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둘째 주 토요일이다. 썩 반기지 않는 날이지만 예전보다는 심장이 쿵쿵쿵 나대지는 않는 듯하다.
단지 해마다 이 날은 왜 이리 빨리 돌아오나 싶다.
작년에도 이 내용으로 글을 쓴 지 엊그제 같은데 눈 깜짝할 사이에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올해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내가 시제 모실 음식 장만의 순번이 아니라서 며느리인 나는 시제에 참석하지 않는다.
애 어릴 때 그 어린아이를 데리고 시제에 참석했을 당시 분명 다음 음식 장만 차례는 13년 후라고 했었다.
근데 갑자기 내후년이란다.
그 사이 코로나로 몇 해를 쉬어서 더 뒤로 미뤄지기는커녕 왜 당겨졌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중간에 이탈자가 생기고 결혼 안 한 사촌 형들은 음식 장만할 며느리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이건 진짜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올해도 역시 초4인 딸을 데려간다는 남편을 굳이 애써 말리지도 않았다. 황소고집인 사람과 싸워봤자 나만 손해다. 이 게임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걸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런 일로 에너지를 뺏기고 싶지 않다.
이제 문제는 며느리인 내가 아니라 내 딸이다. 작년에 남편이 5만 원으로 꼬셔서 겨우 데려갔지만 올해는 다르다.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
작년에 당일치기로 그 먼 곳(시제 모시는 장소는 전남 지역이고 우리 집은 경기 북부)을 다녀온 아이가 올해는 격하게 시제에 참석하는 것을 거부했다.
아니면 남편이 준 5만 원이 부족했는지 올해도 5만 원을 준다 해도 절대 가지 않겠다고 아빠랑 티격태격했다.
(사실 엄마도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하지만 남편은 무조건 밀어붙였다. 너 혹시 설마 진짜로 5만 원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니지? 작년에도 절대 그 돈을 엄마가 뺏지 않았다. 다만 거기서 이름 모를 친척에게 받은 돈만 통장에 입금한 기억이 남아있다)
올해는 혹시라도 거기서 누군가에게 받은 용돈도 너의 손에 쥐어준다고 했을 때 살짝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래도 썩 가고 싶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엄마, 나 거기 가서 또 제기 닦아야 해? 같이 놀 사람도 없고.
그리고 근데.... 작년에 이미 거기서 돈 받아서 이번에는 돈 주는 사람 없을 수도 있잖아."
(아니, 1년 사이에 머리가 왜 이리 큰 거니? 왜 이리 돈을 밝히는 사람이 된 거니? 엄마가 널 잘 못 키웠구나
ㅜㅜ 최근에 너의 통장에 있는 돈을 또 남편의 꼬드김에 넘어가 주식계좌를 만들어 몽땅 투자하긴 했지. 마이너스된 이야기를 주워들은 거니? 투자는 엄마가 한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 줄래?)
이러한 이야기를 접수하신 시아버지도 남편과 함께 5만 원을 얹어 준다고 제안을 하신 모양이다.
(남편과 아버님은 가끔 99% 일치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 이렇게 까지 해서 꼭 아이를 데려가야만 하는 이유를 며느리인 나는 찾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상황이 어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최소 10만 원을 보장받은 아이는 오늘 아침이 정녕 미라클모닝이다.
일어나서 시제에 다녀오기만 하면 최소 10만 원을 받게 된다.
(설날 세뱃돈이 아니고서야 초등학생의 손에 넝쿨째 들어오는 10만 원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올 한 해 사고 싶은 물건, 친구 생일 파티 선물 준비와 친척과 가족들 생일 선물은 꼭 네 용돈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엄마는 잔소리를 했고 아이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는 남편 역시 옆에서 아이에게 계속 주식 투자를 권유했다. 이제 선택은 너의 몫이다. 일단 네 돈은 꼭 챙겨서 와라)
작년에는 새벽 5시 50분에 출발했던 부녀는 오늘 한 시간 더 이른 시간 4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한참 나들이 시즌인 (봄꽃이 활개를 치는) 이 시기에 가는 도중 차가 막혀서 무진장 힘들었고 내려간 김에 시부모님께서는 얼마 전 남편의 이모부가 돌아가셔서 그 근처에 살고 계시는 이모님 댁에 들렸다가 간다고 전했다.
여행을 가지 않는 한 그 시간에 눈을 뜨지 않는 사람도 오늘은 백만 년 만에 미라클 모닝이다.
듣자 하니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면 온전히 집중해서 쓸 수 있다는데 그 말이 맞는지 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오래간만에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작년에는 시제를 모시는 그날, 며느리인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친구를 만나러 강남역으로 갔었다.
올해는 고속버스 터미널로 간다.
애낳고 처음으로 나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역시 당일치기로) 친정집으로 간다.호적상으로는 작년에 칠순인 친정 엄마의 진짜 칠순이 다음 주다.작년에 친정 식구들 다 같이 모여 여행을 다녀와서 미리 칠순잔치를 치렀지만 올해 그냥 넘어가면 왠지 섭섭할 것 같다.
오늘 하루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밤늦은 시간에 세 식구는 다시 만난다.
그때까지 안녕!
그때까지 오늘은 잠시 나도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ㅇㅇ 엄마가 아닌 오롯이 딸로서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싶다. 멋의 고장, 맛의 고장 내 고향 전주를 향해 출발! 내 엄마 아빠랑 같이 맛난 거 먹으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