게 번 돈을 그렇게 사기당하다니 재수가 없다, 이런 원망은 신기하게도 조금도 들지 않았다.
험악한 사고를 당하고 최악까지 갈 수 있었기에 ‘이만하길 다행이다’란 마음도 분명 컸지만…뭐랄까, 내가 저지른 일에 비해 큰 행운이 따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의 못된 짓이 별 거 아니라는 게 아니라, 애초에 내가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확실하게 예약된 차량도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새벽 출발 비행기를 예약해서는 안 됐다. 캐나다와 미국이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 해도 엄연히 ‘외국’ 인데 국경을 쉽게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됐다. 무엇보다 한 밤 중이나 다름없는 새벽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르는 차를 잡아서는 절대 안 되는 거였다. 내가 너무나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을 자초했다.
집에 돌아와 지인에게 이 일을 얘기했더니 그는 “미국이나 서구 유럽사람들이 집 안과 집 주변을 가꾸고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집 밖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정부에서 아무리 독려해도 대중교통이 활성화하지 않고 승용차만 이용하는 것도 워낙 땅덩이가 넓어서이기도 하지만 ‘낯선 타인과 있는 공간은 위험하다’는 경계심이 작용한다고 했다.
미국에서 그렇게 많은 총기 사건이 나는데도 좀처럼 총기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것 역시, 총기업계의 정치적 파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남이 총을 가지고 있으면 나도 총을 가져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니 모든 외국은 위험할 수 있다. 언어가 완벽히 통하지 않고, 시스템에 익숙지 않고, 아는 사람이 없고, 신용이든 뭐든 나를 입증할 수단이 극도로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지레 겁먹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피해의식이나 긴장상태로 눈앞의 좋은 것들을 즐기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그거야말로 기껏 외국까지 와서 너무 손해고 현명하지 못하다.
다만…만에 하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게 큰일이든 별 것 아니든 내 나라에서 겪는 것의 몇 배, 수십 배의 정신적·경제적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걸 인식할 필요는 있다. (실제 이 일을 겪고 며칠을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설쳤다) 액션영화의 주인공처럼 스스로를 지킬 엄청난 힘과 능력이 없다면 모든 외국 생활과 여행은 ‘안전’이 그 어떤 여흥과 일정과 비용절감보다 중요한 요소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