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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Nov 06. 2024

관계의 고독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몸을 움츠러들는 계절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삼아 산책을 나갔더니 손이 시릴 정도로 날씨가 제법 묵직해지고 쌀쌀해졌다.


가는 계절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우리들 곁에서 강물처럼 앞만 보고 바쁘게 흘러만 간다. 세종에 내려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해가 넘었다.


어제는 퇴근 후 집으로 걸어가면서 가는 길에 휴대폰으로 화를 걸어서 저녁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눌 친구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 그냥 집으로 갔다.


내 휴대폰에는 친구나 직장에서 사권 동료 등을 포함해서 약 600여 명의 연락처가 들어 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서 시간이 있느냐고 물어볼 친구가 한 람도 없었다.


휴대폰에 아는 사람의 연락처가 그렇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친한 사람 한 명을 불러내어 저녁이나 먹으면서 시답잖은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는 것이다.


내가 인생을 헛살아 온 것인가 하는 자괴감도 들고 그간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온 것인지 삶에 대한 회의감마저 생긴다. 직장에 들어와서 이리저리 옮겨 다닌 탓도 있겠지만 왜 친구 한 명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간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거리를 두고 사귄 것일까. 세월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그립다.


주중에 세종에서 홀로 지내면서 누구를 만나거나 누구에게 전화를 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나를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이 한 명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저 전화를 걸 때라곤 가족과 간간이 통화를 하는 것이 유일한 대화의 통로다. 교통통신이 발달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과의 관계는 더 고독하고 멀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교통통신이 발달하면 이야기를 나눌 통로가 다양한데도 불구하고 반데로 모두 막혀버린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전화를 걸 수 있는 휴대폰이 있다지만 막상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 곳이 없으니 휴대폰은 있으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요즈음 사람들은 대화는 줄어들고 오로지 이야기는 휴대폰을 들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눈으로 남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나 뉴스나 가십거리를 보는 것이 전부인 세상이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며 지식과 지혜를 얻는 시대는 점점 멀어져 간다. 통신기술의 발달로 사람은 책이나 얼굴을 맞대면해서 나누는 아날로그 지식보다 인터넷을 통한 티지털로 지식을 더 얻는다.


그래서 그런지 아날로그 방식의 대화나 책을 읽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게다가 걷는 사람도 줄어들고 삼보 이상은 무조건 버스를 타는 시대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려면 어딘가에 가서 강좌를 듣거나 모임에 참석해서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장소에서는 한정된 이야기만 나눌 수 있고 삶의 진지한 고민에 대한 이야기는 나눌 수가 없다.


사무실에서도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 직원들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지 않고 휴대폰만 열심히 들여다본다. 전철을 타도 그렇고 버스를 타도 그렇고 카페에 가도 그렇고 집에서도 딸들과 대화를 나누려면 모두가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어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다.


사람과의 관계는 자주 맞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발전한다. 그런데 교통통신의 발달로 인해 반대로 사람이 아닌 기계를 들여다보고 눈으로 정보를 접하는 시대로 바뀌고 말았다.


이전 시대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했다. 왜 그런 말이 나온 것일까. 아마도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스승을 통해 책으로 얻을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시대에는 지식과 정보는 인터넷이나 유튜브 등을 검색하면 쏟아져 나온다. 결과적으로 서로 얼굴을 맞대면하는 문화가 사라지고 무엇이든 기기를 통해 검색해서 홀로 지식을 얻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농경사회의 공동체 문화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발전해도 아무 때나 전화해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그리운 시절이다.


오늘도 관계의 고독을 씹으며 컴컴한 사무실을 홀로 나서지만 이리저리 춤을 추는 백열등 아래서 그리운 친구를 만나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허접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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