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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Nov 04. 2024

다시 걷고 싶은 정발산

지금은 살짝 멀어졌지만

내 나이 서른둘, 결혼을 하게 되면서 경기도 고양시 일산 내 정발산동에 살게 되었다.

누군가 정발산동이라 하면 연예인들이 사는 일산의 비버리힐즈 같은 고급진 빌라들이 줄지어 있는 그런 동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실제로 연예인 김청님을 비롯해서 여러 명을 자주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살았던 곳은 그 동네와 구분 지어 큰 대로변을 중심으로 반대쪽에 위치한 동네였다.

 여러 다세대 주택들이 촘촘하게 붙어있는 빌라촌의 한 주택, 4층 건물 옥탑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그것도 아래층에는 시부모님이 살고 계신 건물의 위층.

밖에서 보면 자세히 봐도 보일까 말까 하는 콩알만 한 창문이 있는 4층 옥탑방에서 여름에는 더워서 미치고 겨울에는 추워서 미쳤던 6년 정도의 긴 시간은 지금도 잊으래야 잊을 수 없다.

서울로 출퇴근을 해야 했고 매일 밤 야근을 하던 시절, 평일에도 일찍 오면 3층에 들려야 했었고 시어른들이 아래층에 계시기에 보이지 않는 억눌림이 양 어깨를 무겁게 만든 그 시절,  나를 유일하게 버티게 만든 건 다름이 아니라 고양시의 대표 명소 정발산공원이었다.


정발산 : 경기도 고양시의 일산동구 마두동에 위치한 산이다(고도:87m).
『1872년지방지도』에 고양군의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정발산(鼎鉢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남쪽으로는 행주산성이 자리한다고 전한다. 지금은 일산 신시가지의 중앙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다른 이름은 한자 표기가 다른 정발산(鼎發山)이다. 이 산 일대에 정씨와 박씨가 모여 살아 정박산이라 하였다가 이후 정발산이 되었다는 유래가 전해 온다. 현재 정발산에서 남쪽으로는 호수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지하철 3호선 정발산역이 있다. 관련 지명으로 정발산동, 정발산로, 정발마을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정발산 [鼎鉢山, Jeongbalsan]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일러두기)


결혼하고 나서 남편과 둘이서 맘대로 어디를 갈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었다. 애도 없던 시절(거의 3년) 주말마다 어디를 꼭 가야 할 필요도 없었고 한 두해 지나고 나니 마땅히 갈 데도 없었다. 게다가 언제 아래층에서 호출이 올지 몰라서 멀리 가기도 눈치 보이는 날이 많았다. 그럴 때 틈나는 시간을 놓치기 아까워 자연스레 운동화를 신고 정발산에 올랐다. 3층에서 부르면 언제든지 바로 갈 수 있었으니까.

(3층에서는 아무 이유 없이 밥 먹자고, 아가씨 결혼 할 사람 온다고- 처음에 시부모님이 딸의 결혼을 반대하셔서 시댁 사윗감이 무지하게 자주 왔었다-, 친척들 온다고, 컴퓨터 봐달라고, 휴대폰 뭐 안된다고, 같이 뭐 사러 가자고.. 철마다 매실 꼭지 따야 했고 곶감도 만들어야 했고 새우젓도 같이 사러 가야 하고 김장도 해야 하고 기타 등등 우리를 부르는 이유는 뭐 수천 가지였다)

쉬고 싶어 하는 남편이었지만 그 사람도 내 눈치를 봐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온 걸 알면서도 그때는 당연한 듯 모른 척했다.

내가 누굴 믿고 결혼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은 수없이 찍혀서 이제는 뭐~)


<폭설이 내려도 계절 상관없이 수없이 다녔던 정발산, 특히 유모차 밀고 올라갔던 언덕길은 잊을 수가 없다>

남편과 일찍 끝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갔던 정발산, 주말마다 자주 갔던 정발산, 남편과 함께 애 낳고도 애 업고도 갔던 정발산, 가뭄에 콩 나듯 친구들이 놀러 오면 유모차 끌고 함께 소풍 갔던 정발산.

무엇보다 우울해서 밤마다 미친 듯이 치킨에 맥주를 벌컥벌컥 먹고 나서 인생의 최대 몸무게를 찍고 뚱보 되었을 때도 나를 반겨주고 기다려줬던 정발산이야말로 나의 친정이고 안식처였다.

엄마품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곳이었다.


