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저리도 높은데
가을은 벌써 깊다
말없이 자랑도 없이
나뭇잎마다 단풍이나 곱게 물들이면서
하루하루 가만가만 깊어 가는 가을
아! 나는 얼마나 깊은가
나의 생도
고운 단풍으로 물들고 있는가(정연복 시인, '가을')
시인이 읊은 가을의 시구처럼 계절은 벌써 가을의 풍경화를 그려댄다. 하늘은 한없이 높고 푸르며 나무에 달린 나뭇잎은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우리네 삶도 가을의 단풍처럼 곱게 영글어만 간다.
내 인생의 가을은 언제쯤일까. 삶의 가을을 기다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못내 궁금하다. 인생의 가을은 아니더라도 삶의 진실하고 건실한 가을이라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지난주 주말에 아직은 제대로 걷지 못하는 손주의 가냘픈 손을 잡고 가을의 숲을 아장아장 걸었다. 딸네집에 들어서자 마침 손주가 환하게 웃어주길래 가을 옷을 덧입혀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손주는 옷을 입혀주면 밖으로 나가는 줄 알고 신나 한다. 손주를 안고 중문을 열어젖히면 엄마한테 손을 흔들어 싱글벙글 하며 빠이빠이를 한다. 손주는 집 안에서 놀다가 옷을 입히고 있으면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귀신 같이 알아챈다.
손주는 홀로 걷지는 못하지만 곁에서 손을 잡아주면 뒤뚱뒤뚱거리며 그냥저냥 걷는다. 손주를 안고 도로를 건너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단지 내에 차가 다니지 않는 가을 숲이 보도블록 위로 펼쳐진다.
손주의 고사리 손을 잡고 함께 길을 걸어가자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아이고 귀여워라!", "얘기가 산책을 나왔네!"라면서 한 마디씩 건넨다. 손주도 할아버지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이 신이 났는지 "아~", "어~" 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그러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만나면 잠시 동안 낙엽을 밟고 놀다가 다시 걸어간다. 낙엽에서 가을이 스쳐가듯 바스락대는 소리가 신기한지 낙엽을 만날 때마다 연신 밟아댄다.
손주도 생애 처음 두 다리로 걷는 것이 신기한지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방긋방긋 웃음을 짓는다. 손주가 말은 못 하지만 얼굴 표정에는 할아버지와 걷는 것이 좋은지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었다.
갓 돌이 지났지만 홀로 걷지를 못해 나는 잔뜩 허리를 구부리고 손주와 보조를 맞추며 걸어가려니 허리가 저절로 아파온다. 손주의 가냘픈 손을 꼭 잡고 가을 숲을 걸어가니 기분이 좋다.
손주가 걸어가며 소리를 지르고 낙엽을 밟고 노는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인생의 흐뭇함과 손주와 손을 잡고 가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파트 단지에는 단풍으로 물든 나뭇잎과 이미 낙엽이 되어 떨어진 쓸쓸한 낙엽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감겨 날아다닌다. 그런 가을이 좋은지 손주는 신이 나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흥얼거린다.
손주의 다리 근육 힘도 길러줄 겸 한참을 걸어가자 손주는 걷는 것이 힘든지 내 앞길을 가로막고 안아달란다. 손주를 들쳐 안고 가을 숲을 터벅터벅 걸어가자 얼마가지 않아 손주가 다시 걸어가겠다며 내려달란다.
그리고는 놀이터가 보이면 나를 이끌고 들어가서 한 바퀴 휘휘 돌아 나온다. 내 인생에서 손주의 손을 잡고 걸어보는 것도 처음이다. 나도 기분이 좋지만 손주도 기분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내 인생에 가을이 찾아온 것처럼 손주도 가을의 계절처럼 풍성하고 넉넉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늘 할아버지와 손을 잡고 가을 숲을 걸었던 추억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건강하고 무탈하게 성장하기를 빈다.
가락동의 딸네 집으로 손주를 보러 온 지도 그럭저럭 일 년이 넘었다. 오늘처럼 손주의 손을 잡고 계절을 즐기면서 자주자주 거닐고 싶다.
딸네 집에서 손주 돌보는 것을 마치고 손주와 헤어지려니 할아버지가 자기를 데리고 가지 않는다고 울어댄다. 아빠와 엄마보다 그래도 할아버지와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니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손주와 웃으며 헤어져야 하는데 울리고 가는 발길이 마치 가을의 낙엽처럼 내 마음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나마 내 인생에서 할아버지와 헤어진다고 울어주는 손주가 있어 삶이 풍성해진 느낌이다. 다음에 손주를 만나면 어디로 가서 가을의 숲을 거닐어 볼까 하는 궁금증이 송골송골 피어나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