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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미래 Nov 02. 2023

가족회비의 쓸모

덜 모이고 덜 쓰면서 더 모으면 안될까요?

다음주말에는 시댁 식구모임이 예정되어 있다. 모이는 이유는 11월 중순에 아가씨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시댁 식구 중 생일인 사람이 있으면 생일날 전 주즈음에 다 같이 모인다. 거하게 먹고 마시며 촛불까지 불고 케이크까지 먹어야 그날의 행사가 마무리된다.


지난 추석연휴는 참으로 길었다. 매해 추석연휴 바로 뒤에 시어머니 생신이라 매번 추석 연휴 때 시어머니 생신파티를 한다. 내 남의 편 님은 10월 중순경이 생일이다. 추석이 9월이면 명절과 시어머니 생신 파티를 위해 며칠을 만나고 또 만나고 10월에 남편 생일파티를 위해서 또 만났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두 명을 묶어서 연휴에 같이 파티를 마무리 지었다.


보통 생일 때 모이면 생일 당사자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른다. 투플러스 한우, 대게, 고급뷔페 등등 평소에 먹을 수 없는 비싼 요리를 메뉴로 정한다.

시어머니는 명절에 끼니마다 드신 고기가 지겨우셨는지 이번에는 대게를 고르셨다. 근처에 유명한 대게집을 예약했다. 당연히 처음 가보는 식당이다. 시부모님, 우리 식구 3명, 아가씨네 식구 4명이 룸으로 들어갔다.

식전 메뉴와 고급진 스끼다시가 나온 후 대게를 기다리는 찰나, 킹크랩이 우리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가게 사장님이 영업을 잘하셨는지, 가격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고 꼬셨는지 가게 밖에서 시세를 보며 주문했던 시아버지와 남편은 속아 넘어간 듯했다.


속으로 이번에는 또 얼마야? 돈 백 나오는 건가? 싶었다.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데 나만 쓸데없이 먹으면서 돈 걱정을 한다. 실제로 구십 얼마가 나왔다. 그 뒤로 케이크에 후식까지 사게 되니 진짜로 돈 백이 우습다.

그럼 그 돈은 무슨 돈으로 계산할까?

그 돈은 바로 세 가족이 함께 모으는 가족 회비에서 지출하게 된다.


여기서 이 가족회비는 몇 년 전부터 세 가족이 함께 모으는 공동회비다. 시부모님도 똑같이 돈을 내신다. 처음 시작은 시아버지의 욕심(?)으로 15만 원씩 내기로 했다. 매달 45만 원이 쌓였다. 자식들이 그 정도 여윳돈도 없냐면서 20만 원씩 모으자고 말씀하셨다가 적정선에서 합의한 금액이 15만 원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그 돈도 생각해 보면 큰돈이다.

(그 돈이면 애 학원 하나 더 보내고 싶은 게 엄마의 심정이다)


45만 원씩 매달 돈이 쌓이니 모임으로 만나서 식비 지출을 해도 돈은 어느 정도씩 쌓여갔다. 그 사이 작년 시아버지 칠순 잔치도 치렀다. 몇 년 동안 두둑이 모인 회비 덕분에 순식간에 몇백이 빠져나갔어도 끄떡없었다. 통장의 잔고는 꽤 남아있었다.

한참 뒤에 15만 원이라는 돈조차도 부담이 된다는 애 둘 키우는 아가씨의 조심스러운 발언에 월 회비를 10만 원으로 줄였다.


그 돈이 있으니 시댁 모임에서의 부담이 줄어들어든 건 사실이다.

그전에는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할 때 매번 돈 때문에 서로가 눈치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뒤로는 가족회비가 있으니 모일 때마다 마음은 편하다.

그러나!!!

그 돈을 믿고 (거의 매달) 자주 모이는 게 이 집 며느리로서 불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시아버지 호출이 온다. 티브이를 보시다가 낙지를 드시고 싶다고 다 같이 모이자고 하셨다. 얼굴 본 지도 오래되었다 하시면서 주말에 무조건 오라고 하셨다.

(한 달만 안 보고 지나가도 큰일 난다. 물론 나 말고 손주를 보고 싶어 하신다)

직접 수산시장에서 공수해 오신 낙지를 비롯해서 먹고 마시는 모든 비용(술 포함)을 가족 회비로 계산한다. 아무 날도 아닌데 그냥 몇십만 원이 한 끼 식사 비용으로 쏙 빠져나간다.


또 아무 날도 아닌 주말, 아가씨네는 본인 볼일을 보고 쉬러 친정에 올 때가 많다. 그냥 쉬다 가면 될 것을 굳이 7분 거리에 사는 우리한테까지 연락이 올 때가 있었다. 초반에는 예의상 몇 번 응해주었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모이게 되면 아무 이유 없이 가족회비로 식사를 다. 난 솔직히 그 돈이 아까웠다.