애 낳고도 누구 하나 아는 사람 없어 우울증은 더 심해졌고 (문이 활짝 열려있는) 3층을 지나쳐 4층 옥탑방에 들어가기 너무너무 싫었던 그 시절,  하루종일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배회하다가 갈 곳이 없어지면 해 질 녘까지 꾸역꾸역 돌고 돌아 결국 다른 동네로 연결된 언덕길로 땀 뻘뻘 흘리며 갔던 정발산.

어쩌다 산에서 만난 다른 아이들과 섞여  뛰어노는 애를 보면서 버틴 그 시절이 어찌 지나갔는지 어느새 애 낳고 10년이 훌쩍 지나갔다.


집 근처 정발산이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 정발산은 그 시절 내게 너무나도 큰 존재였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쥐도 새도 모르게 점점 더 옆으로 커진 남편 품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더 큰 안식처였지...-.-;;)


그 시절을 잘 버텨서 지금은 시댁에서 차로 7분 거리로 이사를 와서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아직도 정발산의 옛 추억은 그대로다. 가끔씩 우리 식구는 그때를 되새기며 정발산을 찾고 나는 동네엄마들과 일부러 그 근처를 갈 때도 있다. 얼마나 좋은 곳인지 여기저기 소문도 내고 다닌다.

(근처 맛집이 많으니까 맛집을 갔다가 소화시키러 가는 게 목적이긴 하지만 어쩌다 시부모님 만날 수 있으니 소리 없이 몰래 다닌다....ㅡ.ㅡ;;실제로 마주친 적이 있는데 할 일 없는 며느리로 비칠까 봐 아직도 난 눈치를 본다)


아마도 정발산은 나의 일산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든 것들까지 전부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굳건히 서있는 커다란 나무들과 속삭였던 비밀스러운 나의 이야기들은 바람과 함께 전부 사라졌겠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그 말을 실감하게 만드는 정발산은 일산의 대표 명소라서 그런지 근처에 부자(?)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지 그 사이 많이 변했다. 매번 갈 때마다 좋은 시설이 생기고 있다.

우리 애는 아무것도 없는 풀밭에서 마냥 뛰어놀기만 했는데 지금은 유아숲체험 놀이터에다가 트리하우스도 생겼다. 게다가 요즘 대세인 맨발 걷기 체험장은 신발장과 발 씻는 곳이 엄청 편리하고 깔끔하게 설치되었다. 게다가 휴레스트 둘레길까지 조성되어 걷기에도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에서 길 잃어버릴 일이 전혀 없다. 예전보다 훨씬 편안해지고 아늑해졌고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이보다 더 걷기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 사이 보이지는 않지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속에 깃든 뿌리와 흙들도 더 단단해졌겠지?

맨날 울상인 얼굴로, 속으로 흐느끼며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밤새 울어서 퉁퉁 은 얼굴로 머리도 안 감고 모자 푹 눌러쓰고 갔던 정발산은 나를 제대로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지금은 그때보다 나이는 조금 더 먹었지만 몸무게도 적게 나간다. 다행히 얼굴 기는 사라졌고 그때보다 화색이 돌고 머리도 자주 감는다.

주름만 깊어졌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때보다 더 깊고 단단해진 마음,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곳을 밟을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할 뿐이다.



지금은 비록 정발산동을 떠나왔지만(이사는 신의 한 수였다. 그 뒤로 그나마 숨통이 트였으니까)

정발산은 지금도 나에게 제2의 고향 같은 포근함을 줬던 안식처라 자주 생각난다.

유난히도 바스락 거리는 낙엽 소리를 듣고 싶어지는 가을 오후, 무작정 걷고 싶은 걸까?

언젠가 내 옆에 그 유모차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이가 커서 온 식구가 다 같이 재잘재잘 이야기 나누며 꼭 다시 올 거라고 한결같이 기다려준 정발산, 그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었던 초췌한 내 모습조차도 받아주었던 정발산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이유는 아마도 그동안 내가 너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떨어지는 낙엽처럼 켜켜이 쌓였나 보다.

그리고 아무래도 나날이 걷기 좋은 이 계절이 지나가는 게 못내 아쉬울 수도.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금 만나러 가고 가야지.

(이제는 산에 혼자 갈 정도로 대담해져서 맘만 먹으면 당장이래도 갈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줄래?

곧 만나러 갈게.

그동안에 있었던 , 그 뒤로도 그때처럼 끊이지 않는 나의 (속 터지는) 이야기 들어줄 수 있지?ㅎㅎ



 


덧붙임) 결혼과 동시에 고양시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슬초 브런치 1기와 2기) 두 여자가 고양시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앞으로 살기 좋은 고양시 이야기 많이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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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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