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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Oct 22. 2024

마흔 중반에 용기 내서 혼자 시작한 일

<엄마만의 방>을 읽고 여운이 남아서

지난달 글쓰기 동기들과 함께 읽고 나눈 책이 있다.

책을 읽고 나눈 지 한 달이 넘어가는 데도 가슴속에 진하게 여운이 남았는지 계속 생각이 난다.

그 책은 바로 김그래 작가님의 <엄마만의 방>이라는 책이다.

책 속에서는 작가님의 엄마가 현실의 여러 가지 상황을 뒤로하고 혼자 베트남으로 일하러 떠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낯선 타지에서 홀로 일하고 계신 엄마의 상황, 엄마를 먼 곳에 떠나보낸 후 느끼는 작가님의 섬세한 감정들이 친근한 만화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책 중간에 에세이를 추가해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에서 깊이 생각할 시간까지 더해주는 책. 앉자마자 순식간에 끝까지 읽어버릴 수밖에 없는 마법 같은 책이다.

(책 내용은 더 이상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직접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책을 읽고 줌모임을 하기 전 발제문을 보았다.

발제문 1번은 읽은 소감을 들려주는 내용이라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발제 2번과 3번을 마주하는데 엥? 분명 내가 느낀 바를 (요즘 대세인 서술형 문장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이건 뭐 OX퀴즈도 아니고 정답이 왜 바로 나오는지, 뻔한 정답 앞에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헛헛한 웃음만  나올 뿐.


발제 2. 베트남으로 떠난 엄마 같은 상황이 된다면 떠날 수 있을까요?

답) 아니오.......

     (자신이 없.... 어요. 지금은(?) 아직 못 떠날 것 같아요

아마도 그럴 일은 아마 없을 듯합니다. 실은 무서워서요)


발제 3. 엄마는 베트남으로 가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을 혼자서 가본 적 있나요?

답) 아니오....

  (이것도 자신이 없........ 어요.

작년에 제주도 여행도 동네 면허 소유자라 운전이 무서워서 애 데리고 패키지로 다녀왔습니다. -.-;;)


그래도 어찌나 다행인지 모른다. 3번 발제에 추가 질문이 달렸다. 이번 정답은 살짝 고민 끝에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혼자서 했던 일 중 가장 용기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나요?

답) ....

(최근에 혼자서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 혼자 등산을 간다는 것은 제 스스로 엄청나게 용기를 낸 일이니까요)



누군가는 혼자 배낭 하나 메고 유럽 여행도 다녀온다.

애 데리고 해외 자유여행도, 해외 한 달 살기도 척척 잘만 다녀온다. 그러나 정작 나란 사람은 국내 제주도여행도 혹시나 애 데리고 갔다가 사고 날까 봐 겁나서 패키지로 가는 사람이다. 이런 내가 과연 여행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마주하면서 나라는 사람은 나이 먹을수록 참 겁이 점점 더 많아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물론 운전 잘하는 친구랑, 운전 잘하는 남편이랑 갔을 때 제주도는 자유여행이었지만 그건 내 옆에 누군가 함께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지금도 여전히 예전에 함께 제주도 갔던 친구와 몇 년 후에 애들 데리고 같이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이다. 혼자 여행이라니? 아직까지 꿈조차 꿔본 적 없다)


그리고 굳이 고백하자면 최근에 아이와 함께 놀이동산에 갔을 때도 예전에는 두 손 번쩍 들고 탔던 놀이기구도 이제는 겁부터 난다. 예전처럼 즐기지도 못한다. 오히려 공포감이 몰려온다. 늙어서 그런가? 서글프기도 했지만 이제 딱히 탈 이유도 점점 사라져 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이런 와중에 마흔 중반이 되어서야 최근에 가장 용기 있는 일이 혼자 등산 가는 거라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누군가한테는 그게 무슨 용기를 낸 일이냐고 , 지리산도 아니고 동네 뒷산이면(그래도 203m로 뒷산치고는 꽤나 난도가 있는 산이다) 그냥 가면 되는 아니냐고 코웃음을 수도 있지만 실로 나에게는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남편과 그동안 여러 번 갔던 (다른) 산에서도 아차 싶은 막다른 길에서 갈피를 못 잡고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 말고 또 다른 산에서도 길이 헷갈린 적이 있었다. 절대 길치라서 그런 게 아니다. 산은 근본적으로 다른 길이다.

산에서 길을 잃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실로 두려운 일인지.

특히나 해가 지는 시간이 다가오면 초조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무리 산이 좋아서 많은 산을 다녀왔다한들 때로는 왠지 모르게 산이라는 존재는 가끔씩 무섭고도 두려운 존재다.

그런 산을 오롯이 혼자 오른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꽤나 용기 있는 일이었다. 

(지금 혼자 오르는 산은 그전에 남편과 아이, 그리고 동네 이웃과도 여러 번 다녀왔다.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많은 연습을 하고 간 것이다. 익숙함이 편안함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요즘 산들은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길이 여러 갈래다. 다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만 막상 올라가 보면 정 반대길이 나올 때도 다. 되돌아오려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도 많다.

혹시나 몰라 그동안 남편과 함께 산에 오를 때마다 우리만의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찰 정도의 힘든) 코스를 만들어놨다. 중간중간 길을 헤매지 않도록 나름 표시도 정해놨다. 그렇게까지 해놨는데도 전에 한 번은 혼자서 아무 생각 없이 앞사람을 따라갔다가 다른 길로 갈 뻔한 적도 있다. 다행히 금세 알아차리고 되돌아왔다.

