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한여름보다 뜨겁고 무더웠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다 잠시 쉬기 위해 건물 밖에 마련된 휴게소를 찾아갔더니 햇볕과 공기가 너무 뜨거워서 쉬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어제처럼 날씨가 널뛰기를 하면 사람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지만 계절을 타는 농작물이나 동물은 민감한 영향을 받는다. 기후 온난화로 지구촌 여기저기서 이상 기온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상예보를 전해 들으니 내일부터 제주를 시작으로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계절이 제 갈 길을 잃어버리고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춰야 할지 몰라서 길을 헤매는 것 같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안도현, '사랑')
여름의 대명사인 매미가 울만도 한데 아직은 매미가 우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매미도 날씨가 길을 잃고 춤을 추어대자 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몰라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름의 뜨거움과 매미의 울음을 절절한 사랑에 비유해서 녹여낸 시인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겁다.
글쎄다. 계절상 여름은 원래 무덥고 뜨거운 것인데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겁다는 것은 표현상 맞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역설적으로 사랑을 강조하려고 매미의 울음을 돋보이려고 여름의 뜨거움에 비유한 것 같다.
시인의 노래처럼 매미가 우는 것은 "지금 나 여기에 있소!"하고 암컷을 유혹하는 사랑의 노래다. 배가 고파서 우는 것도 아니고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랑을 찾기 위해 뜨거운 여름에도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계절은 낮동안 갈피를 못 잡고 춤을 춘다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에 나서면 한낮의 뜨거움은 사라지고 옷깃을 여며야 할 정도다. 산책길에 습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습지에서 '부앙 부앙' 하며 마치 큰 트럭이 경적을 울리는 것처럼 황소개구리가 울어댄다.
이곳에 와서 황소개구리울음소리를 듣는 것도 처음이다. 황소개구리도 개구리처럼 '개굴개굴'하며 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소리로 운다. 황소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옆에서 트럭이 다가오는 줄 알았다.
아직은 본격적인 여름이 아니라서 아침과 한낮의 기온이 달라서 아침마다 산책을 즐긴다. 늦봄의 끝자락을 끝까지 붙들어 잡고 가는 봄과 다가오는 여름을 즐겨볼 생각이다.
계절이 춤을 추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제발 더위만큼은 몰려오지 않기를 바란다. 황소처럼 울어서 황소개구리라고 명명했다지만 황소는 아니더라도 개구리처럼 '개굴개굴'하고 울어대는 정겨운 소리를 듣고 싶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이나 저녁에 퇴근하는 길이나 똑같이 몸에서 땀방울이 솟아난다. 아침의 서늘한 기운이 빠져나가면 더위는 잽싸게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무더운 공기를 대기에 뿌려댄다.
오늘은 날씨가 춤을 추지 않고 제 갈 길로 제대로 걸어가기를 소원해 본다. 아직은 무더운 여름을 노래 부를 때가 아닌데 갑자기 더위가 등장해서 사람들의 마음까지 더워지게 하고 있다.
지구촌의 한구석에서 티끌과 같은 존재로 머물며 살아간다지만 날씨가 무더운 소식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따듯하고 아름다운 소식이나 많이 전해 듣기를 기대하며 아침의 단상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