(그 뒤로 진땀 흘리면서 몇 번 거절하니까 연락이 뜸해졌다)


10만 원으로 금액을 줄이니까 매달 모이는 돈은 30만 원인데 한번 모일 때마다 몇십 이상이 금방 빠져나간다.

통장 잔고를 모르고 싶다. 돈 신경 안 쓰고 나도 편하게 먹고 싶다. 돈 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 한 발 뒤로 물러서고 싶다. 그렇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내가 그 회비를 관리하는 총무다.

난 싫다고 했지만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맡았으면 명령하셔서 좋겠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관리 중이다.


다음 주면 아가씨의 생일모임이고 내 생일은 하필 12월 말이다. 바쁜 연말에 스케줄 쪼개가며 시댁 식구들과 송연회 겸 생일 파티를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신년회라는 이름으로 2주 뒤에 아가씨 첫째의 생일파티가 있다. 2월에는 설연휴도 있고 아가씨 둘째의 생일도 있다.

3월과 4월은 생일이 없지만 그런 식으로 번개 모임으로 지출이 있다. 본격적으로 가정의 달 5월부터는 연말까지는 매달 줄줄이 사탕으로 계속 모이게 된다.  물론 그 가족회비가 있어서 돈 걱정을 안 하고 만나지만 난 또 그 돈이 아깝다.



내가 그 돈을 아까워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친정에서도 매달 10만 원씩 한참 전부터 세 식구가 시댁처럼 똑같이 회비를 모으고 있다.

서로 멀리 살아서 자주 볼 수 없는 여건이라서 자주 모일 수가 없다. 모여서 돈 쓸 기회는 별로 없지만 회비는 많지 않다. 작년에 큰 지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방에 살고 계시는 친정아버지가 작년에 큰 수술을 받으셨다. 친오빠와 나는 수술비를 보태드렸지만 그 돈으로 모든 수술비를 충당할 수는 없었다. 이럴 때 쓰라고 우리가 회비를 모으지 않았냐면서 가족회비에서 병원비를 쓰시라 했다. 작년에 수술을 하신 친정아버지는 올해도 다른 병으로 또 병원신세를 지셨다.

정작 친정아버지는 아프시고 친정 엄마는 병간호하시느라 매일이 고달프다. 멀리 사는 자식들은 도움이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돈이다. 하지만 친오빠네나 우리도 그저 평범한 가정이다. 한꺼번에 당장 큰돈을 내놓을 수는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필요한 게 가족회비가 아닐까 싶다.

우리도 매달 아낀다고 노력했지만 당장 이번달 카드값 앞에서 주눅이 든다.


아직 시부모님께서는 아직까지는 건강하신 편이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건 분명하다. 지금 몸이 허락하실 때 이렇게 자식들과 먹고 마시며 즐기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용히 그 모임에 함께 하는 것이다. 나서지 않고 뒤에서 돈만 계산하는 게 내 역할이다. 

역시나 3년 뒤에 있을 시어머니 칠순 잔치에 그 돈이 쓰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전에 그 돈이 자꾸 먹고 마시는 일, 즐기는 일에만 편중돼서 쓰이는 게 못마땅할 뿐이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서 좀 더 그 돈을 아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이런 마음이 드는 나만 이상한 사람인가?

나만 며느리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가? 이런 얘기하면 남편하고 또 싸우게 된다.

(에라이! 써글놈아! 네 부모가 아파봐라!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먹는 건 신경도 안 쓰이거든?!)



내년부터는 시부모님 생신과 명절 정도에만 그 회비를 쓰고 모임 횟수를 줄여보자고 말하고 싶다.

특히나 내 생일에는 만나지 않아도 전혀 서운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식구나 아가씨 식구들도 각자 식구들끼리 생일 챙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굳이 언제까지 매번 다 같이 만나서 (회비로 먹는다는 명목아래) 큰돈을 지출해야 하는 걸까? 게다가 아이가 커갈수록 각종 행사와 주말에 스케줄이 많아져서 시간 맞추는 것도 머리 아프다. 그건 아가씨네도 마찬가지다.

분명 마음은 그러한데 정작 그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겠지?

오늘부터 남편이라도 설득해 봐야 하나?

진짜로 남의 편이라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면 진작 들어줬겠지? 여지껏 안 들어줬으니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닌가?  흥! 칫! 뿡!

하긴 모임 때마다 그동안 제일 잘 먹었던 사람은 누구였더라? 곰곰이 돌이켜봐야겠다.





덧붙임) 결혼해서 시댁위층 옥탑방에 7년 살면서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한 거에 비하면 지금은 뭐 아무것도 아닌 거에 감사하게 살고는 있습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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