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섬

by 이상역

동백(冬柏)은 겨울이 시작되는 12월부터 겨울이 끝나는 3월까지 꽃을 피운다. 동백꽃의 꽃말은 ‘진실한 사랑’이다. 동백꽃에는 연인에게 조금이라도 더 곱게 보이려는 섬 아낙의 순박하고 애달픈 사랑과 사연이 담겨 있다.


붉은 동백꽃이 한창 피던 시절 가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란 노래가 나이를 불문하고 전 국민이 즐겨 부른 국민가요가 된 적이 있다. 그 시절 나는 청춘의 꽃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학창 시절에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수학여행이다. 나도 부모님의 은덕으로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부산에 수학여행을 떠났다.


당시 버스가 태종대가 바라보이는 언덕길을 넘어가자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란 노래를 선창 하자 버스에 탄 친구들 모두가 버스에서 일어나 목이 터지도록 합창한 적이 있다.


이 노래는 음악 반주도 노래 가사도 그리고 부르기도 좋은 노래란 생각이 든다. 춘풍이 훈훈하게 불어오는 따사로운 봄날에 목련꽃과 개나리꽃이 피어 있는 들녘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돌아와요 부산항에’란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 희망의 싹이 움트는 봄날이 오면 마음은 한없이 따듯해진다. 길가 덤불숲에서 피어나는 개나리꽃과 공원의 한가한 곳에서 화려함을 뽐내는 목련꽃을 바라볼 때면 봄날의 따뜻한 기운을 전달받는다.


사람도 계절에 따라 성장해 가듯이 다가오는 계절을 통해 희망을 품고 이웃과 더불어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한다. 노란 개나리꽃을 바라보면 성장하던 옛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고, 화사한 목련꽃을 바라보면 인생의 번성했던 옛 영광을 더듬어 찾아가게 된다.


얼마 전 고등학교 시절 남쪽으로 수학여행을 함께 떠났던 친구가 이승의 삶을 강제로 마감했다. 봄꽃의 화려함 뒤에는 추락이 따르고 탄생에는 소멸이란 쓰디쓴 단어가 따라붙는다.


그 친구가 어찌하여 자신의 삶을 억지로 마감했는지는 모르지만, 춘풍이 불어오는 봄날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마감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봄은 바람과 비와 꽃이 탄생하는 생명의 계절이다. 대지 위에는 새싹이 부지런히 싹을 틔우고, 목련 가지에는 움틈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계절은 나를 통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봄이라는 계절을 통해 내가 드러나는 계절이다. 계절의 승화작용 뒤에는 언제나 새로운 이슈와 자극제가 기다린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도 나라의 지도자가 바뀌자 감원 바람으로 어수선하다. 직장에서 감원 바람으로 마음을 둘 곳 없는 신세라지만 오늘이란 삶의 무대에는 아직도 옛 시절에 겪었던 봄날의 정취와 풍경이 고스란히 전개된다.


내가 어떻게 오늘의 화려한 봄날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주인공이 되었을까. 그저 나를 반기고 맞이해 주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노랫말처럼 동백섬은 동백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친구들과 여행을 가서 바라본 동백섬은 보통의 섬과 다를 바 없는 바위섬이었다.


노래나 詩는 사물을 아름답게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아름다운 노래는 대상을 만나지 않고도 목소리에 사랑이 담기고, 詩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환상을 꿈꾸게 한다.


그러다 막상 실체와 부딪히면 환상이 현실로 변하면서 이미지를 미화시켰던 꿈들이 공중으로 산화한다. 봄꽃이 피고 생명이 자라나는 계절에 내가 무언가를 찾으러 온 것처럼 계절도 바람과 꽃과 싹이라는 사태에 밀려 흥겨운 봄의 정취를 누리고 있다.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곳이 더 가고 싶은 것처럼 지나간 겨울날의 삭풍이 그리운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한 생명을 두고 나누어 살아갈 수는 없다.


봄날에 꽃 사태를 일으키는 벚꽃의 범람처럼 생명이 왕성한 곳 어디에나 이상과 사랑이 범람하는 세상으로 바뀌기를 소망해 본다. 남녘의 동백섬을 따라 올라온 봄꽃의 무리가 세상을 휘젓고 있다.


제 마음껏 세상을 휘젓다가 사그라질 봄꽃이라지만 오고 가는 봄날을 제대로 즐기면서 사는 것도 인생살이다. 오늘은 봄이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내가 봄날을 즐겁게 맞이하는 뜻깊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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