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령 고개에 남긴 눈물

by 이상역

지난 금요일 밤에 장맛비가 밤새도록 쏟아졌다. 이튿날에도 장맛비가 내려 서울 집에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비가 너무 와서 걱정하고 있는데 결혼한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경산에 사시는 사장어른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토요일에도 장맛비가 하루 종일 내릴 것 같아 문상은 일요일에 가기로 했다. 뉴스를 들으니 KTX, SRT도 비로 연착되거나 운행이 되지 않는 곳도 있단다.


일요일 아침이 되자 장맛비가 어느 정도 그치고 하늘을 바라보니 장맛비가 내릴 것 같지는 다.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문상 갈 준비를 서둘렀다.


세종에서 아침 8시 반에 출발해서 근 두 시간 반 만에 경산의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사장어른은 딸 결혼식 때 처음 뵙고 이번이 두 번째다. 공교롭게도 결혼식 때 서울에서 뵌 것은 생전의 일이 되었고, 두 번 째는 사후의 일이 되고 말았다.


딸 결혼식날 예식장에서 손자며느리가 우리 집과 혼례를 치르게 되어 기쁘다며 웃음 짓던 얼굴이 떠오른다. 경산에 문상을 가서 사장어른 영정을 바라보자 만감이 교차했다. 장맛비로 전국이 난리를 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장어른의 마지막 모습을 뵈러 경산까지 찾아갔다.


사돈은 비가 너무 와서 내려오지 말라고 연락을 보냈지만 나는 조사만큼은 시간을 내어 찾아가는 편이다. 세종에서 홀로 차를 운전하며 경산까지 가는 길은 멀게도 느껴졌다. 세종에서 대전, 옥천, 영동, 김천, 구미, 대구를 지나면 경산이다.


경산으로 가는 내내 마음은 착잡했다. 좋은 일로 가는 거라면 마음이라도 즐거울 텐데 돌아가신 분에 대한 문상을 가는 길이라서 마음이 쓸쓸했다. 똑같은 길을 가도 가는 목적에 따라 기분과 느낌은 달라진다.


몇 년 전 부산 이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부산으로 갈 때도 기분이 착잡하고 쓸쓸했다. 나도 언젠가는 부산 이모님이나 사장어른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세종에서 경산으로 내려갈 때는 좀 멀게 느껴지더니 올라올 때는 한번 가본 길이라 그런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다. 세종으로 올라오는 도중에 볼 일도 볼 겸 추풍령 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에서 일도 보고 커피 한잔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추풍령 휴게소 입구에 '추풍령' 노래비가 서 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상점에 들러 물어보니 잘 모른단다. 그리고는 휴게소 옆 언덕에 고속도로 50주년을 기념해서 세워 놓은 준공탑을 가리키며 거기나 가보라고 한다.


추풍령은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잇는 고개로 추풍령은 '가을바람 고개'란 의미이다. 우리 세대는 추풍령은 가을바람 고개보다 '추풍령'이란 노래를 먼저 떠올린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한 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보며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 모습 그립구나 추풍령 고개


기적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 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싸늘한 철길

떠나간 아쉬움이 뼈에 사무쳐

거치른 두 뺨 위에 눈물이 어려

그 모습 그렸구나 추풍령 고개 (남상규, '추풍령 ')


이 노래는 젊은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다. 젊은 시절 멋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추풍령'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젊음이란 겉멋에 취해 '추풍령'이란 노래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울대를 잔뜩 부풀려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우리 세대는 '추풍령'에 대한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추풍령 휴게소 옆 준공탑에 올라가서 한 바퀴 돌아보는데 '추풍령'이란 구수한 노랫소리가 저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추풍령'이란 노래의 가사처럼 주변의 산자락에는 흰구름이 군데군데 걸쳐 있고 바람도 쉬고 있는 것인지 불어오지를 않는다.


준공탑 언덕에 서서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니 경산에서 문상을 마치고 온 사장어른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들 넷을 결혼시켜 손자 여덟 명 중 내 딸만 손자와 결혼했는데 두 달 뒤면 태어나는 증손자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막내 사돈이 조문을 마친 내게 다가와 딸이 찍은 태교 사진을 돌아가신 사장어른께 보여드렸다고 한다. 태교 사진을 통해 증손자와 만나게 해 드린 것에 고마움을 전했다.


사장어른은 딸 결혼식 때 내가 읽은 축사를 들으시고는 지금껏 그렇게 멋진 축사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사돈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사장어른의 주름진 얼굴이 떠오르며 두 뺨에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추풍령 준공탑에서 사장어른과의 영원한 이별을 했다. 정이 많고 손자며느리를 사랑해 주셨던 사장어른의 얼굴을 추풍령 고개에 새겨 두고 발길을 돌리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나는 사장어른의 한 많은 사연을 달래 드리고자 '추풍령'이란 노래를 큰 목소리로 서럽게 불러드렸다. 그러자 사장어른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면서 이제는 올라가도 된다고 손짓을 하는 것만 같다.


앞으로 사장어른을 만날 수는 없지만 '추풍령'이란 노래를 통해 사장어른의 얼굴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이승에서 겪은 한 많은 고통과 사연은 내려놓으시고 '추풍령'이란 노랫가락이나 들으면서 평안하게 지내시기를 바란다.


추풍령 휴게소 준공탑에 남긴 '추풍령'이란 노랫가락과 이 글을 돌아가신 사장어른께 바치면서 이만 펜을 놓을까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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