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하루가 찰나와 같이 짧게만 느껴진다. 직장과 가정에서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다 보니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신이 없을 정도다.
나이가 들어 할 일이 많아 좋다지만 일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것이 몸에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가정에는 딸의 결혼 준비와 관련한 일이 기다리고, 직장에는 이것저것 챙겨야 할 일이 순서 없이 다가온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는 직장을 퇴직한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머릿속을 맴돈다.
모든 것들이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서로 얽히고설켜 돌아가는 세월이다. 어느새 저문 들녘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찬기가 묻어난다. 계절은 바람의 변화를 통해 느끼듯이 사람도 은은하게 살갗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결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읽게 된다.
바람은 바람의 시간을 타고 슬그머니 불어오고 불어 간다. 바람의 전령인 태풍 ‘링링’에 이어 ‘타파’가 제주도와 남해안과 동해안 일대에 거센 바람과 함께 많은 비를 뿌리고 지나갔다.
그리고 가을이란 시간의 수레바퀴가 도도하게 밀려온다. 그 흐름의 물결에 시간이 간섭하면서 일상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태풍의 거센 바람과 같이 시간도 거대한 수레바퀴에 휘감긴 채 물레방아처럼 돌고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태풍 ‘타파’가 한반도를 지나가기 전 가족과 함께 안면도에 있는 리조트를 다녀왔다. 태풍이 남쪽에서 다가오고 있다는 불안함 속에서 찾아간 안면도는 바람과 비가 바깥 외출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서울에서 안면도로 휴가를 갔지만, 밖에 나가진 못하고 리조트에서 창밖의 풍경과 윙윙거리며 거세게 불어대는 바람 소리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만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안면도에서 구경을 한 것이라곤 바닷가 꽃지 해수욕장을 차를 타고 지나가며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제대로 즐긴 것은 음식점에 들러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창밖을 바라본 것뿐이다.
안면도는 몇 차례 다녀왔지만, 밖에 나가지 못하고 리조트에서 풍경만 바라본 적은 없었다. 태풍이 바람을 휘몰고 온다지만 리조트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결은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연의 풍경은 바깥을 거닐지 않고도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다. 콘도를 배경으로 펼쳐진 소나무 숲과 멀리 바닷물이 들어오는 모습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이 시원했다.
1박 2일 일정으로 안면도에 갔지만, 이틀 동안 한 일이라곤 서울에서 안면도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갔다 온 것이 전부였다. 태풍이 올라와 어쩔 수 없었지만, 휴양지에 가서 풍경으로 바라만 본 것도 처음이다.
안면도에서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강한 바람으로 차를 운전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바닷가에서 갑자기 불어오는 광풍의 소용돌이에 차의 핸들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차를 운전하고 고속도로로 올라오면서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거센 바람에 맞서 운전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고속도로에서 강한 돌풍으로 설설 기는 차를 바라보며 잘못하면 차가 높은 계곡으로 날아가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한 생각에 바람이 무섭게 느껴졌다.
요즈음 딸의 결혼식이 가까워지면서 하나둘 챙겨야 할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런 과정에서 직장에 출근해서 업무도 챙기려니 몸은 비록 직장에 있으면서 마음은 집에서 무언가를 챙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들 정도다.
그런 바쁜 일상에서 계절은 점점 가을 속으로 침잠해 가는데 직장과 집만을 시계추처럼 오고 가는 신세다. 태풍 ‘링링’과 ‘타파’가 지나가면서 여름의 잔재를 휩쓸고 가버렸다.
태풍이 다가오기 전에는 날씨가 무더워 여름옷을 입고 직장에 출근했는데 태풍 ‘타파’가 지나간 뒤에는 여름옷을 입을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그에 따라 여름옷은 장롱에 고이 접어 두고 가을옷을 꺼내 입고 출근하는 중이다. 몸은 지난 시절 언제 여름옷을 입었느냐는 듯이 소매가 긴 가을옷이 몸에 잘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올해의 무덥고 지루했던 여름날은 태풍과 함께 북반구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가을이란 색의 계절이 북반구에서 여름과 맞바꾸어 한반도로 내려왔다.
계절의 바람을 타고 북반구에서 내려온 가을날에 딸의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올해의 남은 계절에도 삶을 살뜰하게 가꾸고 챙기면서 멋지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