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과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고 블루마운틴 국립공원으로 가는 중이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느끼는 계절의 풍경과 정취가 사뭇 다르다.
뉴질랜드에서는 무언가 잃어버린 오래된 옛 기억과 향수를 느꼈는데, 호주에서는 한국에서 평소 접하던 도시의 일상을 그대로 만나는 기분이다.
드디어 버스가 블루마운틴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호주는 대륙의 나라답게 블루마운틴의 모습이 웅장하다. 거대한 도넛 모양의 장대한 산맥과 공원 입구를 지키는 세 자매 바위. 총길이 3,800킬로에 달하는 산맥을 두른 블루마운틴.
바다의 옛 전설을 품고 있는 블루마운틴을 배경으로 에코 포인트 지점으로 내려가 일행과 사진을 찍고 광대하게 펼쳐진 산맥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에코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 나오는데 호주의 원주민이 전통악기인 디저리두를 불며 노래를 들려준다. 세상 어디나 원주민이 존재하듯이 호주도 원주민에 대한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호주의 역사는 잘 알지 못하지만, 백호주의로 원주민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는 것을 학창 시절에 배웠던 기억이 난다. 원주민이 들려주는 전통악기 소리에는 마치 지나간 시절의 슬픈 이야기가 깃든 원한의 소리처럼 들려온다.
일행과 블루마운틴을 구경하고 과거 식민지 시대에 죄수들을 가두고 석탄을 캤던 탄광으로 이동했다. 탄광으로 가는 길은 궤도 열차를 설치해서 트롤리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호주는 역사의 치부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해서 자신의 단점을 과감하게 공개하고 있다. 자신들의 단점을 관광객에게 떳떳하게 내보이는 그들의 건강한 정신이 부럽다.
옛 시절에 탄광을 캐던 곳이라 특별하게 구경할 것이 없다. 일행과 탄광을 한 바퀴 돌아보고 케이블카를 타고 공원에 올라가 이곳저곳 다니며 구경하다 보니 몸에 땀이 난다.
17:40분. 블루마운틴 공원과 탄광 관람을 마치고 시드니 시내에 소재한 공원으로 가는 중이다. 이 공원은 그동안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다가 관람이 허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벤자민이 숲을 이룬 공원에 들어서자 저 멀리 바다 건너에 자리한 오페라하우스가 그림처럼 시야로 들어온다.
영국 여왕이 사용하던 공원을 일반인에게 개방해서 지금은 관광명소가 되었단다. 가이드가 미국의 시드니 셀던 작가가 글을 쓰던 벤치로 일행을 안내한다. 일행은 돌아가면서 그 자리에 한 번씩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나도 벤치에 앉아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는데 마치 시드니 셀던처럼 글이 저절로 써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는 종종 이 벤치에 앉아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며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가 어느 날 인터류를 하다가 시드니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해가 수평선으로 넘어갈 때 하버 브리지를 비추는 저녁노을이라고 말했단다. 그러자 시드니에서 저녁노을이 질 무렵 하버 브리지 위를 걷는 관광 코스를 개발해서 지금은 하버 브리지 위에 올라가 걷는 관광객이 많아졌다고 한다.
도시를 아름답게 구성하는 것은 사람이 세운 건물보다 오래된 고목이다. 시드니가 도시로써 미를 갖춘 것은 거리와 공원에 심은 나무가 일조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드니는 초원이 아닌 사람들이 일행을 반겨준다. 뉴질랜드에서는 사람과의 만남이 그리웠는데 호주에 와서는 사람이 아닌 초원이 다시 그리워진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교통에 막혀 속력을 내지 못한다.
아담한 주택에서는 멋진 정원수를 키우고, 공원의 나무에서는 세월의 묵직함과 고독한 향기가 배어난다. 오늘 아침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서 겪었던 불편함과 짜증이 오후가 되면서 서서히 줄어들고 여행을 즐기려는 감정선이 슬금슬금 살아난다.
시드니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낯선 여행지에 가보고 싶은 갈망이 서서히 마음을 자극한다. 뉴질랜드에서 푸른 초원에 대한 인상을 너무 강하게 받아서 그런지 호주에서는 낯선 것을 만나도 뉴질랜드와 같은 토속적인 감정이 일지를 않는다.
호주의 시드니는 도시에서 불어오는 사람 냄새와 대륙이란 육중하고 묵직함이 나를 더욱 낯설게 하고 익숙하지 않은 시선이 자꾸만 갈 길을 막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