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연구실에 남아 데이터를 정리하던 기안은 충동적으로 그리고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수신자는 '국가정보원 사이버 안보팀'. 제목은 '프로젝트 제네시스 내의 불법 연구 활동에 대한 내부 고발.' 그는 지난 몇 달 간 비밀리에 진행된 모든 것을 약간의 거짓과 왜곡을 섞어 써 내려갔다. 엄 박사 부부가 국가의 자산을 빼돌려 개인적인 목적의 가상 세계를 만들고 있으며, 이는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뒬 수 있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문장을 입력하고 그는 마우스 위로 손을 가져간다. '보내기' 버튼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버튼을 누르면 생각한 것 보다 더 큰 일이 일어난다.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기안을 제외하고. 고민으로 가득 찬 기안의 머릿속 작은 공간에는 어쩌면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욕심으로 그 공간을 메우고 있다.
'아니야... 이건 미친 짓이야.'
기안은 계속 나 자신과 싸우고 있다. 그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는 엄 박사 부부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팀장의 얼굴까지. 눈빛이 순해진다. 그리고 진정이 되고 있다. 마우스는 기안의 마음을 읽은듯이 이메일 창을 닫기 위해 움직인다.
바로 그때였다. 밤샘 작업으로 몽롱한 정신 탓이었을까. 책상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커피잔이 그의 팔에 부딪히며 바닥에 떨여졌다.
"쨍그랑"
작지만 강력한 소리다. 기안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음. 그리고 기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바라본다. 보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확인을 해야만 했다. 신기하게도 이런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짧은 몇 초 사이 최악의 상황을 예상해보고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길 생각한다.
[메일이 성공적으로 전송되었습니다.]
짧은 몇 초 사이 최악의 상황이 현실이 된 순간이다.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기안의 심장 마저 조용하다. 돌이킬 수 없다. 그의 한순간의 질투와 어리석은 실수가 모두의 운명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정부의 개입은 신속하고 잔혹했다. 빛보다 빠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사건의 시작.
며칠 뒤, 엄 박사 부부는 진원의 기억을 아카이브에 백업하고 최종 안정성을 테스트 하기 위해 가상 세계로 들어간다. 그 순간, 특수부대가 연구실을 급습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시스템의 메인 전원을 내려버렸다.
'강제 로그아웃'
가상과 현실을 잇는 문이 영원히 닫힌 것이다.
엄 박사 부부는 그렇게 진원의 가상세계 속에서 영원히 보내야 한다. 기안은 직접 눈으로 모든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실수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몸소 뻐져리게 느끼고 확인했다.
이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다. 말한다고 누가 이런 걸 경험했을까. 그리고 공감해줄까.
기안은 그로부터 혼자서만 감당해야했다. 점점 말이 사라지고 사람의 눈을 피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엄청난 죄책감. 그리고 이걸 속죄하며 살아가기 위해 살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현재.
컨테이너 창고 앞, 기안은 그때 있었던 일들을 회상한다. 차갑게 식은 손으로 USB를 쥔 채 서 있다.
초점 없이 힘도 없이 서 있다. 단지 차갑고 무거운 USB만 쥔 채.
[바탕화면에 들어오시겠습니까? YES or NO]
이 메시지는 기안에게 그 어떤 문장보다 뜻깊은 것이다.
엄 박사 부부에게 진실을 말하고 용서를 빌 수 있는 첫 번째 단추이기 때문이다.
갇혀버린 엄 박사 부부가 아들을 위해 그리고 진실을 위해 보낸 마지막 신호. 그것은 기안에게 내려진 속죄의 기회다. 그는 자신의 남은 인생 전부를 걸고,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바로잡기로 다시 한 번 마음 가짐을 새롭게 한다. 자신이 닫아버린 문을 자신의 손으로 다시 열기로.
기안은 후드 남자에게 짧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말없이 차에 오른다. 그리고 코트 주머니 속에 있는 USB와 함께 향한다. 등 뒤로 녹슨 철문을 두고.