역시 산에서는 방심은 금물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며칠 전 날씨도 흐리고 출근도 하지 않는 날, 약속도 없는 날이었다. 오래간만에 전기장판도 개시했는데 따땃한 이불속에서 책이나 볼까? 싶어 닝기적 거리는 찰나, 알람이 심상치 않다. 아파트 바로 옆 라인에서 전체 올수리 공사를 시작하는 날이 하필 오늘이라니.

우두두두! 아파트가 곧 무너질 기세다. 샷시부터 화장실 벽 뜯어내는 공사 소음에 한시도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카페로 직진했을 텐데 그날따라 산에 오르고 난 뒤에 마시는 커피의 달콤함을 만끽하고 싶었나 보다. 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비록 혼자였지만 그동안의 익숙함을 믿었고 나의 두 다리를 믿었다.


막상 출발은 했는데 날씨가 복병이었다. 안개가 자욱하고 흐려서 가시거리가 짧았다. 아직 본격적으로 산길에 다다르지도 않았는데 식은땀이 났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되돌아갈 수는 없지.


천천히 산 초입에서 주위를 둘러봤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 자체는 많지 않았다. 군데군데 어쩌다 두 사람  정도 같이 오는 사람들 말고는 거의 다 혼자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혼자였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만의 속도로 정상을 밟았다. 한편으로는 빨리가라고 뒤쫓아오며 잔소리하는 인간이 없어서 얼마나 편했는지 모른다. 겨우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전망대에 올랐다.


 평소대로 정상에 선 그 순간 당황스러웠다. 정상에서 보이던 맞은편 북한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산은커녕 숲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안갯속에 갇히고 말았다.

혼자서 군데군데 보이던 사람들도 다들 둘레길 코스로 넘어갔는지, 아니면 벌써 하산했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였다. 진짜로 혼자.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나는 여기 왜 혼자 서있는 걸까?
숲 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때

가끔은 혼자서 무언가를 계획했다가도 '과연 내가? 혼자 할 수 있을까?'

  설마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나이가 먹을수록,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살아갈수록 그러한 일이 두려워 지레 겁먹고 현실에 안주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이 동네가 지겹다고 말하면서 막상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두렵다. 낯선 동네에 절대로 혼자 가지 않는다. 새로운 도전은커녕 혼자서 뭘 배우고 싶어도 '못하면 어떡하지?' 겁만 먹고 쉽게 결단 내리지 못해서 놓친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여기 이 정상에서 만약 다시 되돌아가는 길을 모른다면 난 어찌 될 것인가?

다 큰 어른이 산속에서 미아가 될 것인가?

(군사보호지역에다가 산 정상에서는 가끔씩 전화 통화가 끊긴 적도 많았는데 어쩌지? 후덜덜)

.

.

.

(다행히 아는 길이라 온갖 걱정을 뒤로하고 겨땀 식히며 아주 천천히 잘 내려와서 예정에 없던 햄버거 하나 더해 아메리카노와 함께 축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혼자 여행은커녕 등산 한번 하는 거에도 이렇게 쩔쩔 매고 산 정상에서 안개 좀 꼈다고 두려움에 휩싸여 겁을 잔뜩 먹은 나란 사람이 <엄마만의 방>의 작가님의 엄마처럼 먼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 한들 해외로 일을 하러 갈 수 있을까?


일단 국내 여행이라도 한번 가봐야 할 텐데...

여기서 잠깐!

과연 남편이랑 애가 보내줄까? 놈의 혹들을 언제쯤 떼어낼 있으려나요? 혹부터 떼고 계획 세워도 되는 거죠?

(그때도 늦지 않은 거죠? 여러분~! 사람 쉽게 변하지 않아요. 호혹시 함께 하실 분 계시면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꾸만 겁이 많아진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힘과 실패를 극복할 힘이 점점 줄어서일까.
'내가 그중에는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할 수 있을까?'로 시작해 '난 아마 못할 거야'라고 결론짓는 일이 잦아졌다.
그중에는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안주하고 싶은 걸까.
그런 면에서 엄마도 나처럼 겁 많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김그래 - 엄마만의 방 중에서-

언젠가는 지금 내 곁에 있는 내 딸도 김그래 작가님처럼 금방 커버려서 독립하는 그날이 올 것이다. 머지않을 그날에 그저 현실에 안주하면서 살아가는 엄마가 걱정되어 오히려 딸이 독립을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더 큰일이 될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제부터라도  꿋꿋하게 엄마로 살아가는 삶 말고 나인생에서 (혼자 산에 오른 것처럼) 오롯이 혼자 겁 없이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늘려보아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4주간 애 낳고 처음으로 도보로 왕복 한 시간 더 걸리는  타도서관 저녁타임(19시 반부터 21시) 강의를 용기 내서 혼자 신청해 보았다.

강의 먼저 신청하고 가족들한테 양해를 구해 논 상태,

무엇보다 그 밤 시간에 나간다 하니 왜 이리 설레고 긴장되는 거니? 심장아! 나대지 마라ㅎㅎ 차분하게 강의 들을 준비나 하자!!

오늘 저녁, 당당하게 용기 내서 힘차게 걸어가 강의실 문을 활짝 열어봐야지.











덧붙임) 음.. 남편얘기는 왜 없냐고요? 남편과 함께 해도 되니까 혼자가 아니지 않냐고요? 뭐 그렇긴 하지만 남편은 출장이 잦은 편이고요. 앞으로 인생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미리미리 대비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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