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이상을 서울에서만 살다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토당동, 소위 능곡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에서 살게 되었다. 우리의 신혼집으로 자리한 곳은 시댁 어르신들이 사시는 능곡역 근처 아파트 단지의 바로 옆 동.
늦은 나이에 결혼한 나는 친정 부모님의 권유로 시댁 가까이 살게 되었다. 시어른들이 연세도 있으시고 하니 가까이 사는 게 어떠냐고 하셔서, 그때 당시 부모님은 여동생네와 합가를 했었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은 일산이라고 하여 잔뜩 기대를 안고 (?) 신혼집을 방문하였으나 생각과 다르게 펼쳐진 논밭과 시골스러운 기차역이 일산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일산 같지 않은 광경이었으려나. 서울 살다 온 내게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우리가 흔히 일산이라고 알고 있는 고양시는 일산동구/일산서구/덕양구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의 신혼집은 덕양구, 그것도 일산 초입으로 행주산성 근처였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능곡역이 코앞이라시며 늘 역세권에 사니 얼마나 좋으냐 하셨지만, 일을 쉬고 있는 나에겐 막상 지하철을 탈 일은 거의 없었다는 것.
하지만 아이를 키우기에는 더없이 조용하고 한적한 이 동네가 점점 맘에 들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이곳에서 임신을 하게 되면서 가입한 맘카페에서 알게 된 임산부 동생이 같은 단지에 살고 있다는 것도 크게 한몫했다. 또래였던 우리는 출산 후에 더 친해졌고, 아이를 키우며 같은 유치원에 보내며 즐거운 시절을 보냈다.
옆동에 사시는 시어머님도 외손주 이후, 오랜만에 보는 친손주여서인지, 유독 아기를 좋아하셔서 자주 아기를 보러 와주셨고, 늦은 결혼에 빠른 임신으로 신혼생활이 짧았던 우리가 안타까우셨는지 아이를 봐줄 테니 데이트 다녀오라고 해서 짬짬이 데이트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능곡에 계속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야 아이 유치원에서 상급반 형들이 괴롭히는 사건이 생기면서 아이는 등원을 거부하게 되는 큰 사건이 생긴 것이다.. 충격이 커서인지 심리치료까지 받게 되면서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아이에게만 전념하며 지내던 중에, '환경을 바꾸어 주면 아이에게 좋겠다'는 상담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급작스레 능곡을 떠나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은 걸어서 5분 거리의 학교를 다니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밝은 모습으로 잘 지내고 있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비록 예기치 못한 일로 능곡을 떠나게 되긴 했지만, 결혼과 함께 새롭게 보금자리를 갖게 되었던 능곡은 인생 하반기인 지금도 여전히 나의 제2의 고향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