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하루에 만보 걷기를 해온 지도 그럭저럭 십여 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세종에서 홀로 지내기가 심심해서 운동 삼아 아침에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고 사무실을 오고 가며 만보를 채웠다.
그렇게 하루이틀 만보 걷는 것이 생활화되다 보니 습관처럼 굳어졌다. 만보는 육 킬로 정도를 걸어야 하는 거리다. 걷는 것도 마음에 부담을 갖고 걸으면 지루하지만 무언가를 의식하지 않고 돌아올 곳을 정하고 걸으면 그리 지루하지가 않다.
직장을 물러나자 하루에 만보를 걷는 것이 직장을 다닐 때보다 수월할 것 같더니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직장에 다닐 때는 몸에 군기가 든 것처럼 아침에 벌떡벌떡 일어나서 새벽길을 걷곤 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손주를 보게 되면서 밖에 나가 걸으면 운동도 되고 다리에 힘도 늘려줄 겸 아침에 육천보를 걷고 손주와 함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오천보를 걷는다.
물론 손주는 오천보를 걷지 않고 그중에 삼분의 일은 안고 걷는다. 그렇게 손주와 하루 만보 걷는 것도 점점 익숙해져 간다. 손주는 힘들다고 말은 하지 않지만 일부러 자주 걸어가게 한다.
그나마 손주가 할아버지와 밖에 나가 걷는 날은 저녁도 잘 먹고 잠도 일찍 잔다고 한다. 손주에게 걷기는 먹는 것과 잠을 자게 하는 보약인 셈이다.
손주와 오천보를 걸어가려면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한다. 물론 오천보에는 공원에 가서 뜀뛰기도 하고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건너편 아파트 단지를 돌고 오는 걸음걸이가 들어 있다.
나 홀로 걷는 아침의 육천 보는 몸의 건강을 위한 운동이고 손주와 걷는 오천 보는 세대 간의 행복과 소통을 나누는 행복의 걸음이다. 손주는 걸어가다 힘들면 나를 붙잡고 안아달라며 길을 막아선다.
세상에 태어난 지 십구 개월이 된 손주는 낮에 밖에 나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저녁에 잠을 늦게 잔다. 그리고 남자아이라서 운동을 시켜야 집에서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피곤해서 밥도 잘 먹게 된다.
손주 손을 잡고 세상을 걷는 것은 손주의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고 건강한 신체를 갖게 하기 위한 할아버지의 스파르타식 교육이다. 우리 나이로 네 살이니 천방지축 돌아다니며 개구쟁이 노릇을 한창 할 나이다.
네 살인 아이가 집에서 놀면 심심해할 것 같아서 공원이나 아파트나 아니면 손주가 사는 곳 주변을 한 바퀴 휘휘 돌고 온다. 만보 걷기에는 내 운동과 손주의 돌보기가 겸사겸사 겹쳐졌다.
결국 만보를 채우는 것은 내 몸도 위하고 손주의 몸도 위하는 보약이다. 인생의 쇠퇴기에 접어든 내 몸은 손주로 인해 원기가 살아나고, 한창 성장기에 이른 손주는 할아버지로 인해 몸과 마음이 열리며 깨어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삶은 어느 한순간도 소홀할 수 없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 어느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움직이며 살아가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돌파구를 찾을 수가 있다.
뒤늦은 나이에 손주 손을 잡고 공원이나 건너편 아파트 단지를 아장아장 걸어가면서 참 많은 대화도 나누고 이것저것 가르쳐 주는 것도 많다. 손주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배척할지는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다.
그저 할아버지 위치에서 순간순간 직면하는 사물에 대한 원리와 섭리를 이야기해 줄 뿐이다. 근 한 시간 이상을 손주와 함께 걷거나 뛰면서 수많은 사물과 사람을 접하게 된다.
사실 손주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손주보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손주에게 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지만 반대로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배운다.
손주와 걷는 만보는 행복으로 가는 구름다리다. 손주와 걷다 보면 사계절의 자람도 만난다. 봄날의 화사한 꽃도 보고, 여름의 무더운 땀방울도 흘리고, 가을의 풍성한 결실도 맛보고, 겨울의 흰 눈을 밟는 설렘의 추억도 나눈다.
내가 손주와 보조를 맞추어 걷는 것은 내리사랑의 시작이다. 손주가 웃으며 나를 바라보면 치사랑의 웃음이 피어나고, 내가 손주를 바라보며 웃을 때는 내리사랑의 싱그러운 웃음꽃이 피어난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자 손주의 걷는 발걸음도 빨라지고 뛰는 속도도 빨라졌다. 내 눈에는 손주의 성장속도가 느리게 보이는데 움직이는 모습은 이미 내 생각을 앞서 나간다.
손주에게 치사랑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손주가 받을 수 없을 만큼 내리사랑을 베풀어 주고 싶다. 치사랑과 내리사랑은 교환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너그럽게 품어주고 안아주는 교차로에서 만나는 신호등이다.
손주 돌보기를 마치고 내가 집에 가겠노라고 하면 손주는 가지 말라며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한다. 그리고는 자기 침대에서 베개와 이불을 끌고 나와 거실에서 자고 가라고 권할 때면 웃음이 피어난다.
손주가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래도 가지 말라고 붙들어 주는 손주가 있어 세상은 살만하다. 자기와 걸어주고 뛰어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가지 말라고 말하는 손주가 그저 귀엽기만 하다.
이래저래 손주가 보고 싶어 주중이나 주말에 아니 갈 수가 없다. 손주가 가지 말라고 붙들어 주는 맛에 더 손주를 보러 가고 싶고 손주와 놀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가 보다.
내 자식에게 제대로 베풀어주지 못한 내리사랑을 손주에게 베풀어 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살다 보니 여유로운 시간도 생기고 마땅히 할 일도 없어 시간이 나는 대로 손주를 보러 가서 걷는 추억을 쌓아가는 신세다.
삶은 이래저래 세대와 세대 간에 만나서 부딪히고 옥신각신 하는 언쟁과 다툼의 과정에서 성장하고 이루어진다. 앞으로 손주 손을 잡고 걸어 다닐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날이 다가오기까지 부지런히 손주와 걸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