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밤바다

by 이상역

고요한 밤에 잔잔한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마음은 깊은 심연을 향해 여행을 떠난다. 그와 더불어 머릿속은 노랫가락을 따라 지나온 한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조용한 음악은 마음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조미료다. 글을 쓰면서 노래도 듣고 머릿속엔 또 다른 상상을 그리니 하나의 일로 세 가지를 즐기는 셈이다. 세상 참 편리해졌다.


유튜브에는 옛 노래나 발라드나 팝송과 재즈로 명곡만을 모아 만든 동영상이 수두룩하다. 그중에 발라드만 모아 만든 동영상을 선택해서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글을 그리는 종이다.

몇 시간째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는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발라드 노래에 취하고 글에 취하고 상상력에 취하는 시간이 그저 즐겁기만 하다.


시골에 살던 시절 건조실 앞에 앉아 담배를 엮던 시간이 떠오른다. 담배를 엮는 작업은 옆에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으면 지루하고 무료하다. 그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카세트를 갖고 나와 테이프를 틀어놓고 노래를 들으며 담배를 엮었다.


고목인 감나무가 드리운 그늘에 앉아 매미 소리와 노랫소리를 들으며 담배를 엮다 보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잊곤 했다.

어떤 일을 하면서 마음이 지루하면 하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곁에서 노래가 들려오면 지루한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밭에 가서 김매는 작업을 할 때도 고단함과 무기력을 견뎌내기 위해 카세트를 가져가 밭 가운데 놓고 노래를 들으며 김을 매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글쓰기도 마음이 지루하면 진전이 없다. 게다가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거나 고민이 쌓이면 길이 열리지 않는다. 이럴 때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 잔잔한 노래다.


노랫소리가 너무 커도 마음을 집중할 수 없지만 고요하고 잔잔하게 들려오면 집중도 잘 된다. 노래도 이 노래 저 노래 듣다 보면 지나간 시절의 추억이 이슬처럼 송송 돋아난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 젖어드는 것이 좋다. 글을 쓰면서 노래에 마음이 흠뻑 빠져들면 온 세상이 마치 내 세상인 것처럼 다가온다. 노래는 상상의 바다로 마음을 이끄는 돛단배다. 그런 너른 바다에 퐁당 빠져 상상의 날개를 활짝 퍼덕여본다.

찻집에 앉아 차를 마시며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 감상에 젖어든다. 글을 쓰면서 애잔한 노래를 들으니 갖은 상념의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이 나를 붙들고 아주 먼 곳으로 데려간다. 글을 쓰는 노동이 노래로 인해 즐거운 순간이 되어간다. 노랫가락이 사람의 마음을 툭툭 건드리며 생각을 이리저리 흔들어 댄다.

한평생 노래나 들으면서 살아가는 길은 없는 것일까. 먹고 잠자는 것을 모두 잊고 오롯이 노래나 들으면서 살아가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노래는 누가 처음 창조했을까. 무슨 연유로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까. 어떤 노래가 인류에 최초로 등장했을까. 갑자기 노래를 탄생시킨 상상의 나래가 먼 곳을 향해 달려간다.

글과 노래와 사람의 마음이 만나서 깊은 심연을 이루는 밤이다. 이 밤은 그 누구에게도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것만 같다. 노랫가락을 따라 한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고요한 이 밤. 지나간 그리움과 추억이 다가와 노래를 따라 파도를 일으키는 흥겨운 밤이다.

이 밤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풍선을 타고 멀리 날아가는 꿈을 꾸고 싶은 밤이다. 정녕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았던 삶이 노래로 무르익어가는 밤이다.

이 글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글의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무한히 질주해 왔지만, 이제는 정착지를 찾아야만 한다. 글이 가야 할 길이자 운명이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노래는 몇 곡이나 떠돌까. 그중에 내가 아는 노래와 모르는 노래는 또 얼마나 될까. 노래를 창조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전해주고 싶다.


힘든 일을 할 때 지루하지 않게 흥을 북돋아 주고, 글을 쓸 때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동력을 키워줘서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데 지루하지 않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는데 노랫가락이 끼어들어 마음이 홀딱 빠져드는 유혹을 당했다. 글을 쓴 것은 사람이지만, 노래가 글을 쓰도록 지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종종 노래를 들으며 글을 써보고 싶다. 인생에서 이런 날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글과 노래에 취하고 상상력에 취해 본 멋